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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04~08)/빈에서 부친 편지

어떤 흐린 날

지난 주말부터 궂은 날씨의 연속이다.

날씨에 민감한 편은 아니지만, 1주일이나 계속된 이국의 나쁜 일기가 아무렇지 않을 만큼 둥근 심성은 아닌가 보다.

 

이런저런 이유로 내 정신의 일기도 좋은 편이 아니다.

아침에 남편과 별것 아닌 신경전도 있었고, 요사이엔 뜸하던 개미와의 타이틀전-한 200마리 쯤-도 모질게 치렀다.

그것도 기호 등교 전에. 그러고 나니 공연히 우울한 마음이 들었다.

 

오늘따라 집에서 잘 쉬어주고 있는 승용차를 몰아 Laa로 갔다.

정말 뛰어봤자 벼룩이다. 이 나라 지리를 모르니 갈 데가 거기밖에 없다.

먼저 책과 음반, 문구를 파는 상점에 가서 본드와 그간 찍은 사진을 정리해 넣을 봉투를 샀다.

기호가 좋아하는 DVD를 하나 사려니 마땅한 게 눈에 띄지 않는다.

계산하면서 점원이 묻는다. 비닐봉투에 넣어주겠다는 소리다. 'Ja'하는 내 대답과 동시에 봉투에 넣어준다.

 

그리고는 화장품과 장신구를 파는 상점에 가려 마음 먹고 운전석에 앉는데, 갑자기 빗방울이 떨어진다.

날씨마저 날 배반하는 하루. 할 수 없이 장신구샵은 포기하고 장은 봐야 하니 주차장 넓은 마트로 차를 옮겼다.

내일이 기호 소풍날이라 음료수와 과자, 과일을 샀다.

밥보다 빵이 더 좋다던 기호가 요즘 들어 빵-특히 샌드위치 점심-에 경기를 일으킨다.

 

여전히 낮빛은 흐리고 바람은 나뭇가지를 흔든다.

짙은 구름 사이로 거친 손 내민 하늘이 싸늘하고 애처롭다.

집 앞 도로의 공사 소리는 그칠 줄 모르고 여느 때보다 일찍 모인 우리 가족도 날씨 탓인지 다들 노곤하다.

 

내일은 오늘보다 맑고 따스할 것이라는 일기예보를 믿어야겠지.

이국 땅의 오후가 아픈 첫사랑처럼 어스레히 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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