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탐사('04~08)/2004 여름 기억

2004. 7. 22. 목 (오스트리아 가는 날)

오늘이다, 오스트리아 가는 날. 기대에 싸여 밤새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나 보다.

휴대폰에 맞춰놓은 알람소리가 들리기도 전에 눈이 떠졌으니. 5시 반, 밖은 이미 훤하다.

 

새벽인데도 이미 핸드폰에 들어와있는 문자가 있다.

선생님의, 공항버스 타는 곳까지 바래다준다는 문자. 정중히 거절 문자를 보내고 어젯밤에 챙겨둔 짐을 살폈다.

여러 가지 준비물들을 확인한 다음, 자고 있는 기호를 깨우니 금세 일어난다.

며칠동안 떨어져있던 아빠를 만나러, 비행기를 탄다는 사실이 기호에게도 약간의 흥분으로 작용했나 보다.

7시 40분, 식사를 하고 문단속을 한 후 집을 나섰다.

공항 버스를 타러 길동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공항으로 오시겠다는 엄마의 전화를 받았다.
길동에서 1시간 40분이나 버스를 타고서야 드디어
전에 단 한 번밖에 와본 적이 없는 거대한 인천 공항에 도착했다.

네덜란드항공 체크인데스크에서 티켓팅을 한 후, 엄마를 만났고 엄마의 당부를 뒤로 한 채 11시 10분, 출국수속을 했다.

탑승까지 남은 1시간 동안 면세점이나 둘러보자는 생각이었는데, 면세점 맞나, 백화점 세일보다 고가.

 

12시, 탑승이 시작되었다. 
두 개의 짐은 부치지 않고 기내로 들고 갔는데,
캐리어를 짐칸에 올리기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중년의 외국인이 도와준다.

우리 자리는 창가 쪽 둘이다. 창 밖을 보며 여행을 하겠다는 멋진 계획이었는데, 그야말로 완전한 착오였다.
옆자리 통로쪽의 깐깐해보이는 외국 노신사는 움직이지도 않은 채 책에만 몰두하고 있다.

나중엔 화장실 가기도 괜히 눈치가 보여 노신사가 일어설 때에 맞춰 함께 움직이곤 했다. 다음엔 통로쪽 자리 사수~

두 번의 식사 그리고 간식과 음료.

기내에서의 지루하고 불편했던 10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암스텔담에 도착했다.

물론 3시간 후 비행기를 또 타야 한다. 갈아타는 곳으로 가다보니 뜻하지 않게 -같은 EU국가- 입국 심사가 있다.

인천 발 기내 뒷자리에 앉았던 노처녀-마드리드까지 간다는-가 나보다 더 걱정을 한다.

무사히 입국 심사를 마치고 보니 다음 비행기까진 시간이 꽤 남아있다. 면세점을 보려 했지만 저녁이라 다 폐점 상태.  

목이 마르다는 기호를 위해 작은 생수를 하나 사들고 가격을 물으니 2.4유로란다.

 

헷갈리게 되어있는 탑승구를 물어물어 겨우 확인하고, 그 앞에 앉아있었다.

엄마랑만 낯선 땅이 있으니 처음엔 무섭다던 기호가 공항 안을, 인천공항에서처럼 돌아다닌다. 애는 애다.
신기하게도 암스텔담 공항 화장실의 휴지는 다 재생 휴지다.
경제 선진국인데도 절약 정신은 정말 배울만하다.

 

얼마 후, 비엔나행 비행기에 오르자마자 기호는 바로 잠에 빠져버렸다.

그 좋아하는 간식이 오는데도 고단함에 묻혀 잠만 자고 있다. 예정보다 15분 늦게 이륙을 했고, 2시간 후 비엔나다.
낯설어서, 눈에 잘 들어오지도 않는 출구쪽 화살표를 따라 계속 걸으니 출구 저편에서 아는 얼굴들이 보인다.

우리가 하도 안 나와서 비엔나행 비행기를 못 탄 줄 알았다는 엄청난 발언. 내가 영어가 짧아도 그렇지, 그런 의심을 하다니.

 

남편, K씨와 함께 1시간을 달려서 K씨의 집과 공장, 사무실이 있는 핀카펠트에 도착했다.

안착의 축배 후, 볼수록 멋진 강아지 모모가 지켜주는 방 앞에서 곤한 잠을 청했다.
정말로 헤아릴 수 없이 기나긴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