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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04~08)/2004 여름 기억

2004. 7. 25. 일 (비엔나의 휴일)

기호는 오스트리아에 온 후부터 매일 6시면 기상이다.
아직 적응이 안 되는건지 자유로운 마음에 일찍 일어나는건지,
심심하다는 기호를 즐겁게 위협(?)하여 수학 문제를 풀게 한다.

물론 기호도 기쁜 마음으로 수학 공부를 한다.

오늘은 미뤄뒀던 일기를 이틀 분이나 다 써놓고는 아침부터 강아지 모모와 사과놀이를 한다.

사과놀이란, 집마당 사과나무에서 잔디밭으로 떨어진 사과를, 기호가 던지면 모모가 물어오고, 그 사과를 기호가 또 던지면

또 모모가 물어오고 하는 것인데, 둘은 서로 마음 잘 맞는 형제 같다.

약간 흐린듯한 아침 하늘.
하늘 저편에선 파란 부분이 조금씩 보이지만 아침 바람은 꽤 차다.
한여름이라도 오스트리아의 새벽과 밤은 서늘하고 시원하다. 천혜의 날씨다.

기다리던 휴일의 비엔나 투어는 여행가이드 출신  J아빠와 함께다.
K씨 가족은 빈 한인교회에 가고,
우리는 J아빠와 함께 프랑스왕비 마리앙투아네트의 어머니인 마리아 테레지아의 궁전인

쉔브룬 궁으로 향했다. 마침 일요일 낮, 그렇지 않아도 좁은 주차장이 휴일이라 그런지 더욱 빈 자리를 찾을 수가 없었다.

차 세울 공간을 찾기 위해 주차장을 몇 바퀴 돌았지만 실패. 아쉽지만 쉔브룬은 다음 기회-결국 오스트리아를 떠날 때까지

관람 못함-로 미루고, 비엔나 외곽의 중앙묘지에 도착했다.


아니 웬 대낮에 묘지.
이곳엔 오스트리아 출신 또는 오스트리아에서 활동한 음악가들이 모여 잠들어 있다.
베토벤, 슈베르트, 모차르트, 브람스, 요한슈트라우스 등은 물론
역대 대통령들의 육신이 편히 쉬고 있는 곳이다.

중앙엔 성당이 자리하고 있고 영화의 배경이 되기도 한 이곳은 묘지라기보다는 푸근하면서도 단정한 공원 느낌이다.

간단한 점심식사를 위해 비엔나 중심가의 맥도널드로 발길을 돌렸다.

맥도널드 매장 여기저기가 각 나라에서 여행온 듯한, 또는 유학온 듯한 다양한 인종들로 붐빈다.
기호는 해피밀 세트에 딸린 후크선장의 손을 본딴 장난감을 들고는 연신 벙글거린다.

중앙 묘지를 걸으며 힘들어하더니, 이제는 낯빛이 훤하게 펴진다. 

 

빈 시립공원

다음으로 간 곳은 비엔나 시립공원. 휴일을 맞아 산책 나온 사람들이 많지만, 복잡하지는 않았다.

오스트리아 인구는 830여만이고, 비엔나엔 180만 명이 살고 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남한)보다 약간 작은 땅덩이에

우리의 1/6밖에 안 되는 사람들이 산다. 그래선지 비엔나 거리나 넓지 않은 도로에서조차도 번잡스러운 분위기를 전혀

느낄 수가 없다. 물론 비엔나 시민들의 질서 의식도 한몫 했겠지만.

 

공원 입구에선 중세 음악가 복장을 한 젊은 남자가 음악회 티켓을 판매하고 있는데 외양이 무척 재미있게 보인다. 
공원 한쪽에 자리한 비엔나를 소개하는 자동안내기엔
중국어와 일본어 해설은 있어도 한국어 해설이 없어 아쉽다.
공원 어디에선가 낯익은 고전 음악이 들려오고
정성을 담뿍 들인 꽃과 나무들은 햇빛을 안은 채 환하게 웃고 있다.


 

캐른트너 거리

다음으로 옮겨간 곳은 가장 번화가인 캐른트너 거리다.

일요일이라 식당이나 카페, 기념품점을 제외한 상점들은 거의 문을 닫았다. 교회 갔던 K씨 가족과 다시 만났다. 
먼저, 슈테판 성당의 웅장한 외부와 섬세한 내부를 살펴본 후,
유료 엘리베이터를 타고 탑에 올랐다.

엘리베이터를 운행하는 남자 직원의 익살스러운 표정과 흥얼거리는 멜로디가 재미있다.
모차
르트가 '피가로의 결혼'을 작곡했다는 모차르트 피가로하우스의 반투명 둥근 지붕도 멀지 않은 곳에 있다. 


거리 카페에서 잠깐 쉬면서 환상적인 아이스커피를 마셨다.

오늘, 케른트너 거리엔 동양인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두 아가는 한계에 이르렀는지 울음을 터뜨리며 짜증을 낸다.
케른트너 거리와 이어져 있는 호프부르크(왕궁)은 굉장히 근엄하고 웅대하다.

지금은 드넓은 왕궁 일부가 대통령 집무실과 국제회의실 등으로 쓰인다고 한다.

K씨는 J아빠의 매우 상세한 설명에 고개를 저어(?)가며 남편에게서 계속 카메라를 건네받는다.

이른 저녁.  다함께 도나우강변으로 갔다.

강에 떠 있는 보트 위에서는 꽤 큰 몸집을 가진 여자를 포함한 어느 가족의 선탠이 한창이다.

오스트리아 사람들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되지 않는 한, 원하는대로 행동한다.

아주 뚱뚱한 사람도 배꼽티나 민소매셔츠를 입는 등 우리나라 같으면 구경거리가 될 만한 일도 개의치 않고 행한다.

자유로우면서도, 예절과 질서가 살아있다.

 JJ엄마가 곧이어 도나우 강변의 레스토랑-슈트란트카페-에 도착했다.
점점 햇빛은 옅어지고 있고 가장 맛있다는 부드바이저 생맥주와 슈페어립을 먹었다.  
나도 마찬가지지만 다들 과음했나보다. 도나우 강변에서의 내 기억도 재생되다가 끊어져버린다.
비엔나에서 핀카펠트로 돌아오는 차 안,
오스트리아 하늘엔 별이 환히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