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여행 가는 날. 어제는 분명 일찍 잤어야 했다.
그런데 요즘 매일 그러하듯 또 맥주 잔치가 벌어지다보니, 새벽 세 시가 다 돼서야 잠이 들었다.
게다가 밤새 기호의 격투를 받다보니 잠에서 깨기를 여러 차례, 그야말로 비몽사몽인 아침이다.
그래도 출발이다.
어제 종이에 정성스레 써가며 세웠던 계획보다는 늦었지만 9시 50분, 집을 나섰다. 바람이 매섭다.
가는 길에 맥도널드에서 늦은 아침 식사를 하고, 주유소로 가서 차에 기름을 넣었다.
오스트리아에서 자동차에 기름 넣는 것은 모두 셀프다.
잘츠카머구트까지는 여러 시간을 가야 했다.
기호는 J네 가족, 강아지 모모와 함께 20년 된 벤츠에 타고 있고, K씨 가족과 나는 남편이 운전하는 오펠에 있었다.
아침을 먹고 다시 출발한 지 1시간이 지나자, 두 아기가 힘들어하며 울기 시작했다. 좁은 차 안이라 답답했겠지.
떼를 쓰며 젖병을 집어던지는 등 점점 난폭해지자, 우린 휴전을 결정했다.
도로 가장자리에 있는 휴게소에서 휴식하면서 라면을 끓이기로 했다.
우리가 머문 휴게소는 우리나라 도로의 휴게소와는 달랐다.
도로 가장자리에 위치해, 화장실과 급수시설, 탁자와 의자 등만 있는 간이 휴게소다.
물론 우리나라 휴게소처럼 식당과 슈퍼가 있는 큰 휴게소도 많이 있다.
바람은 계속 불고 있었다. 캐리어에서 긴소매옷을 꺼내 기호에게 입혔다.
K씨는 라면을 끓인다며 휴대용 가스렌지 위에 물을 올려놓았지만, 바람에 가스 불꽃이 흔들려 물은 좀처럼 끓지 않았다.
대략 물이 뜨거워진 걸 확인하고 냄비-실은 전기밥솥의 속밥통- 에 라면을 넣었다.
모두 탁자 주변에 둘러서서 라면봉지를 그릇삼아 라면을 먹기 시작했다.
도로가에서 먹는 라면 맛. 멋진 경치마저 외면하게 만드는 그 환상적인 맛을 지금도 잊을수 없다.
다시 도로를 달린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광경은 그림 그 자체다.
산은 건강한 나무들로 푸르고 군데군데 만들어진 초원과 그곳에 자리잡은 집들은 눈이 부실만큼 아름답다.
조경 하나하나까지 배려하는 정성과 여유가 매우 부럽다.
도로에 친절하게 세워진 이정표를 보니 잘츠부르크 근처인가 보다.
잘츠부르크는 모차르트가 태어나고 자란 곳으로 매년 여름 음악제가 열리는 곳이다.
늘 수많은 관광객들로 붐비고 그로인한 관광 수입도 엄청나서 수도 비엔나보다 소득 수준이 훨씬 높다고 한다.
어느 새 호수가 보이기 시작한다. 몇십 개의 호수가 있다는 잘츠카머구트다.
호수라면 그저 경포호나 석촌호수 같은 규모만 접해왔는데, 이곳 호수들의 규모는 그야말로 상상초월이다.
바다처럼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앞서가던 J아빠가 호숫가를 달리기 시작한다.
호수를 보고 있으니 그 정경이 너무나 예뻐서 눈이 아프다. 두 아기의 칭얼거림에도 내 눈은 창밖만 보고있다.
한참동안 특별서비스인 호숫가 드라이브가 이어졌고, 호수 주변을 빠져나와서는 예약한 숙소를 찾기 시작했다.
호수에서 조금 떨어져 알프스 자락에 위치한 펜션은 그 주위가 온통 풀밭과 숲이다.
펜션 객실엔 두 개 방과 주방, 욕실과 화장실이 딸려있는데, 깔끔하고 정돈이 잘 되어 있었다.
두 개의 객실 중 하나는 K씨네와 우리 부부가, 다른 객실은 J네와 기호가 쓰기로 했다.
저녁 식사 시간이 되었다. 미리 양념해온 불고기를 구워먹으며 와인을 곁들었다.
식사 후엔 다들 먼저 산책을 나갔고 난 K씨 아내와 함께 설거지를 한 후 커피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저쪽에 남편이 보인다. 펜션 앞 놀이터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8시가 넘은 시각인데도 아직 환하다.
방에 들어와보니 침대 머리맡 벽에 부착된 스탠드가 유난히 곱다.
휴가 여행 첫날의 고단함을 날려보내기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추억이 될 다음날을 기약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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