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만 9살인 기호가 만 4살 무렵이었던 것 같다.
유치원에서 돌아온 어느 날, 느닷없는 질문을 한다. 엄마! 낄라낄라 알아요?, 뭣이라? 낄라?
괴상한 용어를 모르는 내 얼굴이 재미있었는지 연신 외쳐대었었다. 시껌둥이 낄라낄라~
얼마 전부터 내가 지어준 기호 별명이 바로 낄라낄라다.
5월 말부터 집 뒤편에 있는 수영장엘 얼마나 들락거렸는지 피부가 구릿빛을 넘어 깜장색이 돼버렸다.
기호는 원래 수영장 가기를 무척 좋아한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약속을 하고는 방과후엔 시간에 늦을세라 재빨리 수영장으로 달려간다.
물론 약속 없이 가도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놀이터 같은 수영장이다. 풀에서 미끄럼틀도 타고 헤엄도 친다.
저렴한 입장료(1.5유로)에 맛있는 셈멜(오스트리아 전통빵, 1유로)까지 먹을 수 있기에 기호에겐 더할 수 없는 곳이다.
7월 1일엔 두 달 간의 긴 여름방학이 시작되었다.
3개월밖에 못 다닌 아쉬움을 수영장으로 달래려 했는데, 날씨가 기호의 기대를 따라주지 않는다.
그렇게 선선한 날이 계속되더니 어젯밤부터 기호에게 열감기가 찾아왔다. 그동안 낯선 곳에서 잘 버티어주더니.
지금도 곁에서 안스러운 숨을 쉬며 가만히 누워 있다.
낄라낄라야, 더 깜시가 돼도 좋으니까 어서 감기 돌려보내자.
그래야 좋아하는 수영장 가서 좋아하는 친구들이랑 신나게 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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