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여행 4일째.
시간은 냉큼냉큼 잘도 흘러간다. 오늘 행선지는 몽마르트르다.
지하철에서 내려 몽마르트르 언덕 위 사크레쾨르 성당으로 오르는데, 돌계단의 오물과 악취가 오감을 어지럽힌다.
널려 있는 쓰레기를 흔히 볼 수 있는 파리 시내지만, 몽마르트르의 더러움이 단연 최악이다.
중앙에 거대한 돔이 있는 사크레쾨르는 1919년에 세워진 로만비잔틴 양식 성당으로, 서유럽에선 접하기 쉽지 않은 양식이다.
희디흰 빛깔이 고고하고 단아하다. 마침 성당에선 성모 몽소승천일-공휴일-을 맞아 미사가 한창이다.
뒤쪽에 자리를 잡고, 사람들을 따라 일어서고 앉기를 몇 번 반복하자 이어 뭉클한 파이프오르간 연주가 가슴에 미끄러진다.
안내도에 표시된 몽마르트르 묘지는 사크레쾨르 성당의 동편이다.
산책하듯 한적한 거리를 걸어가다 보니 공휴일인데도 오픈한 제과점이 있다.
길게 선 줄이 빵 맛-먹어보니 진짜 맛있다-과 비례할 것이라는 근거 없는 결론을 내며 대열에 합류했다.
계속 뾰로통하던 기호 낯빛이 빵 봉지를 손에 쥐고서야 훤해진다.
한참을 걸어 도착한 몽마르트르 묘지는 제대로 묘지다.
날씨 따라 한결같이 칙칙하다. 에밀 졸라와 하이네, 베를리오즈가 잠들어 있다.
몽마르트르 남쪽 유흥가인 피갈 광장 주변엔 유명한 극장식당 물랭루즈가 있다.
풍차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입장 안내판에서 입장료를 확인하니 160-180 유로에 달한다.
기호 소원대로 물랭루즈 앞에서 출발하는 키작은 관광열차를 타고 천천히 몽마르트르를 달리는데,
열차 기사 할아버지의 웃음 띤 얼굴에 모두 즐거운 기분이 된다.
우리가 쏘다닌 파리 거리엔 맥주가 없다. 와인만 흔할 뿐 맥주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저녁은 애써 발견한 맥주 전문점인 비어가든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기호가 좋아하는 푸짐한 식사를 곁들인, 짙은 기네스맛이 일품이다.
늦지 않은 저녁, 지하철 객차의 한 취객 모습에 눈살을 찌푸렸다.
객차 유리창마다 지워지지 않게 힘껏 긁어 만든 낙서 자국들이 선명하다.
파리에선 거리든 지하철이든 벽이나 창에 그은 낙서를 발견하기가 어렵지 않다.
사람들끼리의 어우러짐이 힘겨워서일까. 파리의 여러 내음이 아스라한 밤이다.
( 2005년 8월 15일 월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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