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식사 후 민박집 주인아주머니가 조심스럽게 숙소 이동을 제안한다.
자기네 사정을 말하며 아래층 다른 한인 민박의 가족실을 추천하는데 흔쾌히 옮기기로 했다.
물론 그곳 아닌 중심가 호텔이다. 파리에서의 하루 이틀 쯤은 호텔을 원했었는데 오히려 잘됐다 싶은 마음이다.
짐을 챙겨 숙소 밖으로 나왔다.
간식을 사러 기호와 슈퍼마켓에 간 사이, 남편은 책자에 나와 있는 호텔에 전화를 걸어 예약하는 민첩성을 발휘한다.
쓸만하다. 산장 분위기 나는 호텔에 짐을 넣어두고 곧장 베르사유로 간다.
1685년에 완공된 베르사유 궁전은 누구나 다 들르는 명소로, 파리 근교인 일드프랑스에 위치해 있다.
벌써 11시다. 멀리 교외 전철인 RER C선이 보이는데, 재미있게도 2층짜리 열차다.
얼른 2층으로 올라가 전망 좋은 자리에 앉았다. 한산하다. 오래지 않아 종점인 베르사유 궁전에 도착했다.
우리가 다닌 관광지 중 제일 많은 인파가 모인 베르사유 궁전.
관광 성수기에다 휴관일 -월요일- 다음날이라 사람들의 무리가 끝이 없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유독 눈에 많이 띈다. 입장에만 30분이나 걸렸는데 그래도 보람 있는 시간이다.
예배당, 거울의 방, 그랑 다파르트망, 왕비의 침실 등 하나하나가 크고 호화롭기가 이를데 없다.
그 현란함을 담기 위해 여기저기서 플래시가 터지자 직원이 '노 플래시'를 외치지만 듣는 사람이 별로 없다.
궁전 내부 관람을 마치고 광대한 베르사유 정원으로 나왔다.
정원 그늘에 앉아 점심을 먹고 나니 눈이 감긴다. 화단과 분수, 조각상 등의 배치가 궁전 못지 않게 아름답다.
정원 저 끝까지 어떻게 간담. 정원 관람용 저속 차량을 빌려주는 곳에도 기다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믿을 것이라고는 튼튼하고 씩씩한 다리 뿐. 걷자~
물줄기를 틀지 않은 분수-넵튠의 샘-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려니 물에서 고약한 냄새가 난다.
파리 시내로 돌아오는 RER C선엔 승객들이 그득하다. 차창 밖에는 금속으로 된 연둣빛 다리가 보인다.
미라보 다리 아래 센 강은 흐르고 나의 사랑도 흐른다.... 시(詩)도, 미라보도 마음을 저민다.
잠시 호텔에 누워 고생한 다리를 다독인 다음 밖으로 나왔다. 호텔 근처 광장에 놓인 여신상이 이채롭다.
숙고(?)해서 정한 파리의 마지막 밤을 빛낼 메뉴는 피자다. 기호 의견을 물리칠 자가 없다.
야외 레스토랑의 불빛이 잔잔하게 어깨를 휘감는다.
가루가 묻어날 듯한 호텔 객실 돌벽을 등진 채, 창으로 바라보는 밤거리가 눈부시다.
파리의 마지막 밤은 지나간 짧은 사랑처럼, 그렇게 스쳐 흐르고 있었다.
( 2005년 8월 16일 화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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