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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04~08)/빈에서 부친 편지

비엔나의 가을

기호가 오늘 아침 또 캠프를 떠났다. 지난 여름의 캠프와는 다르지만.

기호는 3박4일 동안 학교 선생님, 친구들과 지낼 일을 즐거워만 하며 학교로 향했다.

언어-이번엔 영어- 안 통하는 것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낙천적인 성격이라 이번엔 특별한 염려는 안하기로 했다.

 

그런데, 캠프 준비 기간 동안 기호가 다니는 VIS에서 보여준 자기 방어 체계는 정말 철저했다.

가정통신문에는 캠프 기간에 아이가 문제를 일으킬 경우에 대한 물질적인 책임 소재를 명백하게 지적하고 있었다.

보험을 들거나 부모가 전액배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틀린 얘기는 아니었지만 아직은 우리나라 정서 기준으로는 지나친 사전 방어는 왠지 비인간적인 느낌이 들었다.

자기 자식이 사고 치면 안 물어낼 부모가 있나. 어쨌든 보험을 들었고 회신서와 보험 증서를 학교로 보냈다.

 

지난 주엔 남편이 일 때문에 한국에 갔고 오늘 기호마저 캠프를 갔으니, 난 완벽한 자유부인이다.

그런데, 이 나라는 놀 거리가 없다.

누군가의 말처럼 우리나라가 '재미있는 지옥'이라면 오스트리아는 '심심한 천국'이다.

 

학교에서 기호를 배웅한 후, 오전 내내 집에 있다가 집 주변을 산책했다.

도나우 강변에 자리한 31층짜리 우리 아파트. 우리 집은 6층이고 강과 반대쪽이라 강 조망권에선 탈락.

 

집 바로 서편에 위치한 도나우강. 낮엔 한적하고 조용하지만 클럽들이 모여있어서 밤이면 젊은이들로 북적인다.

가끔 깨진 병도 나뒹군다. 선진국도 정신 없는 애들이 많다.

강폭이 좁기 때문에 강을 가로질러 설치된 흔들리는 나무 다리를 밟고 건널 수가 있다.

 

아파트 정문으로 오르는 계단에서 바라본 주변 풍경.

지하철 역과 UN 건물의 반대쪽 정경이다. 이곳 아파트들은 간혹 고층이 있긴 하지만, 보통 4-8층 정도다.

고속도로와 연결되는 도로라서 자동차들이 속력을 많이 내다보니 창문을 열어놓으면 소음이 만만치 않다.

 

 

역시 지하철 역 반대편 아파트 쪽 도로. 애용하는 체인슈퍼마켓인 SPAR가 보인다.

 

지하철역 가는 오른편에 예쁘게 자리한 호수.

내가 늘 연못이라 우겼었는데, 오늘 다시 가 보니 한없이 넓기만 하다.

내 빈 마음만큼 호수가 넓어진 걸까.

호숫가 벤치엔 낮인데도 짝을 지어 다정스레 앉아있는 사람들이 내 눈을 시리게 한다.

하루가 유난히 긴 초가을 맑은 오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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