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탐사('04~08)/빈에서 부친 편지

시청사 앞의 겨울

며칠 전, 빈 중심가를 승용차로 지나다가 화려한 불빛과 어우러진 모습이 재미있어 차창에 코 박고 구경한 곳이 있었다.

바로 빈 시청사 앞 스케이트장. 낮은 기온이긴 하지만, 스케이트 타기엔 그다지 나쁘지 않은 날씨이다.

 

오늘은 일요일 오후라 사람들로 정신없이 붐빈다.

스케이트 코스 안내판도 어엿하게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경쾌한 음악에 몸을 흔드는 사람들도 여기저기.

 

시청사 광장엔 계절마다 여러가지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요즘 같은 겨울엔 스케이트장과 스케이트 대여소,  음식점까지 마련되어 있어서 한 나절을 보내도 충분하다.

 

스케이트장 개장시간은 아침 9시부터 밤 11시까지.

이용 요금은 오후 4시를 기점으로 나누어지는데 4시 이후의 요금이 더 비싸다.

두 남자는 4시 이후 입장권에, 스케이트까지 빌려 드디어 입장.

지난 두 달동안 학교에서 스케이트를 배운 작은밥돌 실력이나 살펴볼까나.

 

그런데 20년만에 스케이트를 탄다는 큰밥돌은 들어서자마자 허우적거리고, 바로 며칠 전까지 스케이트를 배우러 다녔던

작은밥돌은 금세 꽈당. 가르쳐준다고 같이 타자던 두 남자의 꾐에 넘어가지 않길 잘한 듯하다.

 

오후 5시가 되자 서서히 불빛들의 수가 늘어나고 관리요원들은 시민들을 스케이트장 밖으로 몰아낸다.

바로 얼음판 정비 시간. 정비 차량과 기구로 왔다갔다하며 한참동안 쓱쓱. 

 

공들여 구경할 땐 별로 느끼지 못했던 추위가 가만 서서 있자니 시베리아가 따로 없다.

몸도 녹일 겸 간식거리를 사가지고 와서 먹어보지만 추위는 물러갈 생각을 않는다.

역시 이런 추위엔 어묵 국물이 최고, 근데 없으니...

이 나라 사람들이 겨울이면 무지하게 들여대는 글뤼바인(따뜻한 와인)을 마실 걸 그랬나.

 

날은 점점 어두워지고 다시 스케이팅 시간, 사람들이 다시 봇물처럼 쏟아진다.

시린 발을 동동거리며 서 있는데 누군가 불쑥, '여기 뭐하는 거예요?'라고 묻는 여행 온 한국인.

 

손을 잡고 함께 미끄러지는 연인들, 귀여운 펭귄을 잡고 연습에 여념 없는 어린이들.

얼음 반짝이는 아름다운 겨울밤은 즐거운 음악과 함께 깊어가고 있다.

 

 

'탐사('04~08) > 빈에서 부친 편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비엔나에서 이사하기  (0) 2006.03.16
당신을 어떻게  (0) 2006.02.21
1월의 끝  (0) 2006.01.30
나에게 묻는다  (0) 2006.01.19
새해살이를 시작하며  (0) 2006.0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