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후만 헤아려 서울에서 12년을 생활하는 동안 집을 옮긴 것은 3차례.
그런데 오스트리아에 와서 거의 1년이 돼가는 지금, 벌써 3번째 집이다.
유럽 많은 나라들이 그렇겠지만, 오스트리아도 우리나라와 같은 포장이사는 아예 없고, 가물에 콩 나듯 있는 이삿짐센터의
이용요금 또한 어마어마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스로, 또는 주변의 도움을 받아서 집을 옮긴다고 한다.
3번째 보금자리를 찾던 그날도 역시 우리 안에 내재되었던 힘과 주변의 도움만으로 새 둥지를 틀었다.
2월 25일 토요일.
아침부터 짐을 싣기 시작했고 승용차로 10분 거리인 새 집까지 두 대의 차(작은 트럭과 승용차)로 2번 실어 나르니 이사 끝.
살던 집과 이사할 집 모두 덩치 큰 가구들은 대부분 구비되어 있었기에 크게 고생하지 않았다.
또한, 짐을 날라준 큰밥돌 회사 관련 직원인 슬로바키아 아저씨 둘이 얼마나 성심껏 도와주었는지 지금까지도 내내 고맙다.
지금 사는 이 집은 지은 지 13년 된 3층집으로, 동네의 아담하고 소박한 주택들과 괜찮은 조화를 이룬다.
지난 번에 살던 UN 맞은편 아파트보다 외곽이고 지하철이 없어 약간의 불편함은 있지만, 조용하고 한적하며 무엇보다
넓고 전원적이라 마음에 든다. 서울 가기 전까지 계속 살아야지.
남의 나라에서 이사하기는 우리나라보다 10배는 힘들다.
이사를 계획한 후, 해야 할 일은 많은데 할 수 있는 일은 없었기에 정신적으로 무척 짜증스러웠다.
집을 구하는 방법도 문제였다. 오스트리아에선 보통 부동산업체를 통해 집을 구하면 그 수수료가 월세의 3배라고 한다.
그래서 비싼 부동산 임대 수수료 때문에 부동산업체를 통하는 방법은 배제하고 보니 별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그러다가 작은밥돌 학교(VIS) 게시판에서 발견한 집 렌트를 알리는 광고문.
기회는 신기하고도 우연하게 찾아온다는 말이 맞나 보다. 그때 게시판을 통해 둘러보고 결정한 집이 여기다.
이사하던 토요일, 물건들이 늘어져 있는 모양새를 봐주지 못하는 성격이라 새벽까지 옮기고 치우고 정리하고.
다음날은 세세한 것까지 정리하고 마무리해서 이틀 만에 다 끝냈다,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은.
그런데,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이사 후 처리해야 할 일들 중 우리가 할 수 없는 일들은 마음처럼 빠르고 쉽게 마무리 되어주지 않았다.
위성TV 설치는 이사한 지 5일만에 겨우 제자리를 짚었고-1시간에 할 일을 3~4시간을 끄는 비상한 능력- 이전 설치할
인터넷과 전화 역시 이사하기 3주 전에 미리 신청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약속된 날짜에 방문하지도 않은 채 사과 하나
없이 배짱을 튕기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전화는 약속된 날짜에서 6일을 넘겨서야, 전화와 같은 회사인 인터넷은 오더에 착오가 생기는 바람에 기사는
오지 않고 모뎀만 우편으로 날아오는 불상사까지 겹쳐 우여곡절 끝에 직접 설치-기사가 오려면 또 1~2주 소요-했으니
결국 인터넷은 예정된 날로부터 14일이 지난 오늘에야 겨우 연결이 되었다.
오스트리아에서 생활한 지 1년이 가까워지는 지금, 이제 조금은 적응력을 발휘할만한데도 이 나라 사람들과 달리
무한한 기다림에 익숙하지 않기에, 해치워야 할 일들이 남아있음을 참지 못하는 나의 조급함은 달라지지 않는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우리나라만큼 서비스 정신이 강한 곳은 드물다. 오스트리아를 비롯한 유럽 선진국들은 노동자
권리 위주의 산업 정책을 펴기 때문에 기업이나 가게의 종업원들은 정해진 시간만 일하면 될 뿐, 그 이상은 누구도
요구할 수 없다.
그래도 기업이 움직이고 -오스트리아는 기계, 철강, 스키 산업 등이 세계 최고라 한다 - 국민들이 편안한 복지생활을
누리는 이유는 무얼까. 우리나라보다 덜 바쁘고 덜 열심히 일하는 것 같은 오스트리아가 경제적으로 훨씬 선진국인
까닭은 무엇일까. 그건 정책-인간이 먼저, 안전 우선-의 우수성과 투명성 때문이 아닐까.
어제, 겨울이 떠나는 듯한 눈이 내렸다.
이사의 긴 여독을 눈 속에 날려 보내며 새 집의 향기와 함께 맑고 환한 새 봄이 찾아오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