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부터 흩뿌리던 비가 아침까지 이어지고 있다.
한파와 강설 예보가 있던 터라 눈 아닌 비는 기뻐야 하는데 오랜만에 국경 넘을 계획이라 사실 반가운 비는 아니다.
게다가 3월 마지막 주 일요일은 유럽 대부분 지역에서 실시하고 있는 일광절약 시간제(서머타임)가 시작되는 날.
10월 말엔 다시 덤으로 찾을 수 있겠지만 어쨌든 오늘은 1시간을 통째 도둑 맞은 아침이다.
멀지 않은 곳으로의 여정이라 떠나는 휴일답지 않게 느긋한 채비를 하고 집을 나서니 벌써 11시가 넘었다.
여전히 비는 부슬거리고 거리는 더없이 한산하다. 오늘은 슬로바키아 수도인 브라티슬라바로 간다.
슬로바키아 전체 인구 540만명 중 46만여명이 모여 살며, 오스트리아 빈으로부터 동쪽으로 60km정도 떨어져 있다.
슬로바키아는 1918년 편입된 체코슬로바키아에서 1993년 분리 독립했으며 체코어와 비슷한 슬로바키아어가 공용어.
브라티슬라바라고 쓰여진 이정표를 따라 1시간쯤 달렸을까. 국경이다.
오스트리아에서는 독일이나 이탈리아 등의 서유럽 쪽엔 국경이 없다시피하지만, 체코나 헝가리, 슬로바키아 등 동유럽
쪽으론 국경이 철벽처럼 세워져 있어 여권 검사와 검색이 철저하다. 금세 통과한 오스트리아 국경과는 달리 슬로바키아
국경 경찰의 철저함(?)은 도를 넘는다. 게다가 동유럽 특유의 무뚝뚝하고 어두운 표정까지.
뒤에 길게 늘어선 차량들은 아랑곳없이 우리가 내민 세 개의 여권을 한장 한장 넘겨가며 샅샅이 살피더니 컴퓨터로 확인
작업까지 마치고서야 통과 표시를 준다. 사실 오스트리아 차량에 대해 슬로바키아 경찰이 지나치게 검색을 하는 덴 의도
가 있다고 한다. 우린 그 의도를 살필 필요가 없기에 그냥 쭉 오래 기다렸다.
와~ 슬로바카이. 우린 국경을 넘고는 연신 '슬로바카이'를 외치며 깔깔거렸다. 슬로바키아는 독일어론 슬로바카이다.
드디어 브라티슬라바에 들었다. 미리 챙겨온 지도를 보며 천천히 도로를 달리는데, 어디가 어딘지 알 수가 없다.
이리 헛짚고 저리 헤매고 한 끝에 겨우 구시가로 차를 들여놓았는데 도로 가장자리 주차장은 왠지 불안했다.
아직 살만하지 않는 동유럽 쪽엔 외국 번호판을 단 차량을 훔쳐가는 절도단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기에 다시 관리인이
지키는 지하 유료주차장으로 안착~
그리고는 환전을 한 후, 갔던 길을 되짚어 돌아오는데, 대형마트 앞 인도에 3-4m 간격으로 노인들이 구걸을 한다.
남의 나라 국민이라도 70-80대 노인들의 남루함에 마음이 아프다.
큰길에 트램이 지난다. 30년 전 서울버스와 같은 무덤덤한 모양새로 시민들을 싣고 빗길을 미끄러진다.
1시가 훌쩍 넘은 시각. 배가 고프다고 채근하는 작은밥돌.
일단 먹여야 군말 없이 따라다닐 터. 맥도널드 탁자 위에 놓인 장난감 딸린 어린이메뉴에 싱글벙글이다.
우산과 함께 만난 광장 한곳엔 차분하고 평범한 연분홍빛 시청사가 있다.
시청사 안 작은 뜨락엔 사악한 용(악마)을 벌하는 기사 모습을 한 분수대가 관광객을 맞는다.
시청사 옆으론 독특한 빛깔과 모양을 한 교회가 있고 광장 곳곳엔 많지 않은 사람들이 빗속을 거닐고 있다.
건물 형태나 빛깔이 독일이나 오스트리아, 체코와 많이 닮아있어 낯설지 않다.
아직 움트지 못한 광장의 나무들은 비에 몸을 내맡기고 살며시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예쁜 복층 카페 진열장엔 동화 '헨젤과 그레텔'의 주인공들이 마치 인형극을 하는 듯 몸을 움직이고 있다.
웃음 지으며 인형들에 몰두하는 작은밥돌~
광장 주변을 걸으며 성마틴 성당을 찾아가던 중 만난 근사한 신사들.
젖은 모자를 씌워주는 멋진 신사도, 하수구에서 몸을 내밀고 있는 열정적인 기술자도 매우 이채롭고 재미있다.
섬세하진 않아도 개성 넘치는 간판들을 지닌 상점을 지나고, 귀족의 저택이었을 법한 기품 넘치는 집을 지난다.
그러자 곧 이어 도나우 강변에 자리한 성 마틴 성당이 등장한다.
'탐사('04~08) > 동유럽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체코 : 프라하의 악사 (0) | 2006.05.16 |
---|---|
슬로바키아 2 : 봄비 속 브라티슬라바 2 (0) | 2006.03.28 |
체코 : 프라하의 무지개 (0) | 2005.07.21 |
체코 2 : 프라하의 봄 2 (0) | 2005.04.28 |
체코 1 : 프라하의 봄 1 (0) | 2005.04.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