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마틴 성당과 나란히 이어진 낡은 건물이 성당보다 앞서 우리를 반긴다.
이젠 아무도 살지 않는 그곳 창엔 유리 대신 고흐의 그림들로 채워져 있다. 이색적이면서도 독특하다.
순간 갈라지고 긁힌 벽면에 아까 스친 노인들의 얼굴이 아련히 겹친다.
고흐 건물을 지나 고딕 양식의 성당은 그 오른쪽에 입구가 있다. 내부는 생각보다 크지 않다.
300-400년의 역사를 지닌 성 마틴 성당. 바깥에선 색을 분별할 수 없던 스테인드글라스가 어두운 성당 안에서 제빛을 낸다.
성당 맞은편 높다란 돌담은 건물들을 따라 그 앞을 견고하게 가로막고 있어서 요새의 방어벽 같다.
그리고 저 언덕에 자리한 브라티슬라바성에 봄비 내리는 한적한 비탈길을 산책하듯 오른다.
젖은 비탈길엔 금빛 간판 화려한 작은 박물관도 있고, 자유와 젊음이 묻어날 듯한 레스토랑과 카페도 있다.
갤러리라 이름 붙인 자그마한 선물 가게도 제자리를 지키며 손을 흔들고 있다.
금세 성 입구다.
경사진 길 따라 돌담이 이어진다. 그런데 갑자기 나타나서 달려드는 송아지만한 두 마리 개, 완전 깜짝 놀랐다.
무시무시한 형상인데도, 주인은 아무런 안전 장치 없이 양을 몰 듯 개들을 데리고 가던 길을 간다.
어느 정도의 높이에 이르니 시내가 눈에 잡힌다. 비 내리고 흐려서 근사한 전경은 기대하지 않았다.
도나우 강을 경계로 구시가쪽은 주로 나즈막한 옛 건물들이, 강 저쪽 넓은 터엔 서울과 꼭 닮은 고층 아파트들이 빼곡하다.
브라티슬라바성은 15세기에 세워졌고 나폴레옹 전쟁 때 소실되었던 것을 2차대전 후 복구하였다고 한다.
걷던 담벼락을 돌아가면 성문이 나오고 바로 앞에 덩그라니 브라티슬라바 성이 놓여있다.
조금 전, 우리에게 사진 촬영을 부탁했던 예쁜 연인들이 저 앞을 거닐고 있다.
이제 작은밥돌의 한계다. 재미가 없다느니 볼 게 없다느니 비가 싫다느니 다양한 핑계를 대며 마구 걷는다.
이럴 땐 간식이 최고 명약이다. 간식을 약속하고는 성과 정원에 시선을 돌릴 것을 주문한다.
사실 '성'은 서민들이 사는 집과는 달라야 매력이 있는 것인데, 평이한 겉모습에 조금 실망스럽긴 하다.
빗속을 걷는 연인들의 뒷모습은 곱기만 하고, 성 앞에 모인 일본인 단체여행객의 모습은 괜히 눈엣가시다.
성에서 내려오는 코스는 오를 때와는 반대 방향으로 잡았다.
그런데 성에서 광장으로 가는 길은 아까 그 길밖에 없었나 보다. 하는수없이 빙돌아 처음 길로 되돌아간다.
돌아온 광장 옆에는 다른 광장이 있고 그곳엔 고풍스러우면서도 단아한 국립극장이 환하다.
작은밥돌이 원하는 간식은 피자. 비는 계속되고 있고 유럽 어디서나 흔한 피자집이, 이 도시에선 나타날 줄 모른다.
드디어 헤맴 끝에 찾은 피자 레스토랑. 그런데 주문을 하려니 피자가 안 되는 시각이란다.
커피 하나와 음료수 둘, 2인분의 파스타까지, 계산서에 쓰인 금액은 빈의 반에도 훨씬 못 미치는 착한 가격.
잠시 만났던 브라티슬라바의 봄비를 기억에 넣고 비엔나로 가는 길.
비엔나 쪽 하늘에 조금씩 햇살이 퍼지고 있다. 성 마틴 성당 옆 고흐의 해바라기처럼 맑은 빛살이 돋아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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