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무일이 제 날짜에 임박해서야 확정되는 큰밥돌 덕에, 부활절 방학임에도 불구하고 여행 계획을 세우지 못했다.
그런데, 세상에나 3일 연휴란다. 유럽 전역이 부활절 휴가라 예약 없이 떠날 호기도, 무모함도 없으니 어찌해야 할까.
너무 가까워서 외면해버렸던 바로 그곳이 우리의 해결책이 되려나.
빈에서 30km 거리의 바덴은 2,000년 전에 온천지로 개발된 곳으로, 오스트리아 황제와 음악가들이 즐겨찾던 휴양지다.
왠지 익숙한 지명. 서울 올림픽의 개최를 공포했던 독일의 바덴바덴과 닮은 이름이다.
바덴(바트)이란 수영장이나 온천을 뜻하는데 바덴바덴도 같은 용도로 만들어진 도시일 것이라고 추측해 본다.
유럽에서, 모르는 도시를 탐험할 때의 중심은 늘 성당이나 교회다.
성당의 첨탑을 발견하면 탐험의 반은 이루어진 것이나 다름없다.
14세기에 건축된 슈테판성당 옆에 차를 세우고 내부에 들어가니 노인 여럿이 발소리도 없이 성당을 둘러보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들려오는 크게 코 푸는 소리~
목청 좋은 작은밥돌의 작은(?) 목소리엔 빤히 쳐다보던 사람들이 코 푸는 소리는 외면한다.
기침 소리는 실례인데 코푸는 건 괜찮다니 이럴 땐 정말 문화적 이질감이 팍팍 느껴진다.
성당 한 켠의 특이한 광경. 1차 세계 대전 당시 전사자들을 새긴 명패들이 있는 방이다.
지금은 영세중립국인 오스트리아. 이제는 전쟁에서 자유롭기를 기원하는 것일까.
성당을 나와 광장 쪽으로 발길을 돌린다.
정결한 분위기의 시립극장이 보이고 노르스름한 건물들이 줄 서있는 골목도 보인다.
1833년에 건립한 삼위일체탑이 있는 중앙 광장으로 사람들이 모여든다.
주 깃발과 EU 깃발이 걸려있는, 200년 되었다는 시청사는 화려하지 않아서 친근하다.
아차차, 이곳을 그냥 지나칠 뻔했다. 날이 갈수록 깜빡증은 위험 수위다.
베토벤이 1821년부터 머물며 9번 교향곡을 작곡한 집을 모르고 가다니.
월요일이라 미오픈. 집 앞 문패는 베토벤인데, 현수막과 생동감 있는 조각상은 모차르트다.
어디선가 독특한 향이 온몸을 진동시킨다.
입구에 들어 내부를 들여다보니 온천 실내수영장이다. 수영장이라면 정신 못 차리는 작은밥돌이 안달이 났다.
다음을 기약하며, 점심을 미끼로 던지고는 다른 곳을 향하는 것만이 위기 탈출의 지름길.
1892년에 오픈했다는 작고 화사한 식당에서 마음에 점도 찍고 맥주도 찍는다.
배부르고 나른한데 때마침 나타나주는 예쁘고 고마운 공원.
맑고 온화한 오후라, 공원은 산책하는 사람들로 활기가 넘친다.
푸른빛 도는 잔디, 싹 틔우는 나무들, 꽃봉오리 여는 꽃들.
사람들도, 동물들도 축복하듯 뿌려진 봄 앞에 저절로 미소한다. 저기 잔디에 누워 잠들어도 좋을 것 같은 오후.
바덴의 포근한 봄날은 풀빛 되어 짙어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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