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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04~08)/남유럽 이야기

이탈리아 4 : 나부끼는 나폴리

아침이 늦었다. 지난 이틀은 7시에 한가로이 아침 식사를 챙겼는데, 8시 지난 오늘 조식당은 꽤 북적거린다.

그제 이미, 오늘 아침에 출발하는 나폴리행 기차표를 받아두었기에, 늦어버린 아침식사를 마치고선 서둘러야 했다.

체크아웃 후 역까지 걷는 5분 동안 벌써 땀이 흐른다. 로마보다 위도가 더 낮은 나폴리는 어떨지 명확히 짐작되는 상황.

 

10시 27분 출발 기차. 출발 예정 5분 전에야 열차가 플랫폼에 선다.

열차에 올라 좌석을 확인하고 앉아 출발을 기다리는데, 출발 시각 20분을 넘겨도 기차는 떠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물론 이탈리아어로 방송이 나오긴 했지만 알아들을 수 없으니 이유를 모를 수밖에.

옆자리 젊은 이탈리아 남자들에게 영어로 물어봤지만 말이 안 통하고. 기차는 시간을 낭비하며 1시간이나 늦어버렸다.

 

나폴리의 아파트

차창 밖엔 우리나라 시골과 닮은 정경들이 스치고, 2시간 후 나폴리 중앙역에 도착했다.

후끈하고 끈적거리고 역시나 소란하다. 택시들이 줄지어 있는 곳에선 승객을 두고 쟁탈전이 벌어진 듯 고성이 오간다.

지도보다 사람이 빠르리란 생각에, 길을 물어 호텔에 도착하니 또 점심 때가 지나있다.

 

일단 나가야지. 항구 쪽으로 가다가 우연히 발견한 피자 가게. 나폴리는 피자의 발상지가 아니던가.

피자 가게의 일본인 여직원은 우리가 한국인임을 금세 알아내고, 이탈리아 사람인 젊은 주인은 한물 간 우리나라 개그맨

이름을 대며 자기 친구라 자랑을 한다.

 

테이크아웃 가게라, 마르게리따 두 판을 사서 시원한 호텔로 왔는데, 2.5유로짜리 피자가 더이상 맛있을 수 없을만큼 환상이다. 

이탈리아 왕국 움베르토 1세의 왕비 이름을 딴 이 마르게리따 피자는 흰 치즈와 붉은 토마토 소스, 녹색의 바질이 어우러져

이탈리아 국기를 상징한다고 한다. 나중에 알고 보니 지역 신문에도 기사가 날 정도로 맛있는 가게란다. 

 

카스텔 누오보

호텔 왼쪽으로 가까운 곳에 바다가 있기는 했으나 화물선들의 하역장이라 바다 따라 걷기는 어려워 보였다.

걷기를 유보한 채 트램을 타고 다다른 곳은 '새로운 성'이란 뜻을 지닌 카스텔 누오보다.

13세기 프랑스에서 세운 이 성은 15세기 스페인의 아라곤왕국이 개축하면서 오른쪽 두 탑 사이에 흰 개선문을 세웠다고 한다.

 

왕궁

카스텔 누오보 건너편 왕궁 옆엔 18세기에 세워진 산 카를로 오페라극장이 볕을 받으며 서 있다.

오페라극장 맞은편엔 밀라노의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갈레리아 같이 생긴 움베르토 1세 아케이드가 우리를 햇빛으로부터

보호해 줄 채비 중이다.

 

산 카를로 오페라극장
움베르토 1세 아케이드

바다로 가는 길이다. 레비시토 광장엔 비둘기들이 향연 중인데, 왜 갑자기 영화' 시네마천국'의 한 장면이 떠올랐을까.

눈만 뜨면 '광장은 내 꺼야'를 외치던 영화 속 어느 사내.

 

플레비시토 광장

음, 바다 내음~  바다 향은 어디나 같은가 보다. 우리나라에서 맡던 바로 그 내음 그대로 바다가 한눈에 안긴다.

악시간, 이탈리아 가곡에 등장하던 그 산타루치아 항구가 여기구나.

항구 가까이 바닷가엔 고급 호텔들이 즐비하고 가로등 아래 연인들은 오래도록 서로의 몸을 떼어놓을 줄 모른다.

 

산타루치아 항구

항구 안쪽 바다를 따라 걷다가 만난 카스텔 델로보는 12세기에 세워진 후 오랫동안 감옥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감옥 옆에선 바윗돌 위에 옷을 던져놓은 사람들이 해수욕을 즐기고 있다.

 

카스텔 델로보

우리나라 같은 해변은 왜 없는 거야~ 큰밥돌은 해변을 갈망하고 있었다. 바다 봤는데, 뭘! 그래도 해변을 거닐어야지~

그러더니, 호텔 직원이 추천해 준 포실리포 거리 쪽으로 가기 위해 버스를 타야 한단다.

그러나, 버스까지 타고간 포실리포 바닷가에도 별장 같은 집들만 늘어서 있을 거닐 수 있는 해변은 없었다.

 

포실리포 거리 근처 바닷가

아침 식사가 늦더니 기차도 지연 출발하고, 점심도 늦고 저녁마저 지각이다.

힘든 다리 쓰다듬으며 바다 전망 예쁜 레스토랑에서 먹는 해물 스파게티 맛이 그래도 나쁘진 않다.

  

호텔로 돌아오는 트램 안에 함성이 울린다.

하, 월드컵이다. 호텔 직원에게 물어보니 8강 전 경기 중인데, 이탈링아가 이기고 있다며 흥분한 음성을 띤다.

바깥은 점차 어두워지고 여기저기서 폭죽이 터지며 오토바이와 자동차도 박자 맞춰 경적을 울려댄다.

꿈인듯 깨어난 새벽에도 그들의 축포는 계속되고 있었다.

 

 

< 2006. 6. 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