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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04~08)/빈에서 부친 편지

바보 같은 가을

가을이다, 빼도박도 못하게 푸르기만 한. 

비엔나 근교의 마이어링엔 고달픈 이야기가 전해진다.

프란츠 요셉 황제의 아들 유부남 아돌프는 17세의 베세라와 사랑에, 아니 불륜에 빠져

황실의 사냥터였던 이곳 수렵관에서 둘이 함께 세상을 버렸다 한다. 

 

마이어링 부근의 하일리겐크로이츠도 가을이다.

수도원과 지방자치 사무소에는 꽃과 신록과 낙엽이 공존한다.

 

뫼들링의 하늘도 높푸르다.

수목이 빛깔을 바꾸듯 사람들의 낯빛에도 가을이 그려져 있다.

 

도로에서 만난 어느 차량의 스포츠음료 광고 대형 캔에도 가을이 실려있고

작은밥돌 학교 앞 주차장의 고독한 1인 승용차도 가을을 앓고 있다.

 

그제 입금한 은행 계좌 입금증(이 나라는 통장 없이 계좌번호 적힌 카드만 발급)을

우연히 어제 다시 확인한 바,

계좌번호와 금액은 일치하는데 사람 이름은 내가 아닌 말도 안 되는 일이...

동일 은행이라 하더라도 지역별로 코드가 달라서

처음 계좌를 개설한 지역과 다른 곳에서 은행 업무를 처리할 때는

아주 주의해야한다는 사실을 깜빡한 것.

은행직원이 카드 확인을 정확하게 안한 실수와 내가 입금증 이름 확인을 안한 실수의 결과.

 

그래서 어제 오후, 부랴부랴 다시 은행에 가서 남의 계좌에 들어갔던 현금을

내 계좌로 넣고 돌아오는데, 사는 게 왜 이리 발끝에 차이는 돌덩이 같은지. 

말할 수 없이 바보 같은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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