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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04~08)/빈에서 부친 편지

그들의 에덴

옆집 마당

그들의 나신이 사라진 지 거의 한 달이 되어가나보다.

적당하게 이쁜 우리 옆집, 격자 무늬가 난 주방 창문엔 조리 기구들이 오밀조밀 매달려 있고, 현관 앞 계단엔 꽃들이

그 자태를 한껏 뽐내는 집이다.

 

석 달 전 어느 오후, 화장실 갔던 큰밥돌이 난리가 났다.

옆집 할배가 태고적 몸 상태로 마당에 나와 있다나. 욕실과 분리되어 있는 우리 집 화장실은 옆집 마당의 최고 조망권이다.

후다다닥~ 거실에 있던 작은밥돌과 난 비좁은 화장실로 뛰어들어갔다.

최소한 손바닥만한 수영 팬티는 입었을 것이란 내 짐작은 여지없이 박살나 버렸다. 태초의 아담 그대로였다.

 

그러나, 그건 시작일 뿐이었다. 따끈해진 5월 말부터 중년 부부의 에덴은 매일 계속되었다.

걸친 것 하나 없이 마당 의자에 누워 썬탠하는 일이나 코딱지만한 수영장에서 밤낮없이 헤엄치는 일은 기본이었다.

게다가 가끔은 미성년자 관전 불가의 야시시한 일도 벌어지니...

안 보이면 안 보련만, 우리 베란다에서도 보이고, 화장실에서도 제대로 보이는 이 시련.

 

그러다가 어떤 날은 20대 젊은 남녀까지, '아담과 이브'는 3명이 되기도 하고 4명도 되기도 했다.

아무리 사생활이고 개인주의지만 이건 너무하는 거 아냐, 그 집 주위 사방에 2층 집들이 늘어서 있는데 뭐냐고.

큰밥돌이 알아본 바, 그들의 행각이 이 나라의 일반적 행태는 아니며 직접 건의하든가 경찰을 통해 만류할 수 있다고 한다.

지난 번에 작은밥돌의 장난감 총알 때문에 뒷집에서 우릴 신고하는 사건으로 경찰 접대까지 했으니, 우리도 풍기문란으로

신고를 해 볼까.

 

이곳의 사우나는 모두 남녀 공용이란다. 모두가 훌러덩 벗고 뛰어드는 나체 수영장도 있다.

여름철엔 아슬아슬한 수영복을 입은 채 조깅을 하거나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아무리 사적 공간이라 하더라도 사람들 시선이 모일 만한 극적인 행태를 우리 정서로는 받아들이기가 쉽진 않다.

늘 숨기는 것보다는 드러내는 것이 더 건전하다고 외치던 나였건만 말이다.

이른 가을 바람 때문에 그들의 에덴이 보이지 않는 요즘, 그들의 저 쬐끄만 수영장 옆 티테이블에서 거품 뽀얀 카푸치노

한 잔 마시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무슨 이유일까나.

 

빈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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