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르릉 통통통 피시식.
모임을 마치고 귀가하던 보름쯤 전 토요일 밤. 미묘한 요동과 함께 요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이게 뭔 소리래? 꾸벅꾸벅 졸다 말고 화들짝 놀라 큰밥돌에게 물어보니 차에 탈이 난 듯했다.
차량 통행이 많지 않은 시각과 도로였지만, 마치 오랜만에 만난 연인을 반기듯 갑작스레 달라붙던 옆 차선의 승용차를
피하느라 속력을 줄이지 못한 채 핸들을 틀었던 까닭, 차선 사이에 턱이 있을 것이라 전혀 짐작하지 못한 까닭이었다.
급히 근처에 차를 세우고 차의 상태를 살펴보니, 이런이런, 오른쪽 앞뒤 두 타이어에 모두 커다란 구멍이 나 있었다.
스페어타이어는 분명 하나밖에 없는데 어쩔 수 없이 차를 그곳에 그대로 두고 귀가하는 쪽을 택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집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고 우리를 집까지 데려다줄 버스가 있었던 것.
다음날, 평화로워야 할 일요일 아침이 분주하고 번거로워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제는 일요일이라는 점이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토요일 오후와 일요일, 공휴일은 레스토랑과 주유소, 주유소샵을 제외하고는 모든 상점이 휴무.
더구나 차 없이는 가기 힘든 곳에 있는 회사에, 큰밥돌은 다음날인 월요일엔 세상 없어도 아침 일찍부터 가야 했기에
하루 안에 차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지인에게 구원 요청을 하여 6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주유소에 딸린 타이어샵을
수소문했지만 하필이면 우리 차에 맞는 타이어는 부재 중.
그래서 추천 받은 차선책은 렌터카였다.
이 나라에 연중무휴에다가 24시간 오픈하는 렌터카업체가 있다니, 게다가 우리집에서 가깝기까지.
커다란 사무실에서 상담을 마치고 나온 우리 앞에 떡하니 버티고 있는 쬐끄마한 차 하나.
" 무슨 차가 이렇게 코딱지만해? 그리고, 차에 뭐 이렇게 낙서가 많아? 29유로라니, 차에 온통 렌터카 광고 투성이군!
이걸 어떻게 타냐고 창피하게, 사람들이 쳐다볼 거 아냐!"
내 말에 우리 알뜰(?)한 큰밥돌 왈, "어차피 월요일 오후까지만 탈 차라서 제일 싼 걸로 달랬거든."
"그럼 진짜 하루에 29유로야?", "아니 세금, 보험료까지 다해서 45유로야."
잠시잠깐 탈 차라서 제일 저렴한 걸로 골랐다니 뭐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런데, 차에 올라보니 정말 작다. 이탈리아 차 '피아트 푼토'인데 진짜 딱 우리나라 티코만하다.
크지 않은 내 체격에도 의자가 비좁다. 게다가 차량 외부에 도배된 글자와 숫자들이라니.
그래도 큰밥돌은 그 차를 몰고 비엔나 1구로 갔다. 그곳에는 중세가 있고 역사가 있고 이야기가 있다.
그곳엘 가면 처음 여행 왔었던 그때의 설렘이 그대로 남겨져 있어 늘 가슴이 뛴다.
그런데 1구로 가는 도중, 어느 누구도 우리가 탄 재미있는 렌터카에 눈길을 주지 않는다.
어느 누구도 관심을 던져주지 않는다. 아하, 그랬구나. 나만의 비약이었구나.
이건 주목 받을 일도, 창피함도 아니었구나. 그저 누구나 겪는 일상일 뿐.
그러고보면 이 나라, 참 자유롭다.
체면과 허식이란 것이 만연하지 않다. 남의 이목에 목매지 않고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다.
어느 새 겨울이다.
지난 주까지는 포근하더니, 지금껏 겨울답지 않았던 기온이 아쉬운 듯 그제부터 부쩍 춥다.
참다운 자유가 공기에까지 묻어있는 이 나라.
에는 바람이 빰을 건드리고 가는 이 계절엔 그래도 가끔 그립다.
남에게서 그다지 자유롭지도 못한 내 나라가, 마음 붙이고 지내던 내 사람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