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유

(94)
국립중앙박물관 2006년에 개관한 새 국립중앙박물관에 가는 날,경복궁 근처에 박물관이 있던 시절엔겨울이면 한번씩 찾아가곤 했었는데,현대적인 새 박물관은 건물도, 위치도 아주 낯설다. 오후엔 어린이날기념 그림그리기대회까지 열린다니꽤나 복잡하리란 예상을 하고작은밥돌과 단 둘이 박물관 계단을 오른다. 박물관 입구엔 그림그리기대회 접수데스크도 보이고한쪽엔 '이집트 문명전'에 입장하려는 긴 행렬도 눈에 띈다. 우리 것을 알자는 의도로작은밥돌을 데리고 박물관 관람을 시도했는데,고고관, 미술관, 아시아관 등 전시실을 둘러보는 내내녀석은 흥미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유럽 박물관에 익숙해진 탓인지그리스 로마 신화가 없는 우리 박물관엔제대로 눈길을 주지 않는다.  중국 천지창조 신화 속에 등장하는 '복희와 여와'의 모사본엔 내 눈만 반..
대학로 큰밥돌이 독일과 오스트리아로 출장을 간 사이,작은밥돌과 난5월의 긴 연휴를 보람 있게 보내기로 했었다. 대학로 나들이는 10년만이고,연극을 본 지는 10년도 더 넘었다. 베스트셀러 소설을 무대에 올린 연극 '완득이'.17세 고교생이 주인공이라연극을 처음 관람하는 작은밥돌도90분 내내 웃음과 감동에 푹 빠졌다. 자그마한 소극장에서 관객과 호흡을 맞춘 '완득이'.그녀석의 만만치 않은 인생 항로에 발을 들여놓은 기분이아주 썩 괜찮은 날이다.
봄의 한가운데 귀국한 지 어느 덧 3개월이 지나갑니다. 이사하고, 복직하고, 연수 받고... 시간이 어찌 흘렀는지 모를 만큼 정신이 없었어요. 밥돌들도 직장과 학교로, 매일 분주한 나날들입니다. 남의 나라로 떠나기 전 30년도 더 살았던 내 나라인데, 거리에서 시도 때도 모르고 울려대는 경적소리에, 실컷 부딪쳐 놓고도 모른 체 시치미 뚝 지나치는 인심에, 여기저기서 터지는 부산스러운 비속어에, 아직도 한 번씩 고개가 돌아가는 걸 보면, 잠시 동안의 타국 생활에서 체득한 인간의 적응력은 상상을 뛰어넘나 봅니다. 타지에서 보지 못했던 벚꽃이 활짝 웃으며 인사하나 싶더니 어느 새 꽃잎이 거의 떨어져 아쉽기만 합니다. 그런데, 마음 한 구석, 유럽의 봄과 여름이 그립네요. 아니, 그곳에서 누렸던 여유와 추억이 그립다 해야 할..
향수 세상 모든 사물에는 향기가 있고, 그 향기를 가두는 방법에 빠졌던 한 남자가 있다. 천재적인 후각을 지닌 장 밥티스트 그르누이는 태어나자마자 고아원에 맡겨지고 13살부터는 가죽 제작상인에게 팔려가 혹독한 노동에 시달린다. 청년이 된 그는 어느 날, 심부름 가게 된 시내 중심가에서 갖가지 냄새에 빠지고, 우연히 만난 한 여인의 향기를 따라 그녀를 쫓다가 뜻하지 않게 그녀를 죽이게 된다. 센 강 다리 위엔 한때는 잘 나갔던 30년 경력의 향수 제조상인 주세페 발디니의 향수 가게가 있다. 염소 가죽 배달을 하러 발디니의 가게에 들른 그르누이는 발디니 경쟁자의 새로운 향수의 배합을 완벽하게 알아맞히고 지금껏 없었던 또다른 향수까지 만들어내는 천재성을 발휘한다. 그르누이를 고용한 후 발디니의 향수 가게는 날로 번..
먼 그대 꽃들은 별을 우러르며 산다. 이별의 뒤안길에서 촉촉히 옷섶을 적시는 이슬, 강물은 흰 구름을 우러르며 산다. 만날 수 없는 갈림길에서 온몸으로 우는 울음. 바다는 하늘을 우러르며 산다. 솟구치는 목숨을 끌어 안고 밤새 뒹구는 육신, 세상의 모든 것은 그리움에 산다. 닿을 수 없는 거리에 별 하나 두고, 이룰 수 없는 거리에 흰 구름 하나 두고. - 오세영, 먼 그대 - 아핫, 3월 말이 어찌 2월보다 더 춥다. 3월 하루, 어느 집 정원에 가득 핀 개나리를 보곤 나는 이미 겨울에게 등판을 보여줬었다. 그런데, 요상하고 괴이한 이 기후는 겨울과 봄의 경계를 알뜰히도 혼합시켜버렸다. 사흘 연이어 몰아치는 한동안의 눈발, 가야 할 길은 멀기만 한데, 봄은 그리움보다 더 멀기만 하다.
잊었더라 잊었더라 전화 벨이 울린다. 아득한 겨울 그림자 너머 더 아득한 당신의 목소리. 언제였던가. 당신이 준 명도 없는 거리, 내게 남은 채도 없는 흉터. 아직도 겨울인 그 거리엔 명도 없는 시간이 여전히 흔들리는데, 당신은 다 잊었더라. 이젠 굽이굽이 잊었더라. 2007. 12.
가을 햇볕 가을 햇볕 안도현 가을 햇볕 한마당 고추 말리는 마을 지나가면 가슴이 뛴다. 아가야 저렇듯 맵게 살아야 한다. 호호 눈물 빠지며 밥 비벼먹는 고추장도 되고 그럴 때 속을 달래는 찬물의 빛나는 사랑도 되고. 9월 중순이 지나면서 해가 말도 못하게 짧아져버렸다. 아직은 일광절약시간제가 실시되고 있는데도, 저녁 7시면 어둠이 내려버린다. 서머타임이 끝나는 10월말엔 깜깜한 오후 5시를 만날 것이고 12월과 1월엔 컴컴한 오후 4시를 맞아야 한다. 짧은 가을과 긴 겨울을 날 마음가짐이 재작년보다는 작년이, 작년보다는 올해가 조금씩이나마 느긋해지는 걸 보면, 아니 각오의 칼날이 무디어지는 걸 보면, 이곳의 비수기와도 꽤나 친근해진 건 사실이다. 이제 막 시작된 낙엽의 향연도 두럽지 않고 예측 불허의 비바람도 초연..
공사 중 공사 중 작년 이맘 때도 뜯어고치더니, 저 도로에 문제가 또 생겼나보다. 그때와 같은 이유로 또 공사 중. 한 번 열어 엎었던 길을 다시 열어젖히는 건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내 마음도 또 열리어 엎어지려 한다. 이건 분명 봄 하늘 탓이다. 네 탓은 정말 아닌 게다. 결단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