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 (94) 썸네일형 리스트형 흔적 흔적 높다란 돌성엔 설화 속 공주가 없었다 그곳에서 흘러나온 낡은 탄식은 그러기에, 가둬졌던 그녀가 두고간 해진 모자와 구겨진 신발과 휘어진 날개가 내는 소리 미처 가져가지 못한, 부석거리는 그녀 심장이 내는 소리 그래서 괜찮습니다 저로 인해 모든 것을 버리셔야 합니다.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저로 인해 천민으로 사셔야 할 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붓을 잡던 손에 흙을 묻히셔야 합니다.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초목으로 끼니를 연명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얼마나 더 다짐 받으셔야 나와 함께 떠나시겠습니까? 괜찮습니다. 다 괜찮습니다. 저로... 인해서인데요? 그래서 괜찮습니다. - 드라마 '대장금' 중 - 나라서 괜찮다구요? 나이기 때문에 다 괜찮다구요? 나도 당신이라서 괜찮습니다. 당신이기 때문에, 내 마음 당신으로 번졌기 때문에 괜찮습니다. 다 괜찮습니다. 별에 못을 박다 별에 못을 박다 류시화 어렸을 때 나는 별들이 누군가 못을 박았던 흔적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었다 별들이 못구멍이라면 그건 누군가 아픔을 걸었던 자리겠지 세상 변덕을 다 긁어모은 듯한 날들만 이어지더니 , 오늘은 몸서리쳐지게 화창한 날입니다. 그 햇살 맞고 싶어 테라스에 앉으니. 금빛 줄기가 마치 긴 가시처럼 내 낯을 향합니다. 어떤 일이건 그렇겠지만 부절의 반쪽처럼 완벽히 부합될 수는 없겠지요. 그래도 혹여 내 안에 가시나 못자국이 남아있진 않은지 숨돌릴 겨를이 생긴 이제야 두리번거립니다. 빈의 부신 햇살 한 쟁반, 가득 쏟아놓습니다. 사랑한다는 것으로 사랑한다는 것으로 서정윤 사랑한다는 것으로 새의 날개를 꺾어 너의 곁에 두려 하지 말고 가슴에 작은 보금자리를 만들어 종일 지친 날개를 쉬고 다시 날아갈 힘을 줄 수 있어야 하리라 . . . 사랑은 이기적이어도 아니 되고, 근시안적이어도 아니 되고, 상대의 지나친 헌신을 묵과해서도 아니 되고. 힘겨워서 슬쩍 덤 얹어 넘겨주고 싶기만 한 사랑. 비엔나의 로또 광고입니다. 울 작은밥돌의 첫 반응, '말도 안 돼'였죠. 제빵사가 빵 좀 검게 만든들 어때요. 매번 태우는 것도 아닐 텐데, 저렇게 땅 속으로 꺼질 듯한 표정을 하다니. 로또의 행운을 잡았다고 세상을 다 잡은 듯한 보얀 얼굴도 마음을 진동시키지는 않습니다. 검게 탄 크루아상보다 고가의 보석이 더 아름답게 여겨지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하루쯤, 아니 이.. 상심 처음엔 신발에만 물이 고인 줄 알았습니다. 물을 따라 버리고 신발을 말리면 될 줄 알았습니다. 키는 깊이를 모른 채 낮아져만 갔고 가슴은 오그라져 조여들기만 했습니다. 꿈인가 했지요. 자리를 털면 사라질 꿈이려니 했습니다. 늪이더군요. 누구도 날 건지러 오지 않았습니다. 거기서 벗어나려면 재단할 수 없는 늪의 수심을 스스로 밟고 또 밟아 가장자리의 풀 포기라도 잡아야 했습니다. 미궁이더군요. 빠져나올 수 없었습니다. 실타래를 쥐어주는 그녀조차 없었습니다. 촘촘하게 짜여져 바늘 끝조차 들어가지 않는 옷감처럼 마음엔 실 한 가닥 들어올 자리조차 없었습니다. 셈할 수 없는 날들 동안 매일 폭우가 쏟아졌습니다. 구름은 늘 비를 머금은 먹장구름이었고 바다에선 해일이 일었습니다. 하루, 또 하루 그리고 더 하루. .. 빗속에서 빗속에서 해 떨어지니 빗방울 듣는다. 햇빛 살라먹은 자리에 늦가을 풀잎처럼 누워버리는 고운 물기 비안개 속 누가 손을 건네고 그 손가락 한 마디 겨우 쥔 채 잃었던 시간을 더듬는다. 꽃이 오고 강이 오고 온 바다가 달려든다. 사랑임을, 애타게 노저어 지금도 항해하는 사랑임을, 이제야 알아채는 연연한 이 어리석음. 어느 새 비가 긋는다. 사랑하면 할수록 태양이 바다에 미광을 비추면 나는 너를 생각한다. 희미한 달빛이 샘물 위에 떠 있으면 나는 너를 생각한다. -영화 '클래식' 중- 몇 해 전, 비 내리던 겨울날 보았던 영화. 그 영화 속 어느 노래가 며칠 전부터 계속 맴돕니다. 서울서 쓰던 휴대폰에도 담겨 있었던 노래, 설레던 숨결 그대로 기억의 의자에 놓여있는지... 사랑하면 할수록 노을 지는 언덕 너머 그대 날 바라보고 있죠. 차마 말하지 못한 내 마음을 이미 알고 있었나요. 왠지 모르게 우리는 우연처럼 지내왔지만 무지개 문 지나 천국에 가도 나의 마음 변함없죠. 사랑하면 할수록 그대 그리워 가슴 아파도 이것만은 믿어요, 끝이 아니란 걸. 이제야 난 깨달았죠. 사랑은 숨길 수 없음을 우연처럼 쉽게 다가온 그대 이젠 운명이 된 거죠. 사랑하면 할수록 .. 어느 하루 어느 하루 내 청보라빛 심장에서 당신을 꺼내었다. 나의 가늘한 뼈마디를 잘라 당신의 우둔한 손끝을 이어준다. 이젠 어느 것도 남지 않아 애끓는 소리만 낼 뿐인 바다 모래 같은 나의 뼛조각들. 그것들이 연명할 날이 길지 않다는 것을 당신도, 나도 알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당신은 향연에 잠기고 나는 내가 지은 고독에 잠길 뿐. 세상은 이리도 애처롭게 눈부신데 당신의 가슴은 어디론가 치닫고 난 밤새 영혼의 바퀴를 돌린다. 이전 1 ··· 3 4 5 6 7 8 9 ··· 1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