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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삶과 사랑 사이

사랑할 시간

 

친구야, 넌 사랑을 믿니?

사랑이 무슨 종교니?

믿고 안 믿고 하게.

사랑은 그냥 달리기야.

하면 하는 거고 멈추면 멈추는 거고.

 

아니, 사랑은 마라톤이더라.

지금껏 달리고 있었는데,

이젠 언제 흰 수건을 던져야 하는지

기다리고 있을 뿐이야.

 

- 드라마, '90일, 사랑할 시간' -

 

 

비엔나 시청사 앞 광장에서 열리고 있는 크리스마스 시장엘 갔다.

지난 해와는 다른 무언가를 잔뜩 기대했는데, 100년 넘은 크리스마스 트리도, 상점의 모습들도, 사람들의 눈빛도,

4시가 되자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것마저 그대로였다.

아침에 쇼핑몰에서 봤던, 레고로 만든 트리도 작년 것 그대로 재활용이더만.

 

변하는 것 많은 세상.

옛것이나 사랑처럼, 변하는 것들에 대해 시름까지 풀어가며 목놓아 한탄하면서도, 늘 새로움을 갈구한다.

새로운 곳을 찾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시간이 살아간다.

그러나, 새 세월을 보폭 다르게 살아내면서도 변하지 않는 건 무심하고 겁없는 세월을 따르지 못하는 철없는 마음이다.

 

시장 구경의 하이라이트.

찬바람 부는 오후라 떡볶이나 국물어묵이 있으면 더없이 좋으련만, 꿩 대신 닭이라고, 빵빵하고 커다란 '빵'을 작은밥돌이랑

부단히 뜯어먹고 있는데, 기품 있는 노부부가 점잖게 뭐라 묻는다. 뭐라구요, 이 빵 어디서 파냐구요?

바로 그 가게 앞에서 움직이지도 않고 뜯고 있었건만.

조기요~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어린아이 같이 천진한 웃음을 짓는 노부부.

 

그들의 마음도, 내 마음도, 빵에 홀린 작은밥돌의 그것과 같았을 것이다.

진화하지 않은 채,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철없는 마음. 마음이라도 어리고 젊으니 천지신명께 감사해야겠지.

어제처럼 오늘도, 사랑할 시간이 멍석마냥 널려있으니 기뻐해야겠지.

크리스마스 시장이 준 익숙함은 시간이 흐를수록 정겨움의 악수를 건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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