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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04~08)/빈에서 부친 편지

그녀들의 속마음

이번 주초, 종영을 코 앞에 둔 드라마 '주몽'의 한 장면.

고구려 황후인 소서노는 십수년 만에 나타난 주몽의 첫 아내인 예소야에게, 예소야가 마땅히 황후 자리에 앉아야 한다 말하자

예소야도 이에 질세라 자신은 아들에게 아버지를 찾아주고 싶었을 뿐, 몸을 추슬렀으니 곧 궁을 떠날 것이라는 뜻을 전한다.

 

"흠, 고구려 황제의 두 아내가 다 황후 자리를 마다한단 말이지? 그럼, 내가 가야겠군."

우스개로 던진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얼른 큰밥돌이 답변을 한다. "가라, 가, 가라고~"

"그럼 지금 즉시 타임머신 대령하렸다. 1분 내로 타임머신을 준비 못하면 네 목을 칠 것이다!"   

 

드라마 속 이 두 여인네가 나눈 대화는 진심일까.

길고도 험난한 여정에서 지대한 역할을 하며 이제는 귀하디귀한 자리에서 근심없이 지내는 여인과 생사를 감춘 채 오래도록

모진 고생을 하다가 뒤늦게 나타난 여인. 이 둘 모두, 권력과 부와 사랑이 다 갖춰진 황후 자리에 욕심이 없다 한다.

한쪽에선 다른 여인에 대한 측은지심 때문일 수도 있고 다른 한쪽 입장으론 개국에 도움 주지 못한 자격지심 때문일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은 본디 개인적이며 이기적인 동물이다.

다른 사람의 이익보다는 내 실리를 먼저 돌아보게 될 수밖에 없다.

물론 티끌만한 사심 없이 남을 위해 애쓰고 돕는 사람도 많다. 이것 또한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러나 타인을 위한 일이, 삶의 일부가 아닌 자신의 삶 모두를 바쳐야 하는 상황이라면 누구든 선뜻 결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남편의 다른 아내를 위해 권력과 명예는 물론 사랑마저도 온전히 내어주겠다는 심사.

그것이 진심이든 아니든 평범하고 세속적인 내 머릿속으론 이해하기 쉽지 않다.

현실이 아닌 드라마-역사와도 아주 다른-이기에 인위적으로 만든 설정이긴 하지만 말이다.

 

누구라도 한 길 사람 속은 짐작하기 어렵지만 자연은 결코 그 속을 감추지 않는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 마당 잔디 위로 시간을 재촉하는 봄비가 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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