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절실히 느낀 점. 생활 물가와 여행객 대상 물가의 차가 가장 큰 나라가 아마도 이탈리아가 아닐까 한다.
이탈리아 관광지에서의 먹거리나 볼거리, 택시 요금은 그들보다 국민소득 높은 나라의 그 요금들을 훨씬 상회하니까.
한마디로 가는 곳마다 엄청난 바가지 요금이 여행객들을 덮어씌우고 있다는 말씀.
아무리 생각해도 어제 저녁, 3분동안 탄 택시요금이 10.9유로라는 건 정말로 말이 안된다.
여름 해가 짧지 않으니 심각히 부산 떨며 서두를 일이 없긴 했다.
오늘의 알람은 제대로 이쁘게 울려준다. 제시간에 일어나 단장하고 7시반, 아침 식탁으로 갔다.
어제 보았던 노부부만 조용히 소근대며 식사를 하고 있을 뿐 식당은 차분한 편이다.
우리가 식사를 하는 사이 한국인인 듯한 젊은 남자 하나가 홀로 탁자에 앉더니 빵 한 조각을 먹어치우곤 금세 사라졌다.
방랑 준비를 마치고 하늘을 보니 왕창 흐리다. 우산도 챙기자구~
산타마리아노벨라 역 앞의 시타버스 터미널엔 피렌체 근교 소도시로 갈 버스들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큰밥돌이 시에나행 왕복티켓을 사러간 사이 터미널 대합실을 훑어보니, 젊은 부부가 벤치에서 귀에 익은 한국말을 쏟고 있다.
조금 기다려 오른 시에나 행 버스는 2층 버스, 우린 안락하게 1층에 터를 잡았다.
잠시 후, 뒷자리를 돌아보니 비어있던 큰밥돌 옆에 누군가 앉아있다. 50일째 혼자 유럽을 여행하고 있는 부산 아가씨란다.
시에나로 가는 도중 흐린 하늘에서 비가 쏟아진다.
피렌체에서 늦게 출발한 버스는 예정 시각보다 늦게 시에나에 도착했다.
피렌체에서 출발한 비도 늦게 다다르는지 다행히 시에나의 하늘은 회색에서 벗어나 있다.
시타버스가 멈춘 시에나의 입구에서부터 느껴지는 도시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건물은 물론 공기에서까지 중세의 특별한 정취가 묻어나고 갈색이 주는 특별한 느낌이 마음 구석구석에 전해진다.
입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로마 건국신화 속 로물루스와 레무스도 시에나의 갈색 중세를 내려다보고 있다.
시에나의 중심 캄포 광장에 수많은 인파가 몰려있다.
특히 시청사인 푸블리코 궁전 앞엔 빽빽이 줄지어 선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광장은 너무나 웅장하고 멋지다. 조개 형상의 거대한 광장이 너무나 근사해서 마음에 울림이 그칠 줄을 모른다.
잠시 캄포 광장을 벗어나니 시에나 두오모 성당이 보인다.
피렌체 두오모보다는 작은 규모지만 외관의 섬세함과 아름다움은 그에 못지 않다.
두오모 근처 레스토랑에서 파스타와 피자를 메뉴로 점심식사를 한 뒤 다시 광장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떼었다.
좁은 골목길의 낡은 외벽엔 빨래가 펄럭인다.
바둑판 문양의 깃발이 걸려있는 다른 골목엔 멀리 푸블리코 궁전의 만지아 탑이 보이고, 같은 문양의 스카프를
목에 두른 사람들의 행렬이 길어지나 싶더니 이어 윤기 나는 말이 등장한다.
아, 시에나의 팔리오 축제인가보다.
물론 축제는 3일후인 8월16일에 열리지만 시청사 앞 형형색색의 깃발이나 골목길마다 걸린 다른 문양의 깃발은
축제 준비 중임을 알린다. 중세시대 시에나는 17지구로 나눠져 있었고 지구별 깃발은 지금까지 이어져 왔으며,
그 17개 지구에서 선택된 10개 지구에서 뽑힌 말들이 지금도 캄포 광장에서 연 2회 경주대회를 벌인다고 한다.
다시 돌아온 캄포 광장엔, 시청사 앞에 몰려있던 사람들이 흔적만 남긴 채 거의 사라져버렸다.
시청사 멀리 맞은편 분수대와 광장 주위의 계단식 의자와 레스토랑에선 활기차고 평화로운 중세에 맘껏 취해 있다.
피렌체 행 버스를 타기 위해 다시 온 정류장에서 또 만난 그 부산 아가씨.
우리에게 어디서 버스를 타야 하는지를 묻더니 정작 버스가 왔을 땐 사라져버렸다. 행방 묘연.
피렌체로 돌아가는 버스 안은 노곤하기만 하다. 또 쉬어야지. 저녁식사 시간까진 좀 여유가 있다.
호텔에 들어 오늘도 역시 혹사시킨 온몸을 한참동안 위로한 후 밖으로 나왔다. 아, 하늘 좋고~
아, 진짜 강변 경관도 좋다.
호텔 옆 아르노강은 분명 1,2급는 아닌 듯한데 강 속을 헤엄치는 물고기가 꽤 여럿이다.
다리 위에서 강물을 향해 먹을거리를 떨어뜨렸더니 수십 마리의 작은 물고기들이 재빠르게 덤벼든다.
게다가 세찬 물살 헤쳐가며 낚시하는 대단한 아저씨까지.
우리의 늦은 오후는 또 격렬한 사랑이 담긴 피자와 함께 느긋하게 저물고 있다.
< 2007. 8. 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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