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이탈리아 텔레비전에선 시에나 팔리오 축제를 연습하는 광경을 생방송으로 비춰준다.
말 경주 장면이 활기차면서도 박진감 넘친다.
오늘도 역시나 맑은 날, 아침식사 후 짐을 모조리 다 챙긴 후 기차역으로 향했다.
자동판매기에서 발권한 승차권을 든 우리 앞에, 산타마리아노벨라역을 출발하여 피사를 경유하는 기차가 미리 멈춰선다.
웬일로 이렇게 기차가 빨리 왔을까나. 사실, 한번도 제시각에 출발하거나 대기하고 있는 이탈리아 기차를 탄 적이 없기에
신기하기까지하다. 뭐, 이렇게 횡재하는 날도 있는 거지.
출발까진 시간이 남아있고 승객도 많지 않아 마음에 드는 좌석을 골라 앉았는데, 우리 뒤쪽에 중국인들이 무리지어 앉는
사태가 일어났다. 시끄러워지리라 각오했지만, 다행히 비교적 조용한 말소리나 차림새를 보니 중국 본토인이 아닌 듯하다.
검표원이 지나간 후, 아기 안은 이탈리아 여자가 여행객들을 향해 애절하게 구걸을 한다.
엄마 품에 물색 모르고 안겨있는, 여행객들의 동정을 사고 있는 아기가 가엾기만 하다.
피렌체에서 기차로 1시간 조금 더 걸려 도착한 피사에도 아르노강이 흐른다.
피사 중앙역 인포에서 받은 지도를 들고 걸어걸어 강폭 좁은 아르노강을 건넌다
.
드넓은 잔디밭, 그 위에 피사의 사탑이 있었다.
'피사엔 사탑만 달랑 있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이 드넓은 잔디밭 위에 있는 건 정말사탑과 두오모와 성벽 뿐이다.
그리고 사탑이 기울어질세라 손바닥으로 손가락으로 혹은 온몸으로 받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과...
피사의 사탑은 1174년에 착공하여 10m 높이에 이르렀을 때 지반이 내려앉아 잠시 공사를 중단했고, 이후 계속 공사를
진행하여 1350년, 8층탑으로 완공했다. 지금은 거대 와이어가 사탑을 지탱하고 있고, 보는 방향에 따라 기울기가 완전히
다르게 보인다.
현재도 조금씩 기울어지고 있다고는 하는데, 저러한 상태로 탑이 서있다는 건 기이하다 할밖에.
사탑 옆 잔디 위 로물루스와 레무스는 시에나의 그것들처럼 종일 늑대 젖을 먹고 있고...
점심식사를 하러 가는 길에 띈 어느 규모 작은 궁전.
화려하지도 웅장하지도 않지만, 이탈리아 중부 토스카나의 색깔을 나타내기엔 충분한 자태다.
기우뚱한 사탑 그림을 현란스럽게 그려넣은 시티투어버스가 우리 앞을 지난다.
영어는 물론 독일어, 중국어, 일본어로까지 안내가 가능하다는데, 유럽 어딜 가더라도 수도 없이 마주치는 한국인을 위한
한국어 안내는 어딜 가도 정말 흔하지 않다.
조금 전 식사를 마치고 나온, 소박한 2층 야외 식당이 옆 건물, 지붕, 하늘과 더불어 어울림을 만들어 내고 있다.
다시 피사 중앙역의 인포메이션으로 간다.
빈으로 돌아가는 저녁 비행기까진 상당한 시간이 남아 있었기에 예정했던 피사 근처 해변에 대해 큰밥돌이 문의한다.
비아레지오 해변까지는 버스로 40여분. 국도를 달리는 차창 밖 정경이 평화로워 보인다.
버스에서 내린 직후, 돌아갈 버스 시간을 질문하는 작은밥돌을 보며 운전기사와 두 동양여인이 미소지으며 바라본다.
하긴 우리 작은밥돌이 지나치게 씩씩하긴 하지~
고운 모래 펼쳐진 비아레지오 해변의 비치 의자에 앉아 하늘을 보고 바다를 보니, 이곳이 천국인가 싶다.
수영복 대신 입은 알락달락한 팬티로도 두 밥돌들은 즐겁고 기쁘다.
옆 파라솔의 할아버지는 독서 삼매경에 빠져있고, 오른편 파라솔 속 피부색 다른 남녀의 애정 행각도 꾹 참고 봐 줄만하다.
두어시간 해변을 즐기고, 다시 피사 행 버스를 타려 정류장에 서 있는데 재미난 행렬이 지나간다.
꽃 장식을 한 높고 커다란 수레를 몇몇 사람들이 뒤에서 밀고, 수레 2층에선 불교적인 행색을 한 여러 남자와 한 여자가
행렬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웃으며 무언가를 던져준다. 바닥에 떨어진 그것을 주워보니 작은 비닐에 과자가 들어있다.
비아레지오에서 출발한 버스는 우리를 예쁘고 아담한 피사 공항에 떨어뜨려주었다.
발권 기계 고장 때문에 체크인데스크 앞에서 오랜 시간을 서있으려니 온몸이 쑤신다.
간단히 빵 조각으로 허기를 달랜 후, 탑승구에서 항공기까지 데려다 줄 버스에 올랐다.
그런데 이런 처음엔 분명 셋이 나란히 서있었는데, 끼여드는 승객들-이탈리아 후진성- 탓에 큰밥돌이 뒤로 밀렸고,
그 사이 버스엔 승객이 다 차버려 큰밥돌 바로 앞에서 버스 승차 순서가 끊기고 만 것이다.
안녕, 다음 버스로 오라구. 난 이 사태가 재미나기만 한데, 작은밥돌은 아빠와 떨어지니 조바심이 나는지 안절부절.
기내에서 구입한 -저가항공은 음료, 빵 등을 다 판매- 콜라를 마시며 작은밥돌이 기분 좋은 웃음을 날린다.
빈에 도착한 비행기 안에 또 박수소리가 힘차다.
집으로 돌아와 오랜만에 먹는 라면에도 기분 좋은 웃음이 퍼진다.
올려다 본 거실 천장엔 여행의 환희가 셀 수 없이 가득하다.
< 2007. 8. 14. 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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