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탐사('04~08)/남유럽 이야기

스페인 1 : 가우디의 도시

1988년 9월, 캠퍼스엔 서울 올림픽 자원봉사요원의 유니폼을 입은 학생들이 나풀거리고 있었다.

열전을 마무리하는 날, 마지막을 장식하며 장내에 지속적으로 울리는 소리는 낯선 지명인 '바르셀로나, 바르셀로나'였다.

서울올림픽 폐막식에서 처음으로 들어본 지명, 1992년 올림픽 개최지인 바르셀로나로 크리스마스 연휴에 기대어 떠난다.

 

12월 23일, 비행기 출발 시각은 8시 40분. 지난 벨기에행 항공기가 6시 50분 출발이었던 것에 비하면 양반이다.

7시에 도착한 공항은 크리스마스 휴가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로 잔뜩 와글와글거린다.

항공 체크인을 한 다음, 공항 내의 빵집에  들러 아침 위장을 든든히 채우고 곧 탑승을 했다.

 

작은 항공기는 승객들로 채워지고 건너편 자리의 아이들 및 아저씨와 일행으로 보이는 한국아짐 둘이 우리 앞에 앉는다. 

그런데, 이 아짐들, 항공기가 이륙하기가 무섭게 의자를 뒤로 완전히 젖혀버린다. 

2시간 조금 넘는 단거리 비행인데 시간 내내 계속 이리도 배려심 없는 행각을 해야 할까. 

장기 비행이 아니라서, 아무리 봐도 좌석 완전히 젖힌 사람은 그네들밖에 없구만. 후진적이게시리. 

 

항공기 유리 너머로 맑은 하늘과 햇빛과 바다가 비친다.

바르셀로나 공항에 도착한 후, 수화물로 보낸 캐리어백을 찾으러 컨베이어벨트 맨 앞에 역시나 작은밥돌이 첫번째로 서 있다.

작동이 늦어지는 벨트 앞엔 아까 그 한국 아이들도 대기 중. 다시 작동이 시작되자 금세 캐리어을 얼른 쟁취해오는 작은밥돌.

 

이 나라, 공항에서부터 참 맘에 든다.

빈은 겨울인데, 여긴 완벽한 가을. 푸른 하늘과 파릇한 야자수가 기분을 신나게 돋워준다.

기차를 타고 예약 호텔이 있는 산츠 역으로 향했고, 산츠 역에선 스페인어만 줄줄 내뱉는 인포 센터에 길을 물어 호텔로 들었다.

 

점심을 챙겨먹고 호텔 바로 앞에 모셔져 있는 지하철 역으로 간다. 오호, 재미있는 지하철! 

낡은 객차에 그려진 노선엔 정차역을 알리는 불빛이 깜박거리고, 목청 좋은 두 남녀는 번갈아가며 만담하듯 안내 방송을 한다.

그러나, 노선을 바꿔타기 위해 걸어야 하는 환승 거리는 서울 잠실역처럼 너무나 무시무시하다.

 

바르셀로나의 첫 걸음은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1852-1926)가 설계하고 건립한 역작, 성가족 성당(Sagrada Familia)이다.

1882년에 착공된 성가족 성당은 100년이 훨씬 넘은 지금까지도 공사가 이어지고 있으며 완공 날짜 역시 알 수가 없다고 한다. 

 

독특한 외관의 입구를 따라 내부로 들어간다.

기둥 하나, 벽면 하나, 천장의 한 구석까지도 같은 모양새가 발견되지 않는다.

다만, 아직도 공사 중이라서 완성품을 좋아하는 나 같은 사람은 더욱 철저히 아쉬울 수밖에.

 

사그라다 파밀리아, 즉 성가족은 요셉, 마리아, 예수를 뜻한다.

따라서 성당의 각 건축면은 탄생부터 부활까지 예수의 일생을 주제로 삼고 있다고 한다. 입구 반대편으로 돌아가 보았다.

무어라 표현할 길 없는 개성적이고 톡특하며 섬세한 조각들이 성당 외관을 장식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탄생

>이제 아까 들어왔던 매표소 쪽의 건축면으로 다시 갈까 하는데, 앞서 가던 작은밥돌이 순간 이동을 해버렸다.

기념품샵으로 갔을 거라 짐작하여 그곳에 갔더니 이런, 녀석이 없다. 한참 후에야 샵에 나타난 녀석.

 

샵의 반대편에 있는 성당 지하의 전시실.

이곳엔 성당 건축과 관련된 여러 도면과 모형, 건축 원리 등이 전시되어 있으며 그 과정을 제작한 동영상도 감상할 수 있다.

한쪽엔 고해성사실이 제작 완료되어 몇십년 혹은 몇백년 후의 신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지하에서 빠져나온 후 바라본 하늘은 더 눈부시게 푸르다.

성당 건축면에 걸린 각기 다른 색깔의 종탑들이 크레인과 맞물려 어울리지 않을듯한 조화를 만든다

.  

성당 외관을 한바퀴 쭉 돌고나니 다시 매표소 쪽 입구가 나왔다. 

아까 성당 울타리로 들어왔을 때 처음 본 건축면인 '그리스도의 수난'이 펼쳐진다. 

카톨릭이나 성서에 관한 지식이 전무한 나도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장면인데, 가우디 생전에 완성된 '그리스도의 탄생'

파사드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가 느껴진다.  

 

그리스도의 수난

바르셀로나는 스페인 북동쪽에  위치한 카탈루냐 주의 주도이며 항구 도시다.

스페인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이고, 스페인으로 편입된 지 300년이 채 안 되며, 스페인어 외에 카탈루냐어도 함께 사용한다.

그러고보니 시내 곳곳에 성가족 성당의 출구처럼 카탈루냐어와 스페인어, 영어가 나란히 쓰여있다.

 

멀어지는 성가족 성당을 천천히 바라보며 지하철로 들었다.

바르셀로나 지하철은 역 안으로 들어갈 땐 기계에 티켓을 넣어야 하고, 역 밖으로 나올 땐 그냥 출구로 나오면 된다.

4일 동안 우리가 애용한 지하철 티켓은 'T-10'으로 불리는 10회권으로, 1회권보다 회당 금액이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또 여럿이 함께 사용해도 되니 여러모로 편리했다.

 

이어 다가선 곳은 카사 바트요. 역시 가우디의 손을 거쳐 1907년에 완공된 곳이다. 

빈의 훈더트바써하우스와는 달리 대로변에 독야청청, 눈에 번쩍 띄게 자리해 있다.

유리 모자이크로 된 벽면과 환상적인 색감, 그리고 해골이 연상되는 발코니 난간이 아름답고 화려하다. 

 

카사 바트요

카사 바트요에서 산책하듯 걸어가면 가우디의 또다른 건축물인 카사 밀라를 마주한다.

파도 치는 듯한 역동적 곡선과 옥상의 투구형 굴뚝은 상식과 고정관념을 깬다. 카사 바트요처럼 이곳도 여행객들로 장사진이다.

 

카사 밀라

1년 중 해가 가장 짧은 시기. 빈은 4시면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하는데, 여긴 5시가 훨씬 넘었는데도 환하다.

바다 내음 나는 항구 앞 광장에선 거리 악사들의 연주가 흥을 내고, 음악에 맞춰 너덧살 짜리 여자아이가 그 앞을 뛰어다닌다.

 

6시, 맛집으로 알려진 해산물 식당으로 들어갔다. 한 테이블에만 손님이 있을 뿐 식당 안이 텅텅 비어있다.

스페인에선 저녁식사 시간이 보통 8시부터라 식당들도 8시가 돼서야 저녁 오픈을 한다고 하는데, 종일 문을 열고 있는

이 식당에 고마워해야 할 상황이다. 8시까지 기다리라면 우리 밥돌들, 분명 숨 넘어간다.

 

종업원에게 샹그리아와 해산물구이, 해산물빠에야 2인분을 주문하니, 해산물구이 양이 엄청나게 많다며

빠에야의 주문을 강력하게 만류한다. 그것도 스페인어로만 줄줄이.

엥, 주문 말리는 종업원은 처음이군. 그러면 빠에야는 1인분만 주세요...

먼저 나온 해산물구이(빠리야다)의 양을 보니 많긴 엄청 많다. 게다가 맛도 엄청나게 맛있다.

 

일요일의 바르셀로나는 한적했다. 

크리스마스 불빛들이 자리한 거리에는 가을처럼 바람따라 낙엽이 구른다. 

샹그리아로 발그레 상기된 우리 얼굴에도 부드러운 바람이 스친다.

 

 

 < 2007. 12. 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