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새벽에 떠진 눈.
햇반과 계란, 된장찌개에, 도이치식 감자샐러드와 야채샐러드까지 곁들어 7시에 아침식사를 한다.
감자샐러드는 2~3mm 두께의 익은 감자를 새콤한 소스로 버무린 것인데, 일반 마트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다.
비엔나에선 보통 병조림 형태로 판매되지만, 이곳 하이델베르크 REWE에선 불투명한 플라스틱통에 넣어 판매하고 있다.
우린 요 카르토펠살라트를 엄청 좋아해서 독일이나 오스트리아를 여행할 때마다 늘 반찬으로, 또 안주로 즐긴다.
근데, 남편 왈. 요 감자샐러드가 맛이 없단다. 비엔나에서 먹은 게 훨씬 더 맛있단다. 그런가, 난 얘도 맛있는데.
식사 후엔 리셉션에서 무료로 제공되는 커피와 빵을 즐기며 잠시 뒹굴거린다.
크루아상류의 빵은 꽤 맛있는데, 커피는 별 맛이 없다.
9시, 숙소 근처 정류장을 향해 길을 나선다. 아주 화창한 날씨다.
역에서부터, 또 Hauptstrasse에서부터 숙소까지 두 차례만 버스 이동하느라 1회권(1.3유로,짧은구간용)을 끊은 어제와는 달리
오늘은 교통권 자동발매기에서 2명 분의 1일권(9.2유로)을 구입했다.
Hauptstrasse까지 버스로 움직인 후, 비축된 체력을 바탕으로 구시가를 제대로 즐기기로 했다.
밤엔 특별히 야경까지 맞이할 계획이니 1회권을 여러 번 구입하는 것보다 편리성이나 비용면에서 1일권이 더 낫다.
피터교회 정류장에서 하차한 우리는 근처에 있는 대학도서관을 잠시 기웃거리다 Hauptstrasse쪽을 향했다.
학생감옥이 오늘의 첫 행선지다.
2008년 3월에 찾은 학생감옥은 부활절 연휴기간이라 3일 내내 굳게 닫혀 있었다.
사실, 부활절과 성탄절 기간은 카톨릭나 개신교를 국교로 삼는 국가를 여행하기엔 최악이다.
이 기간엔 주요 명소나 박물관, 미술관 등을 개관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니까.
입장권을 구입하고 계단을 올라 학생감옥으로 들어선다.
학생감옥 내부엔 옛 학생들이 남긴 영혼의 흔적와 집기들만 있을 뿐 숨소리 하나 없이 매우 고요하다.
18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치외법권이었던 하이델베르크 대학은 경범죄를 저지른 학생에게 경찰을 대신해 벌을 내렸는데,
학생들은 죄에 따라 1일에서 30일까지 이 감옥에 갇혀 있었다고 한다.
10시 조금 넘은 시각, 장엄하고 비장한 역사의 현장을 마주한 듯 영상 버튼을 누르며 넓지 않은 공간을 둘러본다.
학생감옥의 실내 벽면과 천장엔 그들의 사고와 가치관이 담긴 단어와 문장, 그림들이 빼곡하다.
사면에 갇힌 옛 청춘들은 어떻게 이런 범상치 않은 방법으로 답답함을 풀어낼 생각을 했을까.
이런 막돼먹은(?) 공간을 보존하여 역사적인 공간으로 승격시킬 수 있는 사회 또한 존경스럽고 또 부럽다.
그러다가 우리 눈에 걸린 찬란한 한글들.
오래된 독일어 사이에 자리잡은 한글은 대부분 2000년 이후에 써 댄 낙서들이었다. 친절하게 날짜까지 써두었으니.
최근에 쓴 듯한 독일어나 중국어도 간혹 보였지만 한국어 낙서의 수와 양은 가히 압도적이었다.
상황이 이러하니 낙서 금지와 처벌을 알리는 한글 안내문이 창문 정면에 나붙을 수밖에.
우린 학생감옥의 내부와 역사를 보러 왔을 뿐인데, 왜 부끄러움은 우리의 몫이 돼 버렸는지.
저 벽면에 자신의 이름을 새긴 당사자들은 그후 늦게나마 제 행위을 부끄러워하고 반성했을까.
아니 이런 작태를 벌였다는 것을 영영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건 아닐까.
학생감옥 입장권은 대학 박물관과 옛 강당(Alte Aula)도 함께 둘러볼 수 있는 콤비 티켓이다.
하이델베르크대학의 지난 세월을 보여주는 박물관 내부는 슬쩍 지났고, 한국인을 만난 옛 강당은 아주 근사했다.
강당 내부는 물론 좌우 창에서 쏟아지는 환한 하늘조차도 정말 예뻤으니까.
다시 Hauptstrasse로 들어 하이델베르크 교회를 지나고 마르크트 광장을 스친 후, 카를테오도르 다리로 향한다.
카를테오도르 다리는 알테 브뤼케-오래된 다리-라고도 하는데, 나무로 지었던 것을 18세기 후반 석교로 다시 건축했다고 한다.
다리 초입에서 만나는 원숭이 조형물, 얘를 만지면 부자가 된다 했나, 건강해진다 했나.
음, 우린 요 조형물, 안 쓰다듬은 것 같지?
폭 좁은 네카 강이라 다리 역시 길지 않다.
카를테오도르 다리를 건너면 하이델베르크성이 마주 보이는 비슷한 고도에 '철학자의 길'이 있다.
철학자의 길은 18-19세기 저명한 철학자인 헤겔, 야스퍼스, 하이데거 등이 산책을 하며 명상에 잠겼던 길이란다.
9년 전 3월엔 추위와 바람 때문에 이곳엔 오르지 못하고 하이델베르크성에만 입장했었다.
경사진 길을 천천히 걸어오른다.
명망 높은 철학자들이 산책하며 명상했던 길이고, 특별히 덥지 않은 날이니 오르기 어렵지 않은 길이라 여겼지만,
철학자의 길은 '내려올 산을 왜 올라가'하는 인생관을 가진 내겐, 운동화 아닌 샌들을 신은 내겐, 평탄한 산책길이 아닌
비탈진 산길이었다.
어느 정도 올라, 저편에 하이델베르크성도 보이니 이젠 하산하세. 하이델베르크의 시계는 12시반을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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