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서 날아온 전화벨 소리에 5시, 잠에서 깼다.
하늘은 어제와는 달리 흐린 빛을 보이고, 호텔 규모에 비해 넓은 주차장엔 단체여행객을 위한 버스가 주차해 있다.
구시가와 이렇게 인접한 호텔에 단체여행이 묵다니. 우리나라 여행사도 패키지여행객에게 이 호텔을 제공할 수 있을까.
공원으로 둘러싸여 있고, 구시가까지 도보 3분, 콜마르 역까지 도보 5분이면 충분하니 최적의 위치다.
아침 식사를 하는 식당엔 다양하진 않지만 깔끔한 먹거리들이 아늑한 분위기 속에 펼쳐져 있다.
일본인도 보이고, 중국인들도 자리하고 있는 내부가 아주 조용하고 차분하다. 오호, 커피 맛도 괜찮은데.
식사를 마친 다음, 공원이 병풍이 되어주고 있는 호텔 주변을 산책한 후 서울을 지키는 아들녀석과 톡을 했다.
9시, 조금 전부터 시작된 빗방울은 콜마르의 오래된 보도를 적시고 있다.
오래 내릴 비는 아닐 거란 생각을 하며 우산을 받치고 천천히 구시가로 향한다.
비 때문인지 아침이라 그런지, 거리는 인적 없이 비어있고 구시가는 중세 속 고요함만 흐른다.
지도가 필요하지 않은 동네라, 눈길 가는 대로 발길 가는 대로 걷다보면 이것도 보이고 저것도 만난다.
옅은 황토색이 감도는 '메종 데 테트'('머리의 집'이란 뜻)는 콜마르의 16세기 전통 건축물 중에서도 가장 격조 있는 건물로,
사람과 동물 머리 조각상 106개가 건물 정면과 지붕, 테라스와 창틀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다.
'메종 데 테트'의 맨꼭대기에 배치된 인물상은 왼손엔 와인병을, 오른손에는 와인 잔을 들고 있다.
'자유의 여신상'의 건축가 바르톨디가 1902년에 만든 이 조형물은 이곳이 와인 거래소였음을 알려준다.
콜마르의 빗줄기는 아직도 작은 위세를 거두지 않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처럼 우산을 들고 동네를 서성이지만, 또 어떤 이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비를 맞으며 다닌다.
비엔나에 살 때도 그러했듯 많지 않은 양의 비에 대해선 참 관대한 사람들이 많다. 친구처럼 그저 받아들인다.
들어가 볼 생각을 전혀 하지 않은 채 운터린덴 미술관 앞을 지나고, 콜마르 시청사 앞에선 정문 위편에 새겨진 단어들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 Liberté, Egalité, Fraternité (자유, 평등, 박애).
그러다가 출입이 제한된, 아주 오래된 집-역사와 의미를 알 수 없는-이 시야에 나타났다.
돌과 나무로 지은 낡은 집인데, 궁전보다 돌성을 좋아하는 내가 딱 좋아하는 스타일이다.
내부엔 분명 유서 있는 낡은 돌벽이 공간을 이루고 있을 텐데, 집기들이 그 세월을 들려주고 있을 텐데.
메종 피스테르에서도 좀전에 본 오래된 집에서도 가까운 곳에, 콜마르에서 가장 긴 역사를 자랑하는 건축물이 서 있다.
톤 낮춘 노란빛 외벽을 지닌, 1350년에 지어진 6층 건물의 이름은 '메종 아돌프'다.
아돌프는 19세기 이 집 주인의 이름인데, 이 건물에 고딕 양식의 창을 만들었다고 한다.
비는 내리다가 그치고 또 다시 내리기를 반복하고 있다.
사실 크지 않은 도시인 콜마르에서 우리가 특별히 해야 할 일은 없었다.
목표 삼은 박물관도 없었고, 꼭 봐야 할 또는 보고 싶은 그림도 없었으며, 가 봐야 할 광장이나 맛집도 정해놓지 않았다.
다들 스트라스부르를 숙박지로 정해 한나절 둘러보는 여행지인 콜마르에서 우리가 2박을 하기로 한 건 쉼표를 의미한다.
콜마르에서 버스로 이동 가능한 리크위르엔 비를 핑계로 가지 않기로 결정했으니 재고의 여지 없는 완벽한 휴식이다.
별 관심은 없었지만 생마르탱 성당의 내부에서 벽감에 자리한 피에타를 바라보았다.
무종교인 난 피에타 조형물을 보아도 별 감흥이 없고, 오히려 고대 종교인 그리스신화에만 열광할 뿐이다.
생마르탱 성당 앞의 야외 카페에 앉았다.
살짝 서늘한 날씨지만 사과주스를 주문했고, 웃는 얼굴이 예쁜 서버가 잔과 주스를 가져다준다.
콜마르의 늦은 아침, 여전히 비는 거리를 적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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