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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2022 빈

8월 30일 (화) : 진혼곡과 페스티벌

중앙묘지

어젯밤의 얕은 과음은 시차 적응의 공신이다.

9시에 컵라면으로 해장을 하고, 최고 당도를 자랑하는 청포도와 납작복숭아를 후식으로 먹어준다.

아, 근데 라바짜 분쇄원두로 내린 커피는 왜 이리 맛이 없담. 역시 원두콩을 직접 갈아야 제대로 된 커피 맛을 낼 수 있나 보다.

 

바깥과는 달리 집 안은 아주 서늘하고, 오랜만의 오스트리아 맥주로 인해 몸은 매우 노곤하다.

비엔나표 마늘바게트를 오븐에 구워서 요거트, 생오렌지주스와 함께 먹는 점심은 우리가 빈에 있음을 새삼 깨닫게 한다. 

 

음악가 묘역

오후, 실외 공기 좀 쐬어볼까.

행선지는 중앙묘지 음악가 묘역. 여긴 수없이 방문했기에 익숙하고 친숙한 곳이다.

U3 Simmering역까지 이동한 후 트램을 탔다. 지하철 내부든 트램 안이든 승객들이 참 많다.

승객 상당수가 여행자는 아닌 것 같은데, EU가 확대되면서 오스트리아 거주자가 늘어났다고 하더니 그간 빈 인구도 증가한 듯하다.

 

베토벤, 모차르트(가묘), 슈베르트
요한 슈트라우스 2세(1세의 장남)와 브람스

중앙묘지 제 2문에서 성당 방향으로 걷다보면 금세 마주치는 Musiker. 빈에서 활동한 음악가들의 묘역이다.

시신 없이 기념비만 있는 모차르트의 가묘를 중심으로, 좌우에 베토벤과 슈베르트가 영면하고 있다.

슈베르트 오른편으로는 요한 슈트라우스 2세와 브람스의 묘비가 자리하고 있다.

 

요한 슈트라우스 1세(아버지)
요제프 슈트라우스(차남)와 에두알트 슈트라우스(3남)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아버지인 요한 슈트라우스 1세, 동생 요제프 슈트라우스와 에두알트 슈트라우스도 그 뒤편에서 진혼곡을 흩뿌린다.

스포츠 경기의 시작을 알릴 때 많이 사용하는 '경기병 서곡'의 작곡가 프란츠 주페도 묘역을 빛내고 있다.

 

프란츠 주페
중앙묘지

간혹, 위대한 음악가를 찾아온 사람들의 그림자가 보이긴 하지만 공원 같은 묘지는 예상보다 한산하다.

지구온난화 영향인지 늦여름답지 않은 빈의 햇살은 한여름처럼 따갑지만 그늘은 다행히 아주 시원했다.

 

필름페스티벌이 열리는 빈 시청사 광장

숙소로 돌아와 저녁식사를 하고 잠시 쉰 후, 밤 마실을 나간다.

매년 여름, 빈 시청사 광장에서 열리는 필름페스티벌을 즐겨보려 한다.

필름페스티벌은 시청사 광장에 설치된 대형 화면을 통해 오페라, 뮤지컬, 클래식, 발레, 연극, 콘서트 등 다양한 공연 실황을 보여주는

빈의 가장 큰 축제다. 빈 시민들은 마련된 좌석에 앉아 공연을 즐기고, 또다른 빈 시민들은 먹거리와 마실거리를 즐긴다.

 

빈 시청사 광장
기타리스트이자 가수인 비비킹

낮엔 저승객들을 만나고, 밤엔 살아 환호하는 자들의 눈빛을 마주했다.

생사가 공존하는 이 도시에서, 우린 이미 저승으로 떠난 기타리스트가 이승의 산 자들에게 선사했던 블루스를 듣고 있다.

나와는 달리 비비킹의 기타 연주를 정말 좋아하고 즐거워하는 남편.

 

시청사 광장 앞
부르크극장과 트램

시간은 늘 바삐 흐르고 우리네 삶은 늘상 덧없다.

숙소 근처 병원 앞에 주차된 구급차들, 늦은 밤인데도 구급대원들은 그 곁을 가만 지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