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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2022 빈

9월 1일 (목) 전 : 가을 첫날, 상트길겐

대한민국에, 더구나 서울에 역대급 태풍이 예보되었다.

20년도 더 전, 서울을 관통한 엄청난 태풍에 집 베란다 샷시의 유리창이 깨져 거실을 덮는 참사를 겪은 후로, 태풍과 유리는

내게 두려운 대상이 되었다. 아들과 톡을 하며 강아지 안위를 부탁하고, 또 태풍 상황을 확인하여 대처하기로 했다.

 

빈 서역

오늘은 이번 여행에서 유일하게 일정을 계획한 날로, 잘츠부르크와 상트길겐에 간다.

홈피에서 예약한 잘츠부르크행 기차 출발시각은 7시 10분. Westbahn열차는 이름대로 Westbahnhof(서역)에서 출발한다.

무려 새벽 5시에 식사와 과일과 커피까지 다 챙기고 6시 20분, 서역으로 향한다.

중앙역이 남역으로 불리던 시절엔 서역이 빈의 중심역이었으나 중앙역 중심인 지금은 상당히 초라해진 느낌이랄까.

 

Westbahn 열차
Westbahn 열차 2층 계단 쪽

열차 2층에 승차하자 곧 출발하는 열차. 지정 좌석 없이 자유석이다.

승무원이 티켓 검사를 하러 와서 QR을 체크한다. 앱을 열어 내밀면 금세 확인 완료다.

잘츠부르크로 가는 내내 하늘이 맑았다 흐렸다 하며 변덕이다. 오늘 날씨는 우리 편이 아닌가.

 

잘츠부르크 중앙역
잘츠부르크에서 상트길겐 가는 버스 안

9시 48분, 잘츠부르크역이다.

난 잘츠에 2018년 여름-선후배와의 여행- 이후 4년 만이고 남편은 빈에 살 때인 2008년 이후이니, 무려 14년 만이다.

오늘 여정은 잘츠카머구트의 볼프강제를 끼고 있는 마을 중 상트길겐에 다녀온 후, 잘츠부르크를 들른 다음 빈으로 귀가하는 일정이다.

기차 편도 2시간 30분과 버스 편도 50분, 즉 6시간 40분동안 대중교통을 타야 하니, 우리가 이전에 하던 당일치기 여행보다 벅찬 편이다.

 

상트길겐
상트길겐

상트길겐 행 150번 버스엔 승객이 그득한데, 마스크를 착용한 사람들이 별로 없다. 대중교통 내 마스크 착용 의무는 빈에만 해당된다.

통로 건너 두 할머니의 수다가 이어지고 있다. 웃는 얼굴로 서로 공감해 주는 단어를 전달하면서.

11시, 상트길겐에서 하차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아마 바트이슐까지 가서 다른 목적지로 환승하는 사람들이 많을 거다.

 

상트길겐 레스토랑
상트길겐 레스토랑
상트길겐 레스토랑

오랜 만에 만난 상트길겐은 오래된 친구처럼 여전하다.

단체여행객이 보이지 않는 마을은 한적하고, 흰색 구름과 잿빛 구름이 견주는 호수는 잔잔하다.

 

아침식사가 일렀던 탓으로 너무 배가 고파 12시도 안된 시각, 레스토랑에 앉았다.

이번 여행의 첫 슈니첼을 주문하고 20분 이상 기다려서 서빙된 음식은 완전 감동이었다.

먼저 나온 슈티글-잘츠부르크 맥주-은 당연히 맛있고, 슈니첼은 깔끔하고 바삭했으며 함께 나온 샐러드도 최고다.

 

상트길겐 라트하우스(시청사)
국제학교
모차르트 외가

마을 한가운데 서 있는 작은 시청사 앞을, 그리고 거리를 휩쓰는 영어의 근원인 국제학교 앞을 지난다.

호숫가에 자리잡은 모차르트의 외가 옆을 스쳐지나고 나니 펼쳐진 그림 같은 볼프강 호수.

 

볼프강제에 자리한 마을 중 많이 알려진 곳이 상트볼프강과 상트길겐인데, 사실 우린 길겐보다 상트볼프강을 더 좋아한다.

상트볼프강은 볼프강제 전망이 가장 멋진 곳이고, 우린 할슈타트보다 이곳을 더 좋아해서 빈에 살 때 3차례 숙박했었다. 

그런데 더 좋아하는 볼프강 대신 길겐-이곳도 물론 멋짐.-을 선택한 이유는 잘츠부르크와의 거리 때문이다.

잘츠부르크에서 길겐까지는 버스로 50분이 걸리는데 비해 볼프강까진 버스 환승 1번 포함에서 1시간 30분 가량 소요된다.

빈에서 잘츠부르크와 잘츠카머구트를 당일치기 하다보니 그 중 가장 단거리를 선택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상트길겐에서 보이는 볼프강제(독일어 '제see'의 뜻은 호수)
상트길겐에서 보는 볼프강제
상트길겐에서 보는 볼프강제

역시 알프스 빙하가 녹아서 만들어진 잘츠카머구트 호수는 최고로 멋지다.

호숫가 벤치에 앉아 호수를 가만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트이고 심장이 활짝 빛난다.

감염병에 오래도록 지친, 온몸에 쌓인 고단함이 멀리 다 사라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