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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2023 포르투·리스본

4월 3일 (월) : 깊은 밤을 날아서

인천공항

떠나는 짐은 이미 어제 챙겨두었고, 밤에 출발하는 항공이라 꽤 느긋한 아침이다.

막내녀석을 돌봐주러 보름 넘게 상주할 아들을 위해 반찬거리 몇 가지를 준비하고 나서도 여유가 있다.

갑자기 더워진 오후, 올림픽도로가 많이 막히고 있다는 소식에 예정보다 조금 일찍 출발했고 공항버스 안은 한산하다.

 

평소보다 더딘 인천공항 가는 길, 제2터미널 KLM 체크인카운터는 아직 오픈 전이다.

오후 7시반, 시장기가 도는 남편은 햄버거세트를 골랐고 난 편의점표 바나나우유면 충분하다.

 

인천공항

오픈 직전인 G카운터 앞에 탑승객들이 긴 줄을 그리고 있어서 우리도 합류했다.

어제 오후에 이미 온라인체크인을 했고 우리 앞에 대기하는 인원도 많지는 않았기에 수속은 순조로웠다.

검색대를 거쳐 출입국 자동심사까지, 밤의 인천공항은 북적이지 않고 여유로워서 아주 편안했다.

나는 출발 탑승구 아닌 인적 없는 다른 탑승구 앞 의자에 오랫동안 편히 누워 친구들과 긴 톡을 나누었다.

 

KLM네덜란드항공기
KLM네덜란드항공기 B777-300 이코노미컴포트

6개월 만에 다시 떠나는 유럽, 이번엔 이코노미컴포트석을 향해 탑승한다.

이코노미석을 정말 힘들어하는 남편을 설득(?)하여, 코로나19 이전보다 2배 오른 비즈니스석 대신 컴포트석 맨 앞 열을 선택했다.

좌석 폭은 이코노미석이지만 앞 공간이 넓으니 그나마 덜 피곤하리라는 판단에서였다.

 

KLM 항공 B777기는 제시각에 이륙한다.

우리 바로 앞은 비즈니스석이고, 우린 좌석의 숨겨진 모니터를 잘 발굴했으나 내 모니터는 터치에 살짝 문제 있는 불량 모니터.

어차피 난 매우 졸렸고 또 식사 후엔 바로 잘 예정이었으니 승무원에게 문의조차 하지 않았다.

 

첫번째 기내식
KLM네덜란드항공기 B777-300 이코노미컴포트 10D,10E

자정 무렵, 선택지 없이 모두 대동단결하여 먹어야 하는 비빔밥이 첫번째 기내식으로 제공되었다.

KLM에서 사라졌다던 비빔밥이 다시 나온 걸 보니 얼마 전부터 기내식 메뉴가 변경되었나보다.

하이네켄 맥주를 함께 골라 평범하고 단출한 식사를 마친 후 이내 밤잠을 청했다.

 

그러나 애초에 앉은 채로 숙면을 취하는 것은 내겐 무리였나 보다.

기내에서 잠을 거의 못 자는 내가 한밤 중이라는 시간에 기대어 쉽사리 잠들 수는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여러 차례 울어대는 오른쪽 10HIG 열 아기, 환한 좌석등을 켜 둔 채-이후 승무원이 꺼 줌.- 잠든 왼쪽 열의 일본녀,

뒷줄 남자의 크고 우렁찬 목청은 자다깨다를 반복하는 쪽잠조차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두번째 기내식

잠시 눈을 붙이다가 내 좌석 앞에 서 있기도 하고, 타 항공기에 비해 유난히 좁은 복도를 걸어다니기도 하고, 갤리에서 간식을 가져와

먹다 보니 그래도 시간은 생각보다 잘 지나가고 있다. 

암스테르담 시각으로 새벽 3-4시에 제공된 두번째 기내식은 달디단 팬케이크 대신 깔끔한 오믈렛을 골랐다.

 

암스테르담 공항
암스테르담 공항

밤새 13시간을 날아, 정확히 예정된 시각에 도착한 암스테르담.

비 EU 국가에서 EU 국가로의 첫 입국이라 이곳에서 입국심사가 있는데, 심사관은 촌스럽게 질문까지 여러 개 던진다.

우린 더없이 나른하고 고단했으나 새벽 암스테르담 공항은 사람들로 활기가 넘치고 있다.

차가운 공기를 가르며 점차 하늘이 밝아오고, 곧 우린 두번째 항공기에 오를 예정이다.

 

암스테르담 공항

오전 9시, 맑은 암스테르담을 이륙한 만석의 항공기는 포르투로 향한다.

이륙 후 벨트사인이 꺼지자 즐거운 표정의 승무원들은 베지테리언 샌드위치를 음료와 함께 나눠준다.

이 샌드위치, 별거 안 들어있는데, 산뜻하게 맛있다.

 

KLM 항공기 포르투행 : 샌드위치
KLM 기내 : 당근케이크와 커피

1시간 후 또 승무원들이 작은 당근케이크와 커피를 승객들에게 건네고 있다.

요 사소한 것들은 샌드위치 나눠줄 때 같이 주면 서로 편할 텐데, 후식 개념이라 따로 제공하는 건가.

4월 4일 10시 40분, 한번도 밟지 않은 땅, 드디어 포르투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