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차에 부대낀 온몸은 새벽을 열고, 칠흑 같은 6시에 아침식사를 하는 여행 둘쨋날이다.
서늘한 아침, 숙소에 비치된 돌체구스토 커피머신에 캡슐을 넣어 커피까지 마셔주면 외출 준비 완료.
8시도 안된 이른 아침, 사람 대신 거대한 갈매기들이 산타카타리나 거리의 상공을 메우고 있다.
바다가 멀지 않긴 하지만 바닷가도 아닌데 도심에 바다새가 흔히 날아다니다니 신기할 따름이다.
도우루강으로 향하다가 만난 상벤투 기차역 내부는 사면이 아줄레주-포르투갈 장식타일-로 가득하다.
원래 수도원 건물이었던 역사엔 1915년에 만들어진 2만여개의 아줄레주가 포르투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단순하고 반복적인 문양의 장식 타일이 아니라, 회화처럼 경치나 상황을 상세히 묘사하여 벽면을 채우고 있다.
상벤투에서 도우루강으로 이어지는 언덕엔 포르투 대성당이 자리하고 있다.
대략 보아도 로마네스크 양식이 느껴졌고, 성당답지 않은 밋밋하고 투박한 이곳에 우린 입장하지 않았다.
그다지 끌리지 않는 이 건축물은 산티아고 순례길 중 포르투갈길의 주요 성지이며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이라고도 한다.
경사 얕은, 그러나 걷기 쉽지 않은 언덕을 오르고 또 계단을 내려가서야 만난 도우루강.
포르투 구시가에서 도우루강 건너 저편엔 빌라노바 가이아 지역이 있는데, 이 두 곳을 이어주는 동루이스 1세 다리도 만났다.
동루이스 다리는 에펠탑을 만든 구스타프 에펠의 제자가 설계한 복층 다리로, 1886년에 완공되었다고 한다.
강변의 히베이라 거리엔 천막을 올린 장터가 행렬을 이루고 있고, 개점하지 않은 상점들 앞엔 식료품 공급 트럭들이 대열을 만들고 있다.
그런데, 여기 강인 거지. 도우루강에서 아주 짙은 바다 내음이 난다.
분명 대서양-바다가 가깝긴 하다-의 강한 바닷물줄기들이 강바닥 위아래를 뚫고 끊임없이 거슬러올라오는 것이다.
바닷물이 분출하는 강물 여기저기엔, 바다로 오인하고 흘러온 바닷속 생물들도 꽤나 서식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바다에나 있을 법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갈매기들이 도우루강을 점령하고 있을 리가 없다.
아, 너무나 푸른 하늘, 정말 날씨가 다했다.
강폭 넓은 도우루강과 주변 경관은 포르투 최고의 아름다운 정경이다.
오늘 최고 기온은 22도, 조금 더 걸어볼까.
클레리구스 성당을 지나고 해리포터 작가 조앤롤링에게 영감을 주었다는 렐루 서점 앞을 그저 스쳐 지난다.
듣도보도 못한, 입장료 있는 서점 앞 좁은 인도는 수많은 여행객들로 발디딜 틈이 없다.
서점은, 입장료를 치르지 않은 누군가가 내부를 들여다볼세라 인도에 접한 유리창들을 불투명한 종이로 완벽히 덮어두었다.
나는 스토리텔링을 아주 좋아한다.
어려운 환경을 딛고선 스토리, 꼴찌의 반란이나 나눔을 실천하는 감동적인 이야기를 좋아한다.
소설, 영화나 역사 속에 등장하는 배경과 장소를 찾아보는 것 또한 마찬가지로 좋아한다.
그렇기에 처음 포르투갈 여행 계획을 세울 때 렐루 서점이 포함되어 있던 건 어쩌면 당연했다.
세계적인 작가가 직접적인 영향-사실 여부를 떠나-을 받은 장소를 방문하는 건 즐겁고 꽤 쓸데있는 일이니까.
그러나 지성의 보고여야 할 서점이란 곳이, 밀려들어오는 관광객과 얕은 상술에 눈멀어 입장료를 받기 시작하고, 그럼에도 더더욱
도떼기시장이 돼버린 그곳에 발을 들여놓고자 하는 생각은 싹 사라져버렸다. 여긴 더이상 서점이 아니다.
푸른 빛으로, 또 다채로운 색으로 덮인 거리들.
아줄레주가 없다면 단조로울 뿐인 건물들 사이로 포르투 대학과 카르무 성당이 푸른 시야를 채운다.
점심식사를 하기엔 조금 일렀지만, 시내 중심에 있으면서도 포르투 가정식을 먹을 수 있는 'Casa Costa'에 들렀다.
기름 향 가득한 1층 실내-좁은 2층도 있음-엔 이미 동네 주민인 듯한 할배들이 와인잔을 든 채 담소를 나누고 있다.
4-5개 탁자 중 안쪽에 앉아 주인할아버지가 건네준 메뉴 중 정어리 구이-튀김-와 바칼라우 튀김을 골랐다.
밥과 함께 나온 메인 음식이 정겹다. 이어 수프와 후식까지, 물이 포함된 음식 가격이 상상할 수 없이 착하다.
돌아온 숙소엔 열기가 넘치고, 창을 열어 환기를 시키는 도중 갑자기 속이 부대낀다.
튀김 기름이 원인이었을까. 소화제를 먹은 후 눈을 좀 붙이고 나니 한결 편안해졌다.
여전히 밝은 오후 7시, Agosto역 근처에 자리한 Continente로 향한다.
볼량역 Continente보다 훨씬 큰 마트 안이 퇴근해서 장을 보는 동네 주민들로 붐빈다.
그래, 진짜 현지인 마트는 바로 이런 곳이지!
딸기, 오렌지, 샐러드, 요거트, 주스, 올리브, 버섯, 치즈, 빵 등 우리의 신나는 마트 쇼핑은 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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