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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2023 로마·피렌체·베니스·빈

5월 21일 (일) : 베네치아의 운수 좋은 날

두오모성당과 산조반니세례당

여전히 이른 아침 기상, 비 그친 하늘이 환하게 맑다.

이미 알고 있지만 두오모광장에서 피렌체고아원까지 가는 길을 재확인하고, 산타마리아노벨라역 앞 맥도날드를 검색했다. 

8시 10분, 숙소를 나서서 Via dei Servi를 향해 걸어간다.

 

 

산티시마 안눈치아타 광장의 피렌체 고아원(현재 박물관)
피렌체 고아원의 베이비박스
산티시마 안눈치아타 성당

Via dei Servi-도로명-을 따라가면 산티시마 안눈치아타 광장이 나오고 이곳엔 피렌체 고아원이 있다.

피렌체의 견직 길드에서 설립한 피렌체 고아원은 브루넬레스키가 설계한 최초의 르네상스 건축물로, 문과 창문 위의 페디먼트와

원주 아치 위의 테라코타 부조가 아름답고 조화롭다.

1445년 개관한 피렌체 고아원은 1875년에 폐관되어 지금은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Via del Servi : 두오모성당 쿠폴라가 아름답게 조망되는 길

산티시마 안눈치아타 광장에서 Via del Servi를 통해 보이는 두오모성당 쿠폴라가 참으로 멋지다.

게다가 청동상과 쿠폴라가 배경이 된 광장 한 켠은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의 남녀 주인공이 재회한 곳으로, 영화 포스터가 되기도 했다.

 

피렌체를 떠나는 아침, 맑은 하늘에 해마저 짱짱하다.

로마와 피렌체를 여행하는 내내 흐렸고 비가 내리기도 했는데, 날씨로 인해 여행이 불편하진 않았으나 이제야 맑아져 살짝 아쉽긴 하다.

아니 이제라도 날씨가 좋으니 다행인 거지, 일기예보에 의하면 이후 베네치아와 빈 모두 맑고 푸를 예정이다.

 

 

로마 숙소에서처럼 코시국 이후 이젠 흔해진 셀프체크아웃을 한 후 기차역으로 간다.

산타마리아노벨라역 앞 맥도날드에서, 기차 안에서 점심으로 먹을 햄버거와 맥머핀 그리고 물을 구입했다.

기차 출발 9분을 남기고서야 플랫폼이 확정되었고 10시 40분, Itaio Prima석에 탑승했다.

 

베네치아 가는 기차에 한국인이 아주 많다.

짐칸에 넣어둔 우리 캐리어 3개를 와이어락으로 연결하러 다시 그곳으로 갔다가, 우리 또래 두 여인이 캐리어 올리기를 힘들어하기에

도와주고 보니 그녀들도 한국인이다.

햄버거와 맥머핀을 점심으로 챙겨먹고 승무원이 서빙해 준 커피와 간식까지 먹다보면 2시간15분 경과, 황홀한 바닷길 끝의 다른 세상인

베네치아다.

 

 

Italo 프리마석
Italo 프리마석
베네치아 산타루치아역 앞

베네치아 산타루치아역을 빠져나와 대운하를 마주하면 절로 나오는 감탄.

난 2004년과 2019년, 2020년에 이어 4번째로 만나는 베네치아지만 내게 베네치아는 늘 처음 같은 곳이다.

 

산타루치아역 앞 광장에서, 아까 기차 짐칸에서 보았던 여인들을 다시 만났다.

우리처럼 3명의 친구들이 마음을 모아 이탈리아 자유 여행을 왔다고 했다.

로마, 토스카나 지역, 피렌체에서 이어 베네치아가 마지막 여행지이고 여기서 2박 후 귀국한다며 아쉬워한다.

 

친구들이 베네치아 풍광을 즐기며 사진을 찍는 동안, 난 선착장 창구에서 48시간짜리 바포레토 티켓을 구입했다.

숙소에 가기 위해 바포레토를 타야 했기에 티켓을 하나씩 나눠 가졌는데, 베네치아 바닷바람에 친구 K의 티켓이 마구 날아가 버렸으나

최고의 운동 신경을 지닌 K는 운하로 떨어지기 직전에 티켓을 낚아채는 묘기를 보여줬다.

우리는 물론 이 상황을 보고 있던 3명의 여인들까지 당황하다가 놀라고 안도하는 3단 탄성을 자아냈다.

 

산타루치아역 앞 선착장에서 6명은 함께 1번 바포레토-수상버스, 배-에 올랐다.

바포레토에 탈 때부터 승무원이 소매치기 주의하라는 경고를 여러 번 했는데, 바포레토에서 대놓고 소매치기 주의 경고를 들은 건 처음,

아마도 상습 소매치기꾼이 배에 탄 걸 승무원이 목격한 모양이다.

여행 잘하라는 덕담을 나누고 3정거장 후 우리 셋이 배에서 먼저 내리게 되었을 때 발견한 것은, 옷핀으로 채워두었으나 열려 버린

K의 백팩 지퍼였다. 백팩엔 귀중품이라곤 노트북밖에 없었고 노트북-훔쳐가기엔 큰 부피-은 무사했기에 정말 다행이었다.

 

구글맵을 켜고 숙소까지 가는 길은 어렵지 않았다. 

숙소 앞에서 에어비앤비 앱에 들어와있는 메시지를 확인했고 호스트가 보낸 여직원은 약속시간에 정확히 숙소로 도착했다.

1층-0층 아님. 베네치아 건물엔 거의 엘리베이터 없음-에 있는 숙소까지 캐리어를 올리긴 쉽지 않았으나, 내부 인테리어를 새로 한 지

얼마 안 된 깨끗하고 깔끔한 숙소라 친구들이 아주 마음에 들어했다. 

 

 

베네치아 대운하
리알토 다리에서 본 대운하

약간 출출한 속을 컵라면으로 채우고 3시반, 밖으로 향한다. 

S.Stae 정류장에서 1번 수상버스를 타고 제일 먼저 간 곳은 리알토 다리, 그 위에서 바라보는 대운하가 근사하다. 

4km가 넘는 대운하 중 폭이 가장 좁은 곳에 놓여진 리알토다리는 원래 목조로 지어졌으나 16세기 대리석으로 재건립했다.

일요일, 어딜 가든 인파를 먼저 만난다.

 

 

I Tre Mercantil

티라미수는 베네치아에서 북쪽으로 30km 떨어진 도시인 트레비소의 한 카페에서 처음 만들었다고 하는데, 티라미수로 유명한

베네치아의 이 디저트 가게는 리알토 다리와 두칼레 궁전의 중간쯤에 자리잡고 있다.

티라미수는 2개만 주문하고, 이탈리아에선 찾기 힘든 아이스아메리카노를 함께 요청했는데 완전 맹탕이다.

아주 연한 커피를  좋아하는 R 입맛엔 딱이란다.

 

 

두칼레 궁전의 부조(술 취한 노아)와 탄식의 다리
산조르조마조레 성당
다니엘리 호텔

산마르코 광장을 지나서 두칼레 궁전과 다니엘리 호텔 앞에서 바라보는 대운하의 정경이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멋있다. 

베네치아 공화국 통치자인 도제의 관저였던 두칼레 궁전은 여러 번의 화재 후 15-16세기에 재건되어 현재는 법원과 의회 등으로

사용되고 있고, 도제를 4명이나 배출한 명문가의 저택이었던 다니엘리 호텔은 영화 '투어리스트'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산타마리아살루테 성당
페기 구겐하임 미술관

다시 1번 바포레토를 타고 살루테성당을 지나 아카데미아에서 하선했다.

며칠 간의 흐린 날을 보상이라도 하는 듯 날씨가 더할 수 없이 환상적이다.

아카데미아 다리에서 보는 대운하가 내겐 가장 아름다운 베네치아 풍경 중 하나인데, 아카데미아 다리를 이름짓게 해 준 아카데미아미술관엔

아직 들어가지 못했다. 이 미술관은 다음 번 베네치아 여행의 첫번째 숙제다.

 

 

아카데미아 미술관
아카데미아 다리에서 본 대운하와 살루테성당

수상버스 S.Silvertro 정류장에 내려 Coop에서 들러 과일, 올리브, 맥주 등을 구입했다.

많은 유럽 도시들의 마트 물가가 저렴하듯 물가 비싼 베네치아라도 마트 물가는 아주 착하다.

길을 잃어도 이상하지 않은, 아니 좁은 운하 사이의 목적지를 한번에 찾는 것이 더 이상한 베네치아를 구글이도 헷갈리는지,

돌아오는 길을 살짝 헤맨다.

 

 

저녁식사 후 잠시 밖으로 나가본다.

야경이라 할 것도 없을 듯한, 동네 선착장이 보여주는 풍경이 운치 있고 멋스럽다.

 

숙소에 온수가 안 나와서 호스트에게 연락하니 금세 답이 왔다. 

그러나 그전에 숨겨진 보일러를 찾아서 이미 사태를 종결시켜 버리는 대단한 대한민국 여인들.

 

사실 이번 여행의 진짜 출발점은 베네치아다.

'어디 갈까, 어디 가고 싶어'에 첫 답이었던 베네치아.

베네치아는 첫날부터 우리의 답과 기대에 어울리는 최고의 선물을 주었다.

우리는 지금 베네치아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