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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2023 코헴·낭시·스부·뷔부

9월 29일 (금) : 메스, 그곳에 가면

낭시역

7시, 알람이 울리고 어제처럼 맑은 아침이다.

북엇국으로 속을 그득히 채우고 9시 10분, 거리를 천천히 즐기며 낭시 기차역으로 향했다.

여행 시작 전에 미리 예매해 둔 메스 왕복 기차-프랑스 지역열차 TER는 출발일 30일에서 1주일 전까지 할인율이 매우 높음- 는

9시 50분 정시에 낭시를 출발했다.

 

열차가 출발한지 15분 후, 여자 검표원이 나타났는데 혼자가 아니라 보안요원으로 보이는 2명과 같이 등장했다.

검표하는 역무원이 다른 직원을 대동하고 다니는 건 여행해 본 유럽 도시에선 한 번도 못본 상황인데, 조금 후엔 보안요원 1명이

더 와서 다른 보안요원들과 함께 한참동안 대기하다가 다른 칸으로 이동한다.

낭시를 떠난 자 40분 후, 프랑스 메스 Metz다.

 

생마르탱성당 측랑
생마르탱성당 측랑 : 십자가의 길
생마르탱성당

맑은 낭시를 떠나왔으나 메스에 도착하고 보니 흐리고 바람까지 불고 있다.

메스역에서 구시가까지 가는 거리마다 길목마다 여행객인지 메스 시민인지 평일인데도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

낭시처럼 로렌 지역에 속했던 메스의 인구도 낭시와 비슷한 11만명 정도라고 한다.

 

구시가에 다다르기 전, 시선이 닿은 자리에 고딕 양식의 생마르탱성당이 있었다.

낡은 듯한 외관과는 다르게 내부 스테인드클라스는 매우 선명했으며 측랑 벽면 '십자가의 길'의 빼어난 예술성은 감동적이었다.

 

메스대성당 앞 광장 : 관공서
메스대성당
메스대성당

구름은 이미 완전히 하늘을 덮고 있었다.

13세기에 건립되기 시작하여 300년 동안 지은 메스대성당은 전형적이면서도 가장 발전된 고딕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파사드의 아치볼트와 조각,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쏟아지는 천상의 빛, 찌를 듯한 첨두아치,  리브볼트까지 모두 아름다웠다.

 

엄청난 규모의 메스대성당에서 사람들이 유난히 많이 모여있는 곳으로 가면 마크샤갈의 디자인으로 만든 스테인글라스가 있다. 

오래 전, 샤갈미술관에 본 샤갈의 그림과 스테인드글라스에서 묻어나던 느낌 그대로 동화적이고 화사하다.

대성당을 돌아나오는 길, 중년여인 4명이 한국어를 쉼없이 내뱉고 있다. 이번 여행에서 처음 듣는 한국어다.

 

메스대성당 : 신랑
메스대성당 : 왼편 두번째 스테인드글라스도 마크샤갈 디자인
메스대성당 : 마크샤갈의 스테인드글라스

어느 덧, 시간은 정오를 향하고 있다.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점 찍어둔 이탈리안 레스토랑으로 갔으나 와, 풀부킹이란다.

가성비 좋고 평점 좋은 식당이긴 하나, 인기 절정의 여행지도 아닌데 평일에도 예약을 안하면 식사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코시국 이후 예약 문화가 확대된 이유이기도 하고, 엄청나게 오른 물가 탓에 가성비 좋은 식당이 먼저 채워지는 까닭이기도 하다.

 

Moyen다리에서 본 Temple Neuf(개신교교회)
Moyen다리에서 본 Temple Neuf(개신교교회)

식사는 조금 미루고 근처 모젤강에 놓인 Moyen 다리를 찾았다.

다리 중간쯤에서 보는, 섬 위에 떠있는 듯한 개신교 교회 건물이 주위 경관과 조화롭게 어우러지고 있다.

파란 하늘이었으면 훨씬 더 멋졌을 텐데, 여행에선 역시 날씨가 아주 중하다.

 

아시안뷔페식당(오른쪽)
아시안뷔페식당
아시안뷔페식당

아까 구시가 초입에서 보았던 아시안뷔페엘 가기로 했다.

유럽 여행시 주방 있는 숙소에 머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한식에 대한 갈증은 없으나, 이상하게도 아시안식당-서울에선 자주 가지 않음-은

한두 번 꼭 가게 된다. 

 

창가에 앉아 QR로 메뉴를 확인하고 음료를 주문하면서 살펴보니 손님 대부분이 백인이다.

음식 가격은 비싸지 않으나 남편이 주문한 0.5L 맥주가 7유로, 다른 독일 도시나 오스트리아의 1.5배다. 

우린 차려진 뷔페를 선택했기에 초밥을 비롯해 춘권, 누들, 육류, 해산물, 샐러드, 후식과 요청한 그릴요리까지 다양한 음식을 먹을 수

있었는데 그 맛은 지극히 상식적이고 평범했다.

아시안뷔페 근처 생루이광장에, 0층이 아치 회랑으로 쭉 이어진 폭 좁은 건물들이 줄지어 있다.

한 층에 길고 좁은 창이 두엇 때로 너덧밖에 없는 나지막한 건축물들과 도로처럼 긴 장방형 광장이 잘 어울린다.

낭시 북쪽으로 55km 떨어진 메스는 거리 풍경이나 건물 빛깔들이 낭시와는 상당히 다르다.

 

중세 성벽의 성문인 Porte des Allemands 독일인의 문으로 가는 길이 스산하다.

한낮인데도 인적은 드물고, 마주치는 사람들은 거의 흑인과 아랍인인데 이방인을 쳐다보는 눈빛이 아슬아슬하다.

그런데, 어느 골목에서 쓱 나타난 중년여인. 만취한 그녀는 맥주캔을 든 채 호탕하고 익살스럽게 큰소리로 웃는다.

갑작스러운 상황이었으나 그 표정과 웃음소리가 어찌나 재미났는지 우리도 그녀를 따라 깔깔 소리내어 웃었다.

 

Porte des Allemands (독일인의 문)
Porte des Allemands
Porte des Allemands

구시가 동쪽에 위치한, 13세기에 지은 독일인의 문은 메츠의 중세를 상징한다고 한다.

여러 차례 파괴되고 복원되는 과정을 거쳤고, 2014년에 재개장한 후엔 이곳에서 문화 행사가 개최되기도 한다.

독일인의 문은 월요일을 제외한 오후 2시부터 5시까지만 개방-모르고 옴-되는데, 다행히 딱 그 시간이다.

이곳은 강 지류를 천연 해자로 삼아 건립되었기에 도로를 지나야만 다른 집이나 건물들이 있다.

 

독일인의 문은 내가 좋아하는 성의 형태를 띠고 있으나 흐린 하늘은 무심하기만 하다.

열린 문 안을 거닐고 성문 주변을 걷다가 도로를 건너고 나니 별안간 빗방울이 떨어진다.

성문이 잘 보이는 어느 건물 처마 아래서 잠시 비를 피했다. 빗줄기 사이로 보이는 성문이 정말 근사하다.

 

산딸기마카롱케이크와 커피

낭시행 열차 출발까진 시간이 많이 남았으나 15분을 걸어서 일단 메스역 앞에 도착했다. 

갈만한 카페를 한참 찾다가 메스역 건너편에 있는 빵집 겸 카페의 야외 좌석에 앉았다.

커피를 주문하려고 실내에 들어갔더니 프랑스할매 대여섯명의 유쾌한 웃음이 카페를 가득 채우고 있다.

 

메스역 앞 우체국
메스역 앞 : 샤를드골
메스역

메스역 대기 장소에 한참동안 앉아있다가 오후 4시 20분에 출발하는 TER에 탑승했다.

낭시로 돌아가는 기차 차창 밖으로 가끔씩 비가 흩뿌리고 있었다. 

낭시역에 도착해서 숙소로 오는 중에도 비가 오락가락하더니 숙소에 들어오자 거짓말처럼 비가 그친다.

 

알게 모르게 오늘 힘들었나. 날이 흐려 컨디션이 안 좋았던 걸까.

목이 말라 물을 많이 마시고 주스와 우유를 이어 마셨더니 속이 부대낀다.

이럴 땐 그저 쉬어주면 된다. 누워서 눈을 감고, 흐르는 시간에 나를 맡기기만 하면 된다.

 

스타니슬라스광장
에레 아치문

저녁 8시, 스타니슬라스광장에 섰다.

야경을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정원 전시박람회 첫날이니 밤 구경을 마다할 순 없다. 

귀갓길에 까르푸에서 푸딩과 우유을 구입했고 저녁 메뉴는 난 푸딩, 남편은 큰컵라면이다.

 

낭시의 밤, 밖에는 산들바람이 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