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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2023 코헴·낭시·스부·뷔부

10월 7일 (토) : 스트라스부르의 초상

숙소 앞 거리

밤에 시작해서 새벽까지 이어진 불금의 소란은 엄청났다.

술집 노천좌석과 골목길에서 수십 명이 동시에  또 지속적으로 내뱉는 소음은 상상 이상이었다.

중심가 숙소 바로 옆 건물 0층에 술집이 있다는 것은 소리-음성이든 음향이든-에 예민한 이에겐 치명적일 수 있다.

 

어제 저녁부터 주방등 2개 중 하나가 접촉불량인지 켜지다말다 하더니 다행히 아침엔 제대로 점등된다.

뇨끼와 숙주나물을 한껏 넣은 라면은 우리의 아침식사가 돼 주었고 푸딩과 쿠키와 커피는 열량 높은 후식이 되어주었다. 

 

프티트 프랑스

서늘하고 맑은 아침, 토요일에는 오전만 개방되는 Cave 와인 저장고로 향한다.

불금 소음에 좀 시달리긴 했어도 숙소 크기와 위치는 누가 뭐래도 최고다. 스트라스부르 어디든 몽땅 도보 범주니까.

프티트프랑스를 지나고 일강을 건너 천천히 20분쯤 움직였을까. 10시, 종합병원 앞에 도착했다.

 

종합병원
종합병원 지하 : 와인저장고
종합병원 지하 : 와인저장고

우리의 행선지인 동굴 와인저장고는 바로 종합병원 지하에 자리잡고 있다.

과거와 현재 모두 종교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 와인은 중세까지 치료제 또는 진통제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독일 뷔르츠부르크-다음 여행지-에서도 병원 공간이 와인을 생산하고 저장하는 역할을 지금도 하고 있다.

 

백성들 대부분이 문맹이었던 중세 유럽에 수도사는 글을 아는 유일한 지식인이었다.

수도사가 기거하는 수도원은 신의 말씀을 전달하고 실천하는 일뿐 아니라 법원, 병원 기능도 했고 교육과 양조를 맡기도 했다.

수도사들은 순례자에게 쉼터와 음식, 와인, 맥주 등을 제공했고 수도원에는 글로 기록된 전통적 양조 레시피가 전해졌기에 수도원의 양조는

일반 백성들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이 탁월했다. 지금도 수도원 맥주가 유명한 이유다.

 

유럽 중세의 병원은 현재처럼 적극적 치료를 하는 병원이 아니라 호스피스 같은 역할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병원 와인 저장고의 이름이 'Cave Historique des Hospices de Strasbourg' 라고 한다.

이곳이 과거 수도원이나 수도원에 딸린 병원이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자료를 찾아보았으나 알아낸 것은 없다.

 

와인저장고
와인저장고 : 1492년산

안내 표지판을 따라 계단을 내려가면 지하동굴에 위치한 와인 저장고 입구가 나온다.

입구 데스크에서는 오디오가이드-3유로-를 선택할 수 있는데, 일본어는 있으나 한국어는 준비되어 있지 않다.

입구에 들어서면 알자스 와인뿐 아니라 다양한 프랑스 와인을 판매하는 매장이 있고, 그곳을 통과하면 길고긴 와인저장고가 있다.

저장고에 있는 중요한 와인통이나 특별한 대상엔 프랑스어는 물론 독일어, 영어로도 설명되어 있고, 게다가 이곳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가

탐구적인 편은 아니었기에 굳이 오디오가이드를 대여하진 않았다.

 

와인 저장고의 방문객 수는 많지 않아서 내부를 살펴보기가 여유로웠다.

1395년에 건립된 스트라스부르 와인저장고에서 가장 오래된 와인은 1472년산이다.

저장고에 있는 다른 거대한 와인통보다는 작은 통에 저장되어 있고 훼손을 막기 위해 울타리 안에 보관하고 있다.

 

와인저장고
와인저장고
포도압착기(1727년)

일정한 온도가 유지되는 지하 동굴에서 거대한 와인통들의 행렬은 매우 길었다.

지금도 이곳에는 알자스 여러 포도원에서 만들어지는 와인이 저장되어 있고, 방문객을 대상으로 시음회가 열리기도 한다.

기나긴 저장고 안을 30분쯤 둘러본 것 같다. 이제 와인 매장을 지나쳐 지상으로 올라갈 시간이다.

 

광장 쪽 병원 출입문
병원 출입문 (프랑스어 독일어 병기: Porte de L'hopital, Spitaltor)

저장고 앞 광장 쪽 병원 출입문과 탑으로 된 병원 출입문의 중간엔 크지 않은 성당이 있다.

그런데 탑 형태의 첨두아치문 위엔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 성모마리아, 사도요한을 묘사한 카톨릭 성화가 그려져 있다.

성당 안에서 되뇌었던 간절함은 모든 사람들이 오가는 출입문에 새겨져, 아픈 이들에게 큰 위안이 되었을 것이다.

 

오스텔리츠광장
오스텔리츠광장 : 스트라스부르 구시가 청동 모형
스트라스부르 구시가 모형 중 프티트프랑스와 보방댐

스트라스부르 구시가-ile섬- 모형을 보기 위해 와인저장고에서 멀지 않은 오스텔리츠 광장으로 움직였다.

광장 한쪽에 위치한 청동 조형물 앞에서 중국인단체에 연이어 백인단체 여행객들이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있다.

단체객들이 모두 떠난 후 우리도 조형물 앞으로 가서 합금의 세밀함에 감탄하며 모형 속 프티트프랑스를 찾고 있는데, 바로 옆에서

만 2살쯤 된 남자아이가 계속 칭얼대고 있다. 그런데 잠시 후 보고도 믿을 수 없는, 황당하고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다.

백인아빠가 칭얼대던 아이를 번쩍 들어올리더니 모형 위로 아이를 걷게 하는 것이었다. 질서 의식과 안전 의식의 총체적 부재다.

 

이번에 독일과 프랑스 국경도시들을 여행하면서 느낀 두 나라 간의 차이점은 명확했다.

프랑스 낭시도 그런 면이 좀 있었지만 특히 스트라스부르는 거리가 정결하지 않고 더러웠다. 

독일 도시들보다 확연히 지저분했는데, 여행객들이 더 많은 이유일 수도 있으나 그게 전부는 아닐 것이다.

 

자전거 도로가 미비해서인지 아무렇지도 않게 인도 위로 자전거나 전동 보드가 씽씽 달렸다. 대한민국 서울인 줄.

게다가 독일이나 오스트리아 도시와는 달리 낭시나 스트라스부르엔 헬멧 쓴 채 자전거를 타는 사람을 찾기 어려웠다.

그들의 정체가 여행객-자전거보다는 걷거나 대중교통이용을 많이 하지 않을까-일 수도 있으나 현지인이 더 많을 것이다. 

 

유람선

주말이라 일강 유람선 탑승장에 대기줄이 엄청나게 길다. 

유람선은 일강을 유람하다가 프티프랑스 운하에서 단차가 다른 지점에 이르면 수문을 닫고 물을 쏟아부어 한참동안 물높이를 맞춘다.

수문 앞에선 유난히 독일어가 많이 들리고, 어느 새 두둥실 떠오른 유람선은 열린 수문을 뚫고 유유히 운하를 지나간다.

 

프티트 프랑스
프티트 프랑스
프티트 프랑스

매일 보고 또 보아도 예쁜 프티트프랑스.

숙소로 돌아가면서 마카롱전문점에서 마카롱을 구입한 다음, 숙소 옆 빵집에 줄을 서서 바게트와 크루아상과 빵오쇼콜라를 샀다.

마카롱은 쫀득거림이 거의 없이 부드러운 맛이었고, 항상 줄이 길어 궁금했던 숙소 옆 빵집의 빵들은 평범 그 자체였다.

 

마카롱전문점
마카롱
숙소 옆 빵집에서 구입한 바게트, 크루아상, 빵오쇼콜라(+마카롱)

오후 2시, 미리 메시지를 주었던 호스트가 방문했고 20-30분쯤 머물면서 미비한 점들을 손보았다.

남편이 호스트를 맞이(?)하여 대화하는 동안 난 침실에 누워 편히 비몽사몽급 휴식을 취했다.

외괴의사인 호스트는 2년 전에 이 집을 재태크의 일환으로 구입했으나 최근엔 은행 금리가 올라서 힘들다고 했다 한다.

2021년에는 서울에 가봤는데, 아주 깨끗한 도시였다고. 그래, 깨끗한 편이긴 하지, 매력이 없긴 하지만.

 

그후 난 침실에서, 남편은 거실 소파에서 2시간 넘게 늘어지도록 낮잠을 잤다.

퇴직 전 휴가에 비하면 반도 안 보고 반도 안하고 다니는, 고단할 일 없는 여행인데 웬일이었을까. 

 

숙소 앞

저녁이 된 거리에 주말 인파가 쏟아지고 있다.

호박과 양송이, 숙주를 넣은 비빔밥에 참기름까지 곁들이니 특별한 소울푸드가 만들어졌다. 

후식으로 챙겨먹은 크림카라멜푸딩과 초콜릿무스와 사과도 아주 맛있다.

 

토요일 저녁 9시, 맥주가 빠질 수 없다.

바깥은 불금인 어제보다 소음이 덜하니 감사하고 다행일 따름이다.

이렇게 우린 점점 놀음에 빠진 신선이 돼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