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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2023 코헴·낭시·스부·뷔부

10월 9일 (월) 1 : 스트라스부르 알자스박물관

컨디션이 나쁜 것도 아닌데 웬일인지 6시도 안되어 눈이 떠졌다.

아침 7시, 카톡엔 지난 5월 함께 유럽여행을 했던 친구의 부친상을 알리는 부고 문자가 들어와 있다.

지난해 9월과 올해 4월 그리고 이번까지, 유럽을 여행할 때마다 절친한 선후배나 친구가 상례를 치른다.

이제 우리 나이가, 부모님이 언제 귀천하시더라도 이상하지 않은 중장년이 된 것이다.

 

야채볶음밥을 먹고, 마지막 남은 커피캡슐을 커피머신에 넣은 후 푸딩과 초코무스도 식탁에 올렸다.

비어있는 커피캡슐통은 오늘이 스트라스부르 여행의 마지막 날임을 알려준다.

 

알자스박물관

오전 9시 40분, 숙소를 나섰다.

ile섬 옆, 일강에 초근접한 Musée alsacien 알자스박물관으로 입장한 시각은 10시. 문 열자마자 들어간 셈이다.

입장권 구입 후 선택 가능한 오디오가이드는 프랑스어, 독일어, 영어, 알자스어, 중국어 등 5개 언어라고 한다.

우린 오디오가이드를 고르진 않았는데, 독일어 방언격인 알자스어 가이드가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1902년에 개관한 스트라스부르 알자스박물관은 1600년대에 건립한 오래된 목골 주택 3채를 연결하여 박물관으로 만들었다.

주로 17-19세기에 실생활에서 사용했던 물품들이, 26개 전시실에서 전시 보관되고 있다고 한다.

각 전시실 입구 벽면에는 프랑스어, 독일어, 영어로 전시실과 전시물의 특징에 대한 안내판이 부착되어 있다.

 

난방기구
난방기구

0층엔 알자스 가옥의 목재 기둥과 서까래, 창문, 벽면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고 중앙엔 알자스 주택 모형이 있다.

계단을 올라 1층에 이르면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는 것은 난방기구-Heizung, 독일어로 하이충-다. 

지금도 중서부 유럽의 오래된 궁전이나 성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데, 색감과 형태가 아주 멋지다.

거실이나 식당 벽면에 밀착된 알자스 난방기구는 벽 너머 주방과 이어져 있는데, 주방 화덕을 통해 조리와 난방이 가능했다.

 

침실

목골 가옥에서 사용하던 가구와 생활용품은 압도적으로 목재가 많았다.

내가 좋아하는, 독일어권 레스토랑이나 호텔 조식당에서 가끔 볼 수 있는 식탁과 의자 형태-ㄱ자 또는 ㄷ자-가 정말 반가웠고,

목재 보행기와 다른 소품들도 정겹게 느껴졌다. 

 

주방

과거 우리네 부뚜막 같이 생긴 조리 공간엔 화덕이 자리하고 있다. 

저울, 크고 작은 냄비, 다양한 조리도구, 각종 보관용기, 접시와 그릇, 각양각색 베이킹틀 등을 옹기종기 모아놓았는데,

낡은 듯  소박한 주방이 전원적이고 꽤 운치 있어서 보는 즐거움이 있었다.

 

약국 : 왼쪽 문
약국

3채의 건축물을 연결한 박물관엔 중정 같은 안뜰이 있다.

뜰의 양편에 자리한 집에는 난간 있는 실외 복도가 있는데, 복도 끝 문 안쪽에 자그마한 약국이 조성되어 있다.

약국으로 들어가는 낮은 출입문은 닫힌 채 고정되어 있어서 안으로 들어갈 수 없고, 바깥에서만 집기와 용품이 있는 공간을 볼 수 있다.

 

알자스 전통의상

알자스 전통 의상 중 눈에 띄었던 것은 시대에 따라 변화된 여자 의상이다.

1820년대부터 1910년대까지의 여자 복식을, 눈코입 없는 마네킹에 전시하여 한눈에 쉽게 변천사를 알 수 있다.

특히 머리 장식의 변화가 도드라졌는데, 1890년대부터-더 이전부터일 수도-는 뒷머리 전체를 덮고 남을 만큼 장식이 굉장히 커졌다.

 

출산 의자
출산 의자와 요람

알자스박물관에서 가장 인상적이고 놀라웠던 것은 출산 의자다.

팔걸이와 손잡이가 있고 앉는 부분이 뚫려있어서, 처음엔 변기나 요강인 줄 알았으나 출산용 의자라 해서 좀 충격적이었다.

산모의 고통을 줄여주는 목적인지 태아의 건강을 염려해서 만든 의자인지 알 수는 없었다.

 

통과의례 첫 단계인 출생을 맞은 영아에게 주어진 요람이, 출산 의자 양쪽을 지키고 있다.

삶의 마지막 기억을 간직할 장례용품들은 십자가와 함께, 요람에서 멀지 않은 전시실을 차지하고 있었다.

태어나고 어른이 되고 결혼을 하고 또 늙어가고 죽어가는 모든 과정은 과연 존엄할까, 무상할까.

박물관 공기를 가득 채운 나무 향이 차즘 진해지고 있다.

 

장례용품
성 세바스티안(왼쪽)과 성 조지(오른쪽)

아까부터 우리 뒤쪽에서 관람하고 있는 30대 초반 나이의 일본여자 둘이 내내 너무 떠든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이렇게 무례한 자들은 거의 처음이다. 하는수없이 그녀들이 우리를 앞서가도록 잠시 기다렸다.

 

알자스 카톨릭 역사를 보여주는 전시실에 오래된 인형 같은, 성 세바스티안과 성 조지-성 조르디 또는 성 게오르기우스- 조각상이 있다.

두 성인은 로마 군인 출신으로 순교했는데, 성 세바스티안은 근육질 몸매에 화살-화살형으로 순교하진 않음-을 맞는 모습으로,

성 조지는 칼이나 창, 방패를 들고 용과 싸우는 모습-그림에선 말을 타거나 여자, 양이 같이 등장하기도-으로 표현된다. 

 

곡물 분쇄기

실내 복도 벽면에, 기이하고 괴상한 또는 흉측한 모습의 가면들이 잔뜩 걸려 있다.

곡물 기계에서 곡물이 분쇄되어 나오는 곳에 부착됐던 나무 가면이라 하는데, 그림에서처럼 가면 입으로 곡물이 쏟아져 나오는 형상이 된다.

이 가면에는 맥각병-곡식의 이삭에 균이 기생-의 악령을 내몰고 건강을 지키기 위한, 벽사를 기원하는 알자스인의 소망이 담겨 있다.

가면 앞에 서니 복도에 가득한 목재향이 정말 짙고 강렬하다. 그들의 지극한 염원만큼이나 말이다.

 

프랑스병사(왼쪽)와 독일병사(오른쪽)
Charles Freger : 알자스의 추억

박물관 전시실과 옆 건물 0층엔 사진작가 샤를 프레제의 '알자스의 추억'이 전시되고 있는데, 알자스인의 정체성에 대한 고뇌가 담겨있다.

알자스 지역은 상당히 복잡한 역사성을 지닌 곳으로, 9세기 이후 독일어 문화권이었고 줄곧 알자스어를 사용했다고 한다.

17세기에 프랑스가 이곳을 차지했고 19세기 이후엔 프랑스령과 독일령을 여러 번 오갔으며 1945년 프랑스 영토가 되어 현재에 이른다.

이런 이유로 스트라스부르 구시가 이정표엔 프랑스어와 독일어-또는 알자스어-가 병기되어 있다.

 

박물관 옆 견물 0층 '알자스의 추억'
프랑스병사
독일병사

스트라스부르 여행을 준비할 땐 예정하지 않은 알자스박물관을 관람한 것은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

2시간 동안 새로웠고 즐거웠으며 흥미로웠다. 알자스에 대한 호기심과 궁금증이 조금이나마 해소된 것 같다.

박물관을 나와 옆 건물 0층에 있는 전시실에도 들렀는데 무어라 표현하기 쉽지 않은, 야릇하고 애통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어느새 시간은 정오를 지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