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표류/2024 베니스·로비니·비첸차

4월 15일 (월) : 고대도시 풀라

갈매기 소리 울려퍼지는 맑은 아침이다. 

9시 20분, 숙소를 나서 로비니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는데 마침 딱 휴게시간이란다.

창구 앞에 줄을 서서 잠시 기다렸고 다시 오픈한 9시 45분, 가장 먼저 풀라 가는 버스 티켓을 발권했다.

왕복으로 티켓을 구입했더니 25% 정도 할인됐고, 오늘 안에 풀라를 언제든 오갈 수 있는 승차권이라고 한다.

 

풀라 버스터미널
풀라 버스터미널

10시에 출발한 풀라행 버스 안에 승객이 그득하다.

로비니에서 이스트라반도 남쪽 끝에 위치한 풀라 가는 길, 하잘것없고 밋밋한 들판만 잇따르고 있다.

10시 45분, 로비니에서 남쪽으로 35km 떨어진 풀라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로비니처럼 이스트라주에 속한 Pula는 기원전 2세기, 로마에 정복되었던 터라 고대로마 유적이 도시 곳곳에 남아있다.

 

풀라 아레나
풀라 아레나
풀라 아레나

풀라 버스터미널에서 원형경기장-아레나-까지는 600m, 걸어서 10분이면 도달할 거리다.

풀라를 상징하는 아레나는, 4층 구조로 3중벽-내벽,중벽,외벽-이 보존되어있는 로마 콜로세움과는 달리 3층이고 홑벽만 남아있다.

80년경, 콜로세움과 같은 시기에 건립되어 2만명을 수용했던 풀라 아레나는 130*100m 규모로 188*156m인 콜로세움보다 작다.

 

요즘은 콘서트나 오페라, 축제 등의 공연장과 행사장으로 활용된다는 아레나를 한 바퀴 쭉 둘러 천천히 걷는다.

홑벽밖에 없기에 입장하는 입구에서든 다른 아치에서든 안이 훤히 다 보이니 걷는 내내 신기하고 재미있고 즐겁다.

난 로마 콜로세움 내부에 3번, 남편은 1번 입장한 경험이 있어서 풀라 아레나는 내부탐구 대상에서 제외했다.

 

풀라 아레나와 카페
풀라 아레나
풀라 아레나

풀라 아레나는 경사진 대지에 자리잡고 있어서 위치에 따라 지면이 1층에 맞닿기도 하고 2층과 마주하기도 한다.

우리는 아레나 2층과 눈높이를 맞추고 있는 야외 카페에 앉아 카푸치노를 주문했다. 

2층 높이에서 내려다보는 아레나가 아주 근사하다. 무너진 관중석 중 일부를 복원-또는 공사-한 모습까지 볼 수 있어 좋았다.

 

트윈게이트
헤라클레스문
헤라클레스문 오른쪽 탑과 성벽

아레나에서 풀라 구시가 어귀까지는 도보 10분이면 충분하다.

제일 먼저 등장한 트윈게이트는 풀라 성벽에 있던 10개의 문 중 하나로 2-3세기에 건축되었다고 한다.

이어지는 헤라클레스문은 중세 탑 사이에 서 있고 꼭대기엔 헤라클레스의 수염 또는 방망이로 추정되는 부조가 남아있다.

 

세르기우스 개선문
세르기우스 개선문

구시가 입구엔 Golden Gate로도 불리는 세르기우스 개선문이 있다.

한눈에도 오랜 역사가 보이는 개선문은 수 세기동안 권력을 누린 로마 세르기우스 가문에 의해 기원전 29-27년에 건립되었고,

그 옆 작은 광장에서는 현재 공연 등 문화 행사가 열린다고 한다.

시간이 함축된 개선문을 지나면 과거 다른 세계로 입장할 것만 같았는데, 이어 등장한 골목은 그저 평범했다.

 

포럼 광장 : 아우구스투스 신전과 시청
아우구스투스 신전과 시청

성벽 안이었던 구시가 포럼 광장에 다다르면 아우구스투스-제정 1대황제- 신전과 시청사를 만날 수 있다.

고대 로마시대에는 황제가 죽으면 신으로 받들어 신전을 세운 후 추념하고 축원하는 것이 흔한 일이었다.

기원전 2세기에 건축된 아우구스투스 신전은 코린트 양식의 6개 기둥으로 전면을 장식했으며 현재는 전시관과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로마시대 포럼 광장에는 아우구스투스신전 옆에 같은 형태의 아르테미스-디아나-신전이 있었고 광장 중앙에는 제우스, 헤라, 아테나

-유피테르, 유노, 미네르바-신전이 있었다고 하니 그야말로 그리스로마신들의 화려한 향연이 펼쳐졌던 곳이다.

아우구스투스신전 옆 시청사 뒷면이 옛 신전의 일부였다고도 한다.

 

아우구스투스 신전
아우구스투스 신전에서 본 포럼 광장
아우구스투스 신전 뒷면

신전 계단을 걸어올라 바라본 광장이 다사롭고 아늑하다.

신전 출입문 좌우에 놓인 조형물과 벽면과 기나긴 기둥들은 유구한 세월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크지 않은 아우구스투스 신전 내부에선 행사가 진행 중인지 울림 심한 마이크 소리가 계속 들려오고 있다. 

 

조선소
낚시 중인 남자

이스트라 반도에 위치한 풀라는 로비니와 아드리아해를 공유한다.

풀라 바다와 항구는 육지에 둘러싸인 모양새를 하고 있는데, 해군 기지와 조선소가 바다 주인 노릇을 하고 있으니 풍광이 별로다.

바다가 주는 평온함과 자유, 개방감을 느낄 수가 없다.

 

점심식사를 하러 간 레스토랑이 닫혀 있어 확인하니 월요일 휴무란다. 

오후 1시반, 그곳에서 멀지 않은 레스토랑 야외에 앉아 해물파스타와 해물리조또, 탄산수와 빵을 주문했다.

우연히 발견한 곳이라기엔 아주 훌륭한 식당. 음식엔 큼직한 해물이 듬뿍 들었고 싱싱하며 게다가 맛있다. 

덥지 않은 풀라 날씨, 오후 하늘엔 점차 구름이 많아지고 있다.

 

풀라 요새
풀라 요새 부근
풀라 요새 부근에서 본 로마극장

풀라 요새와 그 근처 무너진 성벽 주변을 가보기로 했다. 

찾기 어려운 고대 로마극장을 가려고 구글맵이 알려주는 대로 움직이는데, 로마극장은 성벽 아래쪽에서 공사 중이다.

예전에 이곳을 공연장으로 사용했다고 하던데, 공연장이든 유적이든 관리 상태가 양호해 보이진 않는다.

 

고대 모자이크 있는 건물 근처

풀라 고대 유적 중 봐야 할 게 뭐가 남았지.

3세기에 만들어진 고대 모자이크가 있는 건물을 찾을 수 없다. 표지판도 없고 구글이도 무응답이다.

버스터미널로 돌아가려다가 공원 옆 젤라또 가게에 멈춰섰다. 베네치아에서도 안 먹은 젤라또를 크로아티아에서 먹었다.

 

당 충전 후 다시 고대 모자이크 유적을 찾으러 주소지 근처를 뱅글뱅글 돌고 있는데, 백인 2명이 작업 중인 현지인에게 유적지를 묻는다.

귀동냥하는 우리. 문이 닫혀 있어서 들어갈 수 없다고 한다. 폐관인지 일시적으로 닫은 건지는 알 수 없다.

이 동네, 미사 시간이 아니라서 닫아둔 건지 신자가 줄어 아예 폐쇄한 건지 모르겠으나 성당들도 다 닫혀 있어서 내부 구경조차 못했다.

 

오전과는 다른 길, 데이터 미약한 구글맵을 보면서 구시가 중심도로를 통과해  버스터미널을 향해 1km쯤 걸었다.

로비니보다 훨씬 큰 도시인데 볼거리도, 풍광도 기대보다 미흡하고 부족해 아쉽다. 

 

풀라 시장
풀라 아파트

도착한 풀라 버스터미널에, 아침 로비니에서 같은 버스를 타고온 젊은 백인커플이 실외 벤치에 앉아있다.

오후 5시 20분에 풀라를 출발한 버스는 정각 6시, 우리를 로비니 버스터미널에 떨어뜨려 주었다.

숙소 오는 길에 빵집에서 애플파이와 치즈파이를 구입했고 샘표 잔치국수에 곁들여 저녁식사를 했다.

 

행정구역 경계를 넘나드는 건 역시 고단하다.

어제와는 달리 오후 9시반, 완벽한 숙면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