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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2024 베니스·로비니·비첸차

4월 16일 (화) : 아름답고 푸른 로비니

숙소 앞 건물

우리의 소울푸드인 비빔밥과 된장찌개로 속을 든든히 챙긴 아침, 하늘이 잔뜩 흐리다.

커피와 요거트까지 잘 거두어먹은 후 10시반, 루프트한자에서 보내온 이메일-캐리어 파손 관련-에 답장을 했다.

'감빵생활'을 시청하고, 서울를 지키는 아들 그리고 친구들과 안부를 주고 받으며 오전 내내 계속 널브러져 있다.

점심 식전에 푸딩과 빵을, 점심 본식(?)으로 육개장칼국수에 흑미밥까지 먹고 나서야 일정을 시작한다.

 

로비니 구시가 바다 둘레길

오후 2시, 흐린 하늘이 조금씩 개기 시작한다.

구시가와 그곳에서 보이는 아드리아해가 오늘 1차 산책 코스다.

일요일엔 문을 닫았던 바다 둘레길의 샵들이 저마다 개성 어린 꾸밈새와 디스플레이를 보여준다. 

맨 바다도 좋고, 잔뜩 장식한 틈새가 주는 바다도 좋다.

 

빵집
숙소 앞 골목

이젠 완전히 쨍하고 햇살 가득 맑아진 날씨.

1시간을 걷고나니 낮은 기온 염려에 걸치고 온 겉옷과 비 예보로 들고온 우산이 거추장스러워졌다.

숙소에 들러, 겉옷과 우산 그리고 빵집에서 구입한 애플파이까지 들여놓은 다음 내딛는 걸음이 가뿐하다.

 

발비스아치 안쪽

다시 발비스아치를 통과해 예쁜 카페와 푸르른 집 앞을 지난다.

늘 같은 로비니를 거니는 것 같은데 걷다보면 같은 곳이 아니었다.

아니, 다르지 않은 공간을 스치더라도 눈이 보는 것이 다르고 마음이 깨닫는 것이 다르니 똑같지는 않은 것이다.

 

성에우페미아 성당
17-18세기 귀족 궁전

성에우페미아 성당의 종탑은 어디서든 눈에 띄지만 61m 종탑 꼭대기의 에우페미아 청동상은 희미하고 아련하다.

몇 백년 전, 지역의 세도가였을 귀족의 궁전은 닳고 바래고 해져서 그들이 품은 역사도 아득하고 흐릿하다.

 

아마도 산타크로체 문

로비니 구시가 골목길과 바다 둘레길은 몇 걸음만으로 이어져 기막힌 풍경을 선사한다.

자리는 마련되어 있으나 휴업 중인 카페에서 보는 바다, 찬란하고 아름답고 출중하다.

 

산타크로체 소성당 1592년

명도 낮은 골목길에 한국어가 울린다. 로비니에서 처음 듣는 한국어다.

생기발랄한 영혼을 지닌 20대 한국여인 둘이 인적 드문 로비니 구시가를 자유롭게 즐기고 있다.

 

바닷길을 걷다보면 두브로브닉 성벽의 부자 카페처럼 바다로 향하는 좁은 공간에 자리잡은 카페가 있다.

성업 중인 카페를 비껴 내려가 다른 방향의 바위에서 아드리아해를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깊고 푸른 바다, 햇살로 부서지는 파도, 눈부신 수평선을 보니 온 마음이 시원스레 다 트이는 것 같다.

 

Balota발로타 해변

유람선에서 본 멋진 광경 중 하나인, 벽면에 여섯 아치가 음각된 발로타 해변에 이르렀다.

바닷바람 강하고 파도도 아주 세찬 날, 수영복 입은 사람은 있어도 수영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산타베네디토 문 12세기
피자리아
피쉬하우스

숙소로 들어가기 전, 그제와는 다른 피자리아에서 마르게리타와 숙소 옆 피쉬하우스에서 깔라마리 튀김을 포장했다.

오후 5시에 먹는 저녁식사 메뉴는 마르게리타피자, 칼라마리튀김, 감자튀김, 애플파이 그리고 맥주다.

어느 하나 빼놓을 수 없이 모두 맛있는 식사이자 안주였는데, 특히 애플파이는 빈에서 먹는 아펠슈트루델을 생각나게 했다.

 

오후 6시반, 강한 천둥이 치고 세찬 빗줄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일기예보는 정확했다.

비는 1시간 넘게 계속되었고 우린 '감빵생활' 속에서 커다란 재미와 잔잔한 감동을 얻었다.

비 그친 늦은 밤, 어제처럼 어디선가 장작 타는 냄새가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