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면을 취한 아침, 일정을 점검한 후 대구조림과 짜장과 김치 그리고 커피까지 맛있는 식사를 했다.
그런데 2~3일 전부터는 피렌체 모기들의 행태가 변했으니 남편을 주로 공격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나를 물어뜯던 모기들은 힘에 밀려 이곳을 떠났고, 더 강인하고 독한 모기떼들이 들어온 것이다.
오전 7시반, 숙소 앞 버스정류장에서 시간 맞춰 도착한 6번 버스를 타고 산타트리니타 성당 근처에서 하차했다.
성당에 입장하기 전, 트리니타 다리에 먼저 가보았는데 역시나 이곳에서 보는 베키오 다리가 가장 멋지다.
다만, 사흘 전이나 오늘이나 모두 그러하듯 오전엔 역광이라 사진 찍기에는 오후가 더 제격이다.
무려 아침 7시부터 입구를 열어놓은 산타트리니타-성 삼위일체-성당.
로마네스크 성당을 13-14세기에 고딕으로 재건했고 정면 파사드는 16세기에 르네상스 양식으로 만들었다.
성당 맞은편 높은 원기둥 위에는 왼손엔 저울을, 오른손엔 긴 칼을 든 정의의 여신 조형물이 서 있다.
초기 고딕 성당이라 일반적인 고딕 양식-앙고성, 공중부벽, 첨탑-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이탈리아 모든 도시를 가본 것은 아니지만 이탈리아 성당의 고딕은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의 고딕과 확실히 다르다.
게다가 도시별로 특징과 개성이 뚜렷하다 보니 같은 명칭으로 묶이는 건축 양식이라 하더라도 그 양상이 정말 다르다.
익랑의 바르톨리니 채플 제대화는 로렌초 모나코가 그린 '수태고지'다.
그리고 채플 전체를 '성모마리아의 일생'으로 채웠는데, 벽면마다 그림들이 많이 벗겨지고 바랜 상태였다.
산타트리니타의 또다른 익랑엔 도메니코 기를란다요가 작업한 사세티 채플이 자리해 있다.
제대화는 '양치기들의 경배'이고 천장엔 4대 복음사가를 그렸으며 채플 전체를 '성프란체스코의 삶'으로 장식했다.
이른 시각이라 그런지 여행객들은 찾지 않는 성당인지 평일 아침의 성당은 고요하고 적막했다.
아르노강을 따라 서쪽으로 500m쯤 움직이면 13세기 중반에 건립한 산살바토레인오니산티 성당이 등장한다.
원래 오니산타-모든 성인-였던 이름이 16세기에 살바토레-구세주-가 덧붙여져 산살바토레인오니산티라 불리게 되었다.
오픈 시각인 9시보다 조금 일찍 열린 성당, 출입문 위엔 성모의 대관식을 묘사한 부조가 있고 내부는 신랑과 익랑만 배치되어있으며,
천장화는 입체적이고 매우 화려하다.
성당의 신랑-신자석, 네이브-의 중간쯤엔 기를란다요와 보티첼리가 그린 프레스코화가 마주하고 있다.
기를란다요는 서방교회 4대 교부 중 성 히에로니무스를, 보티첼리는 성 아우구스티누스를 그렸다.
성서 원전을 번역한 성 히에로니무스는 붉은 옷을 입고 성서를 번역하는 모습, 황야의 벗은 몸, 추기경 모자, 돌멩이, 해골, 사자와 함께
묘사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그림에서 기를란다요는 붉은 옷, 성서 번역, 추기경 모자 등으로 히에로니무스를 표현했다.
'고백록'의 저자인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책을 들거나 글을 쓰는 모습, 불타는 심장이나 화살 꽃힌 심장을 들고 있는 도상으로 표현되며
보티첼리의 프레스코화에서는 책 읽는 모습, 태양력이나 혼천의 같은 학문적 사물, 주교관 등으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신랑 오른편 채플엔 아메리카 명칭의 유래가 된 탐험가 아메리코 베스푸치의 묘가 위치해 있다.
베스푸치 가문 채플은 신랑과 익랑 두 곳에 있고, 보티첼리가 평생동안 사랑한 시모네타 베스푸치의 묘도 이곳에 있다고 하는데
익랑에서 영면하고 있는 산드로 보티첼리(1445-1510)를 보느라 그녀의 묘까지는 찾아볼 수 없었다.
제네바 귀족 출신인 시모네타 베스푸치(1453-1476)는 15세에 피렌체로 와서 18세에 마르코 베스푸치와 결혼을 했고
로렌초 데 메디치의 동생인 줄리아노 데 메디치의 연인-배우자 따로, 연인 따로-이 되었다.
메디치가와 베스푸치가의 후원을 받고 있던 보티첼리는 자신의 사랑을 드러낼 수 없었고, 시모네타는 22세에 폐결핵으로 사망한다.
평생 독신으로 산 보티첼리는 그녀를 모델로 한 그림들을 그렸고, 자신이 죽으면 시모네타 발치에 묻어달라고 했다 한다.
익랑 채플들 앞에는 조토 디 본조네(1267-1337)가 제작한 오니산티의 십자가가 공중 부양되어 있다.
십자가 아래쪽에서 들어오는 빛을 따라 문을 나서니 더 환한 빛이 물결치는 공간이 나타난다.
안뜰과 회랑이 평화롭고 멋스럽다.
산살바토레인오니산티에서 북쪽으로 700m쯤 움직였을까.
오전 10시, 산타마리아노벨라성당 앞 광장에 뜨거운 볕이 타오르고 있다.
산타마리아노벨라 광장은 코시모 1세-코시모 메디치의 방계- 때 두 오벨리스크로 끝지점을 표시하여 전차경기장으로 사용했고
13-14세기에 건립된 산타마리아노벨라 성당은 피렌체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이며 정면 파사드는 15세기에 만들었다.
성당 내부에 들어서면 천장의 첨두아치와 줄무늬 대리석 그리고 예상보다 간결한 내부가 펼쳐진다.
성당 측랑에 배치된 채플은 구조물이나 장식 없이 제대와 제대화로만 구성되어 화려하지 않고 단출한 편이다.
신랑 통로에는 조토 디 본도네가 1295년 제작한 대형 십자가가 걸려있고 왼쪽엔 브루넬레스키가 디자인한 설교대가 있다.
가운데 출입문 안쪽의 좌우에는 '수태고지'가 그려져 있는데 왼쪽은 패널이고 오른쪽은 프레스코화로, 느낌이 확연히 다르다.
오른편 수태고지 아래쪽에는 그리스도의 세례, 동방박사의 경배, 그리스도의 탼생도 아주 곱게 그려넣었다.
출입문 위 반원형 루네트엔 보티첼리가 그린 '예수의 탄생'이 배치되어 화사한 분위기를 돋워주고 있다.
산타마리아노벨라성당에 입장한 이유는 마사초(1401~1428)가 1424~1425년에 그린 '성 삼위일체'를 보기 위해서다.
왼쪽 측랑에 그려넣은 '성 삼위일체'는 최초로 원근법을 적용하여 표현한 그림으로, 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작품이다.
성자 그리스도와 성부 하느님, 비둘기로 표현된 성령을 중심으로 십자가 양쪽엔 성모 마리아와 사도 요한이 그려져 있고
바깥쪽에는 그림을 주문한 도메니코 렌치와 그의 아내가 묘사되어 있다고 한다.
또한 아래쪽 해골 놓인 석관 그림엔 '나도 지금의 너와 같았다. 너도 언젠가 지금의 나와 같을 것이다.'는 문구가 적혀있다.
그런데, 사람들 오가는 성당 안에서 이 그림이 통째로 복원 공사 중이다.
게다가 휘장을 쳐놓아서 그 안을 볼 수 없고, 한술 더 떠서 별도 입장료(€1.5)를 받고 관람객을 휘장 안으로 들여보내고 있다.
가장 중요한 그림을 보기 위해 성당 입장료를 지불했는데 멀리서라도 볼 수 있게 투명한 장막이나 파티션 등을 이용하는 방법은 없었을까.
여행 전에 알게 되어 미리 인지하고 온 상황이긴 했으나 그림을 저런 이상한 방법으로 보고 싶지 않아서 휘장 안으로 들어가진 않았다.
어찌하든 아쉬운 건 마찬가지, 베네치아 스콜라산로코 위층 회의실에서 복원 중인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를 못본 것보다 훨씬 더 아쉽다.
중앙 제대 왼쪽의 곤디 채플에는 브루넬레스키가 1415년에 만든 그의 유일한 목조 조각상인 나무 십자가가 있다.
도나텔로가 만든 십자가를 본 브루넬레스키는 농부 같다 하였고, 직접 만들어보라는 도나텔로의 요구에 이 멋진 십자가를 제작했다고 한다.
왼쪽 익랑의 계단 위 스트로치 채플은 '최후의 심판' 프레스코화로 장식되어 있다.
정면엔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위쪽부터 그리스도와 천사들, 구름 위 성인들, 지상에 구원받은 사람들을 그렸고
왼쪽 벽면에는 천국, 오른쪽 벽면에는 지옥을 묘사했다.
산타마리아노벨라성당의 중앙 제대는 성당 건축을 지원한 토르나부오니 가문의 이름을 따 '토르나부오니 예배당‘이라고도 한다.
앱스-후진-의 프레스코화는 1485년부터 1490년까지 기를란다요가 제작했는데 4명의 복음사가로 천장을 크게 채워 그렸고
정면에는 성모마리아의 대관식과 구름 위에 있는 성인들의 모습을 묘사했다.
왼쪽 벽면의 4단 프레스코화는 '성모마리아의 일생'으로, 아래에서 위쪽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맨 아래는 '성전에서 요아킴 추방'과 '성모마리아의 탄생'을, 그 위는 '성모마리아의 성전 봉헌'과 '성모마리아의 결혼식'을 묘사했고
그 위는 '동방박사의 경배'와 '영아학살'을, 맨 위는 '성모 승천'을 그렸는데 정면의 '성모마리아의 대관식'으로 연결된다.
오른쪽 벽면에 그려넣은 4단 프레스코화는 '세례 요한의 일생'이다.
맨 아래는 '사가랴를 방문한 천사'와 '마리아의 엘리사벳 방문'을, 그 위는 '세례요한의 탄생', '세례요한의 이름을 쓰는 사가랴'를 그렸고
다음은 '설교하는 세례요한'과 '그리스도의 세례'를, 맨 위에는 '헤롯의 연회와 세례 요한의 순교'를 묘사했다.
중앙 제대 오른쪽엔 필리포 스트로치 채플이 자리해 있는데, 내 눈은 이곳을 노벨라성당에서 가장 아름다운 채플로 꼽았다.
채플의 스테인드글라스 디자인은 물론 벽면 프레스코화까지 모두 필리포 리피의 아들 필리피노 리피(1457~1504)의 작품이다.
채플 오른쪽 벽면은 '히에로폴리스 사원에서 용을 쫓아내는 사도 필립보'를, 루네트엔 '사도 필립보의 순교'를 그렸으며
왼쪽 벽면은 '드루시아나를 부활시키는 사도 요한'을, 위쪽 루네트에는 '사도 요한의 순교'를 묘사했다.
성당에서 외부로 이어진 문을 나가면 수도원 중정을 둘러싼 회랑으로 이어진다.
회랑은 벽면마다 녹색 안료로 그려진 프레스코화가 장식되어 녹색회랑이라 명명했으나 지금은 많이 훼손된 상태다.
녹색회랑 안쪽의 '스페인 예배당'은 코시모 1세가 아내 엘레오노라와 그녀의 스페인 수행원들을 위한 예배당이다.
채플 정면은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위), 십자가를 진 그리스도(왼쪽), 지하에 간 그리스도(오른쪽)를 그려 장식했고
오른쪽 벽면에 그려진 피렌체 두오모성당은 쿠폴라를 건립하기 전이라 현재 모습과는 다른 형태로 표현되었다.
산타트리니타 성당과 산살바토레인오니산티 성당을 2시간, 산타마리아노벨라 성당을 1시간반 넘게 둘러보았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으나 성당 건축물과 성화 그리고 성상에 푹 빠져있다보니 신자가 아님-남편만 신자-에도 순례자가 된 듯 가슴이 뛴다.
날은 점점 더워지고, 우린 정오가 넘어 숙소에 다다랐다.
그리고는 버섯과 양파, 계란을 넣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라면을 먹었다. 유럽에서 먹는 라면은 역시 맛있다.
휴식 중 아들과 톡-매일-을 하며 두 생명체의 안부를 물었고, 내일 볼차노에 도착해서 바로 가게 될 점심식사 장소를 검색했다.
오후 6시반, 사흘 전에 갔던 피자리아에서 마르게리타와 참치피자를 포장해 왔다.
돌로미티 동영상과 함께 하는 피자라니, 돌로미티 풍경과 피자 맛, 둘 다 정말 환상적이다.
오후 8시반, 열린 창문 너머로 느닷없이 고성이 나서 그순간 깜짝 놀랐다.
한 백인 여자-이탈리안-가 여기에 주차해도 되냐며 큰 소리로 우리에게 묻고 있는 것이었다.
우리 숙소는 지상층이고 숙소 앞 작은 광장엔 차들은 잔뜩 주차되어 있는데, 딱 봐도 여행객인 동양인에게 주차 가능 여부를,
그것도 조용하고 어두운 밤에, 게다가 실례합니다란 말도 없이 갑자기 소리 질러 묻다니, 참으로 무례하다.
큰 짐들을 챙겨 캐리어를 꾸려두었다.
내일은 볼차노로 이동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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