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표류/2024 로마·피렌체·볼차노·빈

8월 22일 (목) : 볼차노에 가면

피렌체 산타마리아노벨라역

청소차 소리가 들리고 사람들 말 소리가 간간히 울려퍼지는 새벽 5시반.

어디선가 알 수 없는 물 소리가 들려서 침실 밖으로 나왔는데 주방 옆 욕실2 앞이 물바다가 되어 있다.

이게 무슨 일이래, 확인해보니 벽에 걸려있던 샤워기 헤드와 호스가 아래로 떨어지면서 수전을 건드려 물이 끊임없이 솟구쳤고

작은 욕실-샤워부스 없이 샤워커튼만 있음-의 원활하지 않은 배수가 2차 원인이 되어 욕실이 넘쳐 욕실 앞까지 물이 차 있있던 것이다.

 

낡디낡은 샤워기 헤드가 떨구어진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어제 마지막으로 샤워한 내가 샤워기를 잘못 걸쳐놓은 것-가능성 적음-일 수도 있고, 부실한 샤워기가 조금씩 움직여 떨어졌을 수도 있다.

샤워기 헤드가 떨어지다가 딱 하필 수전을 건드렸다는 것은 황당했으나, 그나마 다행인 건 물이 솟기 시작한지 오래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린 20여분 동안 욕실 앞과 욕실의 물을 빗자루로 쓸어내리고, 수건과 걸레로 물기를 제거한 후에야 한숨을 돌렸다.

 

오전 6시 20분, 검은빵과 치즈 그리고 요거트와 납작복숭아와 자두 및 커피로 이른 아침을 차렸다.

살짝 지친 와중에 캐리어를 꾸려 셀프 체크아웃을 한 후 7번 버스에 올랐고 곧 SMN역에 도착했다.

 

Italo Prima석
Italo Prima석

덥지 않은 피렌체 산타마리아노벨라역의 아침, 플랫폼으로 가기 위해서는 로마에서처럼 승차권 확인 후 게이트를 통과해야 한다.   

트렌이탈리아보다 이딸로의 플랫폼 확정이 더 늦었기에 이딸로가 주로 정차하는 곳에서 대기했고 출발 15분전 플랫폼이 공지되었다. 

 

9시 5분에 정시 출발한 이딸로 프리마석이 조용하고 쾌적하다.

캐리어는 객차 밖 짐칸에 올린 다음 늘 그렇듯 와이어락으로 두 캐리어를 묶어두었다.

출발 10분 후 티켓 검표를 했고, 볼로냐를 지날 무렵 커피 또는 음료 그리고 간단한 간식이 제공되었다.

기차는 볼로냐, 베로나, 트렌토를 경유하였고 차창 밖 풍경을 감상하면서 12시 20분, 드디어 볼차노에 도착했다.

 

볼차노역
기차역 근처 카페
기차역 근처 카페

볼차노 숙소의 얼리체크인까지는 1시간반 남아있었기에 식사도 할 겸 점찍어둔 근처 카페로 향했다.

오, 잠시 걸어가는 중에도 이 동네,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나 티롤 지역인 인스브루크 분위기가 확 느껴진다. 

게다가 나이 지긋한 카페 서버아짐이 건넨 인사는 세상에, 독일 남부와 오스트리아에서 쓰는 '그뤼스곳(Grüßgott)!'이다.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영토였던 볼차노-독일어.보첸-를 비롯한 남티롤지역은 1차 세계대전 후 이탈리아 영토로 편입되었으며

독일어를 사용하는 스트리아계 주민이 많다. 이런 이유로 분리 독립이나 오스트리아로의 귀속에 대한 지속적인 요청이 있었고

현재 볼차노 지역과 광역 행정구역은 정부로부터 받은 자치권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매진된 크루아상 대신 주문한 시금치치즈 라자냐가 아주 맛있고 카푸치노는 이탈리아스럽지 않게 연한 편이다.

카페 안에는 이탈리아어보다 독일어가 더 많이 들리고, 잠시 다녀온 화장실은 이탈리아스럽지 않게 정말 청결하고 깔끔했다.

 

숙소 건물
볼차노카드 (이탈리아어 독일어 병기)

약속한 오후 2시, 숙소 앞에서 호스트-직원-를 만나 숙소를 안내 받았다.

그녀는 볼차노와 주변지역의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는 볼차노카드를 제공해주었고, 이곳에 머무는 동안 유용하게 사용했다.

볼차노 아파트는 이번 여행에서 가장 고가를 치른 숙소로, 리뷰처럼 세심하고 깔끔하게 관리가 잘 되어있었다.

 

피렌체 숙소의 세탁기가 너무 낡고 고장날 염려가 있어 마지막 며칠 간은 사용하지 않았기에 먼저 빨래를 돌렸다.

그 사이 우린 Desper에서 이것저것 잔뜩 장을 봐 왔는데, 피렌체 중심지 마트보다 약간 저렴한 물가다.

발코니  빨래건조대에 빨래를 널고 비치된 빨래 집게까지 잔뜩 꽂아두고는 오후 5시 20분, 볼차노 구시가로 나들이를 간다.

 

볼차노 대성당

처음 온 유럽 도시의 구시가를 보는 가장 쉬운 방법은 메인 광장과 성당을 찾는 것이다.

구시가 발터광장 옆 볼차노대성당은 적색, 황색 사암으로 13-14세기에 건립했고 빈의 슈테판처럼 지붕엔 모자이크를 붙였다.

청명한 하늘이 성당 지붕과 멋스럽게 어우러진다.

 

볼차노대성당
볼차노 대성당 : 측랑

대성당은 신랑과 측랑만으로 이루어진 소박한 형태로, 외관도 그렇지만 내부를 보면 오스트리아 초중기 고딕양식이다.

첨두아치, 리브볼트 천장, 묵직한 다발기둥이 왠지 모르게 다사롭고 친숙하다.

 

설교대 (복음사가 중 루카와 요한)
설교대 (복음사가 중 마태와 마르코)
십자가의 길 6처

평일 늦은 오후, 성당 안은 그저 고요함만 흐른다.

신랑 기둥에 부착된 설교대엔 4명의 복음사가를 부조했고, 십자가의 길 6처 속 베로니카의 표정은 애절하기 그지없다.

 

발터광장
발터광장과 볼차노대성당(오른쪽)

구시가의 메인 광장인 발터광장 쪽으로 나오니 이탈리아를 전혀 느낄 수가 없다.

유럽 도시의 구시가는 말 그대로 올드시티라서 건축물이나 조형물이 최소한 백년에서 수백년 된 것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불과 100여년 전에 소속이 변경된 나라의 정취를 고스란히 느끼기란 거의 불가능한 것이다.

혹여 전쟁으로 도시의 많은 부분이 파괴되더라도 복구시 대체로 원래 형상을 따르기에 구시가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볼차노의 가장 큰 특징은 이탈리아어와 독일어의 병기다.

도로명이나 간판, 안내서는 물론 작은 물품에까지 두 언어가 나란히 씌어있다.

광장을 뜻하는 이탈리아어 Piazza와 독일어 Platz가 늘 나란히 함께 하는 것이다.

낫놓고 ㄱ자도 모르는 이탈리아어보다는 생활독일어를 약간 아는 우리 입장-과거 빈 거주-에선 아주 편리한 동네다.

 

이탈리아어와 독일어의 병기
성안드레아 부조 (가운데 위쪽)

성안드레아를 명명한 성당-1786년 철거-이 있던 자리엔 건물 외벽에 자그마한 부조가 새겨져 시선을 끈다.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한 성베드로의 동생인 성안드레아는 X자 십자가에서 순교했다.

 

볼차노 구시가

볼차노 구시가엔 지상층에 회랑이 있는 건물이 많은데 긴 회랑은 물론 그곳에서 바라보는 거리가 참 운치 있다. 

거리를 수없이 누비는 자전거의 쏜살 같은 속도에 깜짝 놀라기도 하지만 도시 곳곳이 꽤 매력적이다.

 

볼차노 시청사
볼차노 구시가

볼차노의 첫 저녁, 살시차와 프랑크푸르터로 소시지 파티를 열었고 채소와 맥주에게도 틈을 내어주었다.

아, 그런데 이 동네에도 모기가 있나 보다. 다리를 속절없이 왕창 물려버렸다.

새로운 도시 볼차노, 이젠 돌로미티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