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만의 이른 기상이다.
어제 다녀온 Melk수도원이 자꾸 마음에 걸려 리플렛을 살펴보니, 19년 전엔 분명 보았으나 어제는 지나친 다른 정원이 있었다.
덜렁거리는 성격으로 전환되는 중인 나와는 달리 남편은 다른 정원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고 한다. 다만 힘들고 고단하여 패스했다나.
어이없는 마음에 약간의 다툼이 있었으나 뭐 어쩌겠는가. 뭔가 빼먹은 듯한 느낌을 그때 거기서 적극 확인하지 않은 내 탓인 걸 말이다.
오전 8시 40분, U3으로 3정거장 이동하여 Stubentor슈투벤토어역에 내렸다.
Stubentor에는 지하철역 주변 지하공간은 물론 지상에도 빈 구시가를 둘러싸고 있던 과거 성벽의 흔적이 잘 남아있다.
아침식사를 하기 위해 Café Diglas까지 움직여본다
1875년에 오픈한 Café Diglas 본점은 1구 Wollzeile에 위치해 있고 빈 중심가에 다른 지점 3곳이 더 있다고 한다.
여행객들이 주된 손님인 카페 Central이나 Sacher, Demel 등과 달리 Diglas는 빈 시민들의 사랑을 받는 오래된 카페다.
토요일 오전 9시 10분, 아주 오래되어 지금은 사용하지 않은 듯한 카페 카운터 금고가 우리를 맞이한다.
빈의 전통 카페가 그러하듯 한쪽 벽면엔 종이 신문 묶음이 걸려있고 좌석 사이엔 나무 옷걸이가 비치되어 있다.
빈 시민들의 독일어가 은은히 울려퍼지는 멋진 분위기의 카페, 우리는 직원의 안내를 받아 북적대지 않은 창가에 앉았다.
탁자와 의자 간격이 살짝 좁은 창가 좌석에서 커피가 포함된 아침식사를 주문했다.
쎔멜 2개와 종류 다른 곡물빵 2개, 반숙계란과 수제잼과 버터 2개씩 그리고 직접 만든 크림을 얹은 멜랑쉬까지 맛있는 한 상이 차려졌다.
특히 겉바속촉의 진수를 보여주는 쎔멜과 곡물빵들은 이번 여행에서 먹은 최고의 하드롤이었다.
또한 할머니 서버를 비롯한 직원들은 친절했고 안에서 문을 잠가야만 불투명 유리로 변신하는 카페 화장실도 재미났다.
배도 채웠으니 이제 디글라스 근처를 걸어볼까.
빈 구시가의 진짜 매력은 링, 캐른트너, 그라벤 같은 넓은 거리가 아닌 그곳에서 더 들어가야 만날 수 있는 골목길Gasse이니까.
디글라스 다음 골목길인 Domgasse엔 20년 전엔 피가로하우스라 불렸던 모차르트하우스가 있다.
이곳은 모차르트가 빈에서 살았던 집들 중 당시 모습이 보존된 유일한 아파트로, 1784년부터 1787년까지 거주했다.
모차르트는 이곳에 사는 동안 '피가로의 결혼'을 작곡했고, 콘서트 요청이 끊이지 않았던 가장 풍족했던 시기였다고 한다.
모차르트하우스에서 정면에 보이는 거리는 Blutgasse 즉, 피의 거리다.
이 길이 Blutgasse가 된 연유는 14세기 템플수도회 기사단의 인물들이 한꺼번에 죽임을 당했을 때 거리가 피로 넘쳐났기 때문이라는
전승도 있고, 근처 도축장이 있던 지역에서 흘러나온 피가 여기까지 이르렀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Blutgasse 끝을 지나 걷다보면 빈의 유적 표식이 있는 바로크식 건축물이 눈에 띈다.
Palais Neupauer-Breuner노이파우너브로이너 궁전이라 이름 붙은 이 건물은 18세기초에 지어진 것이라 한다.
분명 사적인 공간일텐데, 누군가를 반기듯 활짝 열린 공동출입문에 이끌려 중정으로 들어가보니 단아한 모습이 딱 귀족의 궁전이다.
슈테판광장 근처 콜마크트에 있는 율리우스마이늘샵-식료품샵-으로 들어간다.
오스트리아브랜드 Julius Meinl이 잘 나가던 시절엔 옆 건물까지 매장으로 사용했는데, 지금은 커피원두 가짓수마저 크게 줄었다.
원두 중 하나를 골라 귀국해서 갈아 마셔보니 독일브랜드 Tchibo와는 달리, 예전의 맛을 찾을 수 없이 정말 너무 맛이 없다.
Bognergasse에 있는 Engel Apotheke천사약국 외관은 19세기말 전후 출현한 예술양식인 유겐트슈틸-아르누보-스타일이다.
9월 6일부터 9월 8일까지 3일간 소방 행사가 열린다더니, 오늘 Am Hof의 인구 밀도가 매우 높다.
Am Hof로부터 발길이 움직인 곳은 아름답고 호화로운 Palais Ferstel이다.
페어슈텔 궁전의 지상층인 기나긴 Ferstel Passage에는 샵들이 가득 들어서있고, 커다란 홀에는 그 유명한 카페 Central이 입점해 있으며
궁전 내부엔 높은 층고 자랑하는, 우아하고 화려한 이벤트홀이 마련되어 있다.
마차가 스치는 Herrengasse, 두 건물을 잇는 공중 다리의 유리벽을 통해 비치는 하늘이 아주 청명하다.
철이 지났음에도 절대로 물려나지 않는 여름 더위에 막혀, 오지 않을 것만 같던 가을이 넌지시 다가오고 있나 보다.
이렇게 오전을 마무리한 다음 Herrengasse역에서 U3를 타고 12시반, 숙소에 돌아왔다.
점심 라제비를 먹고 유튜브를 시청한 후엔 그저 계속 휴식이다.
오후 5시엔 Hofer로 향했고, 돌아오는 길엔 집 앞 피자리아에 들러 맛있는 피자를 포장해 왔다.
세월은 부단히 흐르고 여행의 끝은 머지않았다.
열정적으로 올드시티를 쏘다니고 무심히 동네마트를 돌아다니는 시간에 끝점을 놓을 때다.
『 여행기를 쓰는 지금, 작년 가을에 지구별을 떠난 녀석이 그리워서 너무 슬프다.
우리 아가, 잘 지내렴. 언젠가 다시 만나면 내가 먼저 알아볼게. 우리 꼭 다시 만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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