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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04~08)/빈에서 부친 편지

벌레와의 처절한 전투

우리 집에 개미가 출현한 것은 4월 초순이다.

취침 전, 침대 위로 기어오르는 시커먼 개미 모습을 처음 봤을 땐 '그냥  잡으면 돼'하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서울에 살 때도 그 흔한 바퀴벌레나 불개미와 동거해 본 적이 없었기에 개미의 존재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다음날도 개미가 가끔씩 보이긴 했지만, 내가 심심할까봐 개미가 놀러오는건가 생각하며 한 마리씩 저 세상으로 보냈다.

살생이긴 하지만 내가 뭐 불교신자도 아니고 우리 거주지를 침입한 미물 몇 마리 없앴다고 세상이 뒤집어지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 마침 주말이라 빈 놀이공원에 갔다가 한국식당에서 맛있는 저녁과 노래방에 완전히 신나게 놀다온 그날 밤!

우리집에선 개미들이 파티를 열고 있었다. 시커먼 개미들이 자기집인양 온 동네 개미들을 불러모아 축제 중이었다.

남편과 기호가 손바닥으로 개미를 사형시키는 동안 나는 살충제를 뿌렸다.

 

대충 개미들을 그렇게 보낸 다음, 인터넷에서 개미 퇴치법을 뒤졌다.

소금을 뿌리면 된다는 의견이 많았다. 개미 너 죽었다!

집 안 구석구석에 소금을 듬뿍듬뿍 뿌렸다. 다음날 개미가 보이지 않았다. 정말로 소금이 특효약인가.

다음날도 개미는 거의 없었다. 이제 진정한 평화가 오는 것인가. 그러나 개미는 곧 다시 출현했다.

 

이젠 방법이 없다. 개미 죽이는 약을 놓는 수밖에.

바로 EURO SPAR(대형슈퍼)에 가서 개미 죽이는 약(개미 컴배트)과 살충스프레이를 샀다.

열심히 방과 부엌, 화장실과 욕실에 개미약을 놓았다. 아침 저녁으로는 살충제를 뿌렸다.

드디어 개미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가끔 보이는 개미도 비실거리는 걸로 보아 개미약을 먹은 게 분명했다.

 

그렇지만 그것이 끝은 아니었다. 가끔 개미들은 한풀이를 하는지 한 곳에 몇십마리씩 갑자기 나타나는 것이다.

나타나서는 음식을 나르는 것도 아니고 그저 자기네들끼리 무리지어 놀고 있는 모습, 도대체 어쩌란 말이냐.

그래, 우리에겐 관찰이 필요했다. 개미가 특히 어디에서 많이 나타나는지.

 

우리 집은 지은지 100년이 된 집이다.

다른 사람이 살면서 수리를 하긴 했지만 기본 뼈대는 분명 100살 짜리이다.

그러보니 바닥 가장자리의 군데군데 균열이 있었다. 이제 해답이 나올까. 우선 균열을 메우는 게 급선무였다.

균열을 메운 다음부터 신기하게도 개미들의 잔치는 막을 내렸다.

가끔 홀로 외로이 방황하는 개미가 보이긴 하지만 그냥 꾹 기절시키면 된다. 우리는 평화를 되찾았다.

 

아, 평화가 온 줄 알았는데 여기가 시골이란 걸 잊다니, 하긴 언제 시골에 살아봤어야지.

개미가 사라지나 했으나, 다른 이름 모를 벌레들이 창문으로 구석진 틈으로 우리집을 방문한다.

한사코 사절해도 끈덕지게 쳐들어와서 인사를 해대는 이 손님들을 어이하리.

벌과 파리와 거미는 기본, 무당벌레, 새끼지네 등 매일 새로운 벌레가 출현하신다.

 

물론 우리 집이 벌레로 가득한 것도 아니고 그 벌레들이 내 삶을 지나치게 간섭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벌레라는 그 근질거리는 이름만으로도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그대들.

여름엔 정말로 어찌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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