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차에 올랐다. 약간 흐려가던 날이 반짝이려고 한다. 또 비엔나 시내 지도를 펼쳐야 한다.
물론 직접 운전을 하는 건 아니지만, 공간지각력과 운동 신경이 둔한 내게 지도 보기는 참 재미없는 일이다.
신나게도 오늘은, 한 치의 오류 없이 지도에 그려진 길 그대로 쉔브룬까지 달렸다.
쉔브룬은 프랑스 왕비 마리앙트와네트 어머니인 마리아테레지아의 궁전으로, 합스부르크 왕가의 여름 궁전이다.
1713년에 건축되었고, 현재와 같은 화려한 모습을 지니게 된 것은 18세기 마리아테레지아 시대라고 한다.
1441실 중 45실만 공개되고 있는데, 베르사유보다는 작지만 그 화려함과 아름다움은 베르사유 못지 않다.
정원 끝 언덕 위에는 전승기념비인 글로리에테가 있다.
그런데, 오늘 오후 행선지는 쉔브룬 궁전이 아니다.
지난 겨울, 요즘 같은 아름다운 정원도 볼 수 없었고 쉔브룬 내부는 이미 경험했다.
글로리에테가 있는 언덕에 오르고 싶지만 다음으로 미루고, 이제 드디어 쉔브룬 동물원으로 간다.
쉔브룬 동물원은 260년 전통을 자랑하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동물원으로 쉔브룬 정원 반대쪽이 그 자리다.
그런데 가도가도 보이지 않는 동물원.
궁전에서부터 15분을 걸어서야 입구가 나오는데, 입장도 하기 전에 벌써 지치려 한다.
입장권을 받아 동물원에 들어가니, 기호 세상이다. 관람 공간이나 조경이 우리나라와는 다르다.
사방에 펼쳐진 동물들을 샅샅이 보느라 기호는 정신없이 뛰어다닌다.
사자, 기린, 하마, 물개, 펭귄부터 산양, 개미핥기, 구렁이까지 하나라도 놓치면 큰일이라도 날 듯 유심히 살핀다.
동물원 한쪽엔 승마장이 있는데, 마침 승마 체험 시간이다.
말에 오른 기호가 무척 즐거워하며 말발굽 소리에 맞춰 신나게 몸을 흔든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 도나우강 다리를 건너 비엔나 외곽으로 달린다.
아침부터 내내, 특히 동물원에서만 세 시간 이상 혹사한 다리와 발바닥이 저려온다.
늘 쫑알거리는 기호도 고단한가보다. 고요하다. 오늘 어땠어? 진짜 재미있었어요.
기호의 장래 희망에는 아마도 동물이 들어있을 것 같다. 그 어리고 행복한 얼굴에 낮은 미소가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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