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맑은 일요일.
늦은 아침을 들고 바람 든 강아지처럼 오늘도 집을 나선다. 빈숲으로 가자구~
널따란 평원을 달려 비엔나로 가는 길에갑자기 남편이 제안을 한다.
비엔나 진입 고속도로 전인 트레스도르프에서 보이는 성에 가 보자는 것.
흔쾌히 동의를 하고 성을 향해 차를 올렸다.
생각보다 주차장에 차들이 그득하다.
나즈막한 숲 산책로를 따라 걸으니 영화 속 정경 같은 성이 보인다.
입장권을 받고나니 1시 입장, 기다려야 할 시간이 길다.
잠시 산책을 하며 성을 바라본다. 마음 기대고 싶은 푸근함이 느껴진다.
입장 시각이다.
삐걱거리는 다리를 밟고 들어간다.
들어올리면 외부와 차단되는, 영화에 가끔 등장하는 모양새를 가진 다리다.
중년의 멋진 가이드가 입구에서부터 관람객을 인솔하며
친절하고 재미있게 독일어로 설명을 해 주었지만,
잘 알아듣지 못하는 우리는 나름대로 이해하며 대열을 잇는다.
숲 언덕의 정상에 위치한 크로이첸슈타인 성은 900여년 전에 만들어진 중세 봉건 영주의 성으로,
지금까지 봐 오던 궁전이나 수도원과는 매우 다른 모습이다.
성 내벽의 곳곳에는 사슴 머리와 뿔 장식이 보이는데,
사냥의 전리품이자 평화와 건강을 기원하는 의미를 지닌다.
성 내부에는 주방과 응접실, 침실, 도서관, 성당, 무기 창고 등
필요한 시설들이 잘 갖추어져 있었다.
그 중 특히 사냥한 동물 가죽과 박제품이 눈길을 끌었고,
무기의 정교함과 다양함은 지금 기술에 비해 봐도 매우 놀랍다.
또, 오래된 성의 관리 상태가 경이로울 정도로 뛰어남은 물론이다.
멋진 모습의 성을 둘러보고 나니 벌써 2시가 넘어있다.
이젠 빈숲으로 달려간다.
그런데, 지도 따라 가는 빈숲 길이 이상하게 오늘은 어지럽게 얽힌다.
같은 길을 몇번 오가다 결국은 비엔나 왕궁으로 걸음을 돌렸다.
밥은 먹고 움직이자.
식사를 하기 위해 자리에 앉으니 고단함이 온몸에 흘러든다.
하루 두 탕은 역시 무리다.
어제처럼 돗자리 대령이다. 왕궁 잔디밭에 누웠다.
이젠 어디라도 자리만 보이면 눕는다.
눕자마자 어디선가 축구공이 날아와 남편의 고달픈 머리를 건드린다.
조금 후 다시 굴러온 공, 공을 찾으러 온 청년에게 기호가 독일어를 던진다.
저녁인데도 햇살 끝이 살아있다.
머릿속까지 피곤함을 안고 돌아오면서도,
길이 얽혀 예정했던 빈숲에 들르지 못했어도
크로이첸슈타인만으로 충분한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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