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3일 일요일, 오늘 행선지는 비엔나 중심에서 17km 거리에 자리한 제그로테다.
제그로테 동굴은 2차 세계대전 때 나치의 비밀 무기고로 사용되었던 지하 동굴로,
친절한 이정표를 따라 쉽게 찾아낸 제그로테의 첫 인상은 그저 평범하다.
입구 앞에 모여 있는 몇몇 관광객이 아니었다면 그냥 지나칠 듯한 모양새이다.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건네주는 직원이 20분 후 입장을 알려준다.
입구엔 동굴 내부 온도가 9도이며 담요를 빌려준다는 짧은 안내문이 걸려있다.
긴 소매옷 가져오길 잘 했네~
기호는 기념품에 애태우다가 작은 열쇠고리 하나를 쟁취하고는 벙글거린다.
드디어 입장이다. 처음부터 차고 어둡다.
멋진 유니폼을 차려 입은 가이드가 독일어와 영어로 관광객들을 이끈다.
제그로테의 크기는 6,200평방미터이고 그 깊이는 지하 300미터가 넘으며,
이곳에서 일했던 노동자 수는 2,000여명에 이른다.
현재 모습은 2차 세계 대전 때 소련의 폭격으로 무너진 것을 재건한 것이라고 한다.
긴 입구를 지나고 나니, 무사귀환을 기원하던 곳이 있다.
동굴 깊이만큼이나 깊고 무거운 불안감을 떨치고 싶었으리라.
한쪽엔 무기의 잔해들이 다른 곳엔 당시 사용하던 생활용품의 흔적들이 보인다.
넓은 광장은 성당이다.
중앙과 그 주변에 성모화와 초들이 눈에 띄는데,
지금도 12월엔 사람들이 이 지하 광장에 모여서 미사를 드린다고 한다.
동굴탐험의 마지막 코스는 보트 타기다.
동굴은 인공적으로 만든 것이지만, 동굴 내 호수는 자연 생성이다.
수십 개의 계단을 밟아 동굴 가장 깊은 곳까지 내려갔다.
12명씩 나누어, 콧털 선장과 함께 5분간 으스스한 스릴에 빠진다.
전에 관광객 하나가 익사했다는 설이 있는 지하 호수의 깊이는 1.5m~
1시간여의 동굴 탐험을 마치고 나와 햇빛을 받았다.
잠시의 선택된 어둠이었지만, 빛이 그리웠는지 반갑다.
그릇된 욕심이 담겨있는 곳, 가슴 아프면서도 다행스럽다.
'무소유'가 마음에 새겨지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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