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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04~08)/남유럽 이야기

이탈리아 2 : 콜로세움 속에서

공화국 광장

생각보다 일찍 눈이 떠졌다.

성능 괜찮은 에어컨 덕에 밤엔 더위와 싸우지 않아서인지 몸이 제법 가볍다.

호텔에서의 간단한 아침 식사를 마치고 선크림과 선글라스, 모자로 중무장을 한 후 테르미니역으로 향했다.

 

8시 조금 넘은 시각인데도, 쏟아지는 햇살이 꽤 부담스럽다. 

역에 설치된 자동 발급기에서 모레 아침에 떠날 나폴리행 승차권을 발권한 후, 지도 따라 열심히 걷는다.

디오클레치아노 욕장 앞을 지나 공화국 광장으로 가려는데, 횡단보도를 찾을 길이 없다.

다른 사람들의 행태를 보니 와, 무단횡단이 대세다~

 

퀴리날레 언덕

경주하듯 쌩쌩거리며 달려드는 자동차들을 피해서 길을 건너고 복잡한 거리를 걸어 이른 곳은 퀴리날레 언덕이다.

오벨리스크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쌍둥이 조각상이 있는 이곳엔 대통령 관저도 자리해 있다.

 

트레비 분수

퀴리날레 광장를 빠져 나오니 금세 트레비 분수다.

아침 더위에 지친 사람들이 분수가 만든 그늘에 옹기종기 앉아있고 장사꾼들도 땀 흘리며 생계에 앞장 선다.

우리 앞에서 서툰 한국말로 '만들기 1유로'를 외치는 동남아 아저씨. 이 아저씨를 조국으로부터 멀어지게 한 건 무엇일까.

분수 앞 거리엔 아이스크림 가게가 있는데, 경찰이 그 앞에 버티고 서 있다. 소문대로 소매치기가 최극성인 곳이다.

 

딱딱한 표정의 경찰과는 달리 18세기에 완공된 아름다운 트레비 분수에서는 포세이돈과 트리톤이 근사한 포즈를 짓고 있다. 

로마도 파리처럼 유적지나 볼거리가 중심지에 모여있긴 한데, 길은 좁고 표지판도 흔하지 않아 길 찾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시내 곳곳에 공원이 있는 파리나 비엔나와는 달리 로마는 가로수조차 인색하다. 

 

판테온

 이 길이 그 길 같고 그 길은 이 길 같아서 오락가락하다 드디어 만난, 기원전 27년에 지었다는 '만신전' 판테온.

앞 광장에도 어김없이 뜨거운 빛이 퍼져난다.

 

나보나 광장
베네치아 광장

경기장 자리에 조성된 길쭉한 나보나 광장과 이탈리아 통일을 달성한 비토리오 에마누엘레2세 기념관이 있는 베네치아 광장을 지난다.

볕 아래 피부와 다리를 혹사시킨 증상이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카피돌리노 언덕
마르첼로 야외극장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캄피돌리오 광장이 있는 저 위 카피돌리노 언덕엔 올라보려니 도저히 다리가 말을 안 듣는다.

시계를 보니 점심 때가 지나고 있다. 어차피 주변에 식당도 안 보이는데, '진실의 입'이나 보고 갈까나.

보카델라베리카 광장으로 가는 발걸음을 콜로세움처럼 생긴 무언가가 눈을 잡아챈다.

기원전 11년에 완성한 12,000명 수용 규모의 마르첼로 야외 극장이란다.

 

진실의 입
치르코마사모 전차경기장

진실의 입이여. 제발 내 손은 깨물어 먹지 않기를. 

그런데, 바다의 신인 오케아노스(혹은 트리톤)를 형상화한 '진실의 입' 앞에 늘어선 무려 100m가 넘는 긴 줄.

그래, 내 손을 네 입에 머물게 하지 않으련다.

 

치르코마사모 전차경기장 터엔 젊은 연인들이 나란히 걷고 있다.

10년만 젊었어도 저 뙤약볕을 즐겨보는건데. 어렵게 만난 나무 그늘 아래 앉아 바라본 전차경기장 터는 끝을 찾기 힘들다.

그 길이만 해도 600m가 넘고 수용 인원만 30만명이 된다하니 고대 전차 경기의 높은 인기를 짐작할 수 있다.

뜨거운 볕 아래 뜨거운 연인들의 모습이 점차 작아지고 있다.

 

전차 경기장 터를 지나니 낮은 언덕 위에 레스토랑 둘이 보인다.

그 중 한 곳을 골라 햇빛을 피해 앉았는데 워낙 기온이 높으니 불어오는 바람도 뜨끈하다.

 

포로 로마노

자, 이제 배를 채웠으니 또 움직이자.

고대 로마의 생활 중심지였던 포로 로마노가 펼쳐진다. 이곳도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어찌 보면 돌무더기들의 잔치. 그러나 들여다보면 원로원도 보이고, 신전들과 개선문도 눈에 띈다.

경제, 정치, 종교의 중심지를 한 바퀴 돌다보니 타임머신을 타고 고대를 헤매는 기분이다.

 

콜로세움
콜로세움
콘스탄티노 개선문

저기 거대한 옛날이 또 하나 보인다. 오늘 만난 유적지 중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인 곳.

콜로세움 매표소의 긴 줄에 한 번 놀라고, 파리나 빈과는 달리 어린이와 가족에 대한 할인이 전혀 없어 다시 한번 놀란다.

이러한 요금 체계는 국철을 제외하고는 어딜 가도 마찬가지. 지하철 요금도, 폼페이 입장료도 어린이는 어른과 동일했다.

 

콜로세움
콜로세움

콜로세움은 AD 80년에 완성된, 최대 지름 188m, 둘레 527m 규모의 고대 로마 원형 경기장으로,

부엔 타원형 그라운드가 있으며 이곳에서 검투사들은 생명을 걸고 맹수와 또는 다른 검투사와 싸웠다고 한다.

나무로 만들어진 그라운드 바닥 아래 부분엔 검투사와 맹수의 대기 장소가 있다.

 

이젠 발걸음 뗄 기운조차 없다.

숙소까진 지하철 두 정거장밖에 안 되는 거리고 볼거리가 더 남아있지만, 지하철을 타고 호텔로 들어가기로 했다.

구내도, 지하철 내부도 덥고 시끄럽다. 이탈리아어 특유의 요란한 억양과 이탈리아인의 다혈질이 잘 곁들여져

어디를 가든 정신이 없다.

 

땀 흔적을 지우고 저녁을 먹기 위해 다시 나온 로마 거리~

그 내부를 미켈란젤로가 만들었다는 1,600년 된 성당을 찾았지만 꽁꽁 잠겨있다.

성당 앞 광장엔 사람들과 비둘기들만이 가만 바닥에 기대어 더위를 보내고 있다.

 

산타마리아 마조레 성당

얼마나 많이 걸었는지 허리와 다리는 물론 발바닥까지 통증을 호소한다.

우리만큼 아니 우리보다 소란스러운 로마 시민들. 그러면서도 늘 고대와 함께 살아가는 그들.

어느 새, 콜로세움의 무장한 검투사들이 내 꿈 속을 걷고 있다.

 

 

< 2006. 6. 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