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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04~08)/오스트리아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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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사광장 크리스마스마켓 정오가 지나자, 맑은 햇살이 어두운 구름에게 자리를 내주기 시작했다. 학교 휴교일이라 신난 작은밥돌과 단둘이 길을 나서는 건 아마도 처음인 것 같다. 시청 광장에 문을 연 크리스마스 선물 시장의 기분 좋은 장바람을 맞으러 간다. 1297년 '12월의 시장'에서부터 시작된 비엔나 크리스마스 선물 시장은 18세기엔 암호프 광장으로 이어졌고 1975년부터는 시청사 광장으로 옮겨왔다고 한다. 107년 된 크리스마스 트리도 보이고 입구부터 정성껏 꾸며진 장식들이 눈에 띈다. 평일 이른 오후라 한산하다. 글뤼바인 가게 앞의 사람들. 때맞춰 잠시 뿌리던 진눈깨비처럼 글뤼바인 향은 거리에 녹아드는데~ 보고만 있어도 행복해지는 크리스마스 초콜렛과 사탕 가게. 플라스틱통에 담긴 색색 솜사탕엔 어린 시절 추억이 흘러든다. ..
그들의 귀잠터, 중앙묘지 일요일이 이렇게 좋은 줄 몰랐다, 늦잠에 폭 빠져 해맞이를 안 해도 되니. 요 며칠, 새벽과 밤을 열고 닫는 시각이 아무래도 내 몸엔 무리였나 보다. 오후에야 몸을 편다. 작년 여름, 자국을 날려보냈던 비엔나 중앙 묘지가 오늘의 산책터다. 기호 덕에, 필름 카메라로 열심히 만들었던 흔적을 보낼 수 밖에 없었던 바로 그곳. 집에서 20분, 금세 담장 길게 늘어선, 드넓은 그 앞이다. 여기도 단풍이 곱다. 작년 여름의 싱그러움 대신 원숙한 가을 아름다움이 한창이다. 중앙 묘지는 1894년, 빈 시내에 흩어져 있던 5곳의 묘지를 한데 모아 조성한 곳으로, 묘지라기보다는 평온한 공원 같다. 유명한 음악가와 저명 인사들, 그리고 오래된 빈 시민들이 귀잠에 여념 없다. 지난 번처럼, 함께 모여 잠든 음악가들을 유심..
뵈아터 호수에 빠지다 클라겐푸르트는 이탈리아와 슬로베니아의 국경과 맞닿아 있는, 오스트리아 남쪽 도시이다. 정확한 주5일 근무에, 연간 5주일의 휴가를 제대로 챙겨쓰는 이 나라 사람들과는 달리 우리 큰밥돌의 토요 휴무는 한 달에 한두 번이나 될까. 몇 주를 기다리다 드디어 떠난다, 클라겐푸르트로. 오스트리아 고속도로의 제한 속도는 130km다. 그러나 시속 140-160km로 달려대는 승용차들이 부지기수. 고속 차량 공포증이 있는 나는, 100km 이상의 속도엔 못 견뎌하는데, 햇볕에 쪼여 조는 사이에 얼른 속도 위반을 하는 큰 밥돌. 3시간 후 클라겐푸르트다. 노이에광장엔 마리아테레지아 동상과 이 도시의 트레이드마크인 비룡 분수가 있다. 쌀쌀한 기온 때문인지 분수 물줄기는 완전멈춤 상태이고 광장 노천 카페는 햇볕을 받으며 ..
비엔나의 선물 가을이 깊어가는 비가 매일 내린다. 비엔나 중심가 나들이, 우산을 받쳐들고 늘 걷던 슈테판을 벗어나 비엔나 시청 쪽으로 간다. 1883년에 완성된 그리스 신전 양식의 국회의사당 중앙 부분~ 건물 앞엔 지혜의 여신인 아테네 조각상이 있다. 건물 왼쪽 끝부터 오른쪽 끝까지 대대적인 공사 중. 시청사 광장에 이르니 비가 그친다. 1883년에 세워진 고딕 양식의 비엔나 시청사, 중앙 98m 높이의 탑 위엔 3.4m의 기사상이 서 있다. 시청사 앞엔 널따란 광장과 작고 예쁜 공원이 있다. 시청사 맞은편에 위치한 부르크극장~ 1744년 창설된 궁정 무대로, 1888년에 현 건물로 옮겼다고 한다. 베토벤 파스콸라티하우스로 오르는 길~ 베토벤이 1804년부터 1815년까지 살았던 파스콸라티하우스. 건물 4층엔 베토벤 ..
나슈마크트 2 - 재래시장 맛있는 향기의 진원지는 주차장 끝 벼룩시장 옆의 상설 재래시장~ 시장 안 군데군데 자리한 크고 작은 음식점들. 즐거운 주말을 즐기는 밝은 표정들~ 과일 가게엔 껍질까지 다 먹는 청정 과일들이 많다. 과일이나 야채, 고기 등 식료품 가격은 국민 소득에 비해 매우 저렴한 편. 알맹이 작은 씨없는 청포도 맛이 환상적이다. 과일 가공 식품을 파는 가게. 설탕을 첨가한 식품들이 많아서 벌들의 잔치가 벌어지는 곳이다. 와인과 치즈를 파는 곳. 특히 오스트리아 화이트 와인은 품질이 매우 뛰어나다. 오른쪽에 있는 것은 빵, 크기만 할 뿐 별맛은 없다. 갖가지 치즈들~ 가운데 있는 육면체 치즈는 언뜻 봐도 두부 같고 또 봐도 두부 같다. 정말 신기하다. 커피와 와인, 소스, 향신료 등이 있는 곳. 돌아서는 내 등 뒤에 ..
나슈마크트 1 - 벼룩시장 토요일마다 오페라극장 근처 나슈막 주차장에서 벼룩시장이 열린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생활할 때눈 시간 없고 피곤하다는 핑계로 바자회니 알뜰시장이니 하는 행사들을 외면해 버리기 일쑤였는데, 먼 남의 땅에 와서야 제대로 바라보게 되다니. 승용차 대신 지하철이 오늘 우리의 발이다. 지하철 출구부터 바로 장이 늘어서 있다. 의류, 신발, 가방에서 장식품, 작은 가구, 전자 제품, 골동품까지 갖가지 물건들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역시 음악의 나라. 오래된 레코드판과 낡은 바이올린이 제일 먼저 눈에 든다. 중세 귀족의 성을 장식했을 듯한 크리스탈 샹들리에와 투구도 있다. 예술혼과 장인 정신이 그대로 전해지는 그림과 수공예 자동차, 아기자기한 장식품도 있고~ 세월의 무게과 깊이가 느껴지는 커피분쇄기와 다리미. 엄청..
빈숲에서 아침마다 늘 걸쳐 있던 안개가 오늘은 살짝 자취를 감춰 버렸다. 일요일에 바깥 길을 헤매는 것도 퍽 오래간만이다. 오늘은 운터슈팅켄브룬에 살던 지난 초여름, 길을 잃고 가지 못했던 빈 숲으로 향한다. 지난 번의 실패를 거울 삼아 철저하고 완벽하게 준비를 했는데 유비무환의 보람이 제대로 있으려나. 빈숲은 빈의 북서에서 남쪽으로 펼쳐져 있는 광대한 녹지공간이다. 북부엔 하일리겐슈타트와 그린칭이 있다. 우리 목적지는 베토벤의 흔적이 살아있는 하일리겐슈타트다. 지도의 친절하고 상세한 안내대로, 하일리겐슈타트 근처 주차공간에 차를 멈췄다. 나무가 많은 평화로운 동네다. 조금 걷다보면 한적한 공원이 나타나고, 곧 트램 종점과 베토벤이 1808년에 머물렀던 자그마한 집이 눈에 띈다. 큰 길가 안쪽으로 난 길을 따라 ..
로젠부르크에서 노닐다 이맘 때의 우리나라처럼 오스트리아도 우기인가보다. 하루도 빼지 않고 계속되는 비다. 나들이에 비처럼 미운 불청객은 없다. 그래도 늦게라도 마음을 꾸려 떠나는 일요일 오후~ 지난번 기호 소풍지였던 로젠부르크로 간다. 검은 하늘과 쏟는 비 때문인지 거리에는 차도, 사람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1시간 30분이 지나면서 로젠부르크라는 이정표가 보인다. 높지 않은 산마루에 자리잡은 로젠부르크는 1290년에 건립하여 17세기까지 사용되었던 영주의 성으로, 넓은 대지와 푸르른 정원이 먼저 눈에 와 닿는다. 입장하자마자 마침 하루 두 번 진행되는 매 곡예시간이란다 몸길이가 170-180cm는 될법한 거대한 매 두 마리가 조련사의 손짓에 따라 멋진 날개짓을 한다. 이어지는 성 내부 관람. 지난 번에 보았던 크로이첸슈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