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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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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7. 22. 목 (오스트리아 가는 날) 오늘이다, 오스트리아 가는 날. 기대에 싸여 밤새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나 보다. 휴대폰에 맞춰놓은 알람소리가 들리기도 전에 눈이 떠졌으니. 5시 반, 밖은 이미 훤하다. 새벽인데도 이미 핸드폰에 들어와있는 문자가 있다. 고선생님의, 공항버스 타는 곳까지 바래다준다는 문자. 정중히 거절 문자를 보내고 어젯밤에 챙겨둔 짐을 살폈다. 여러 가지 준비물들을 확인한 다음, 자고 있는 기호를 깨우니 금세 일어난다. 며칠동안 떨어져있던 아빠를 만나러, 비행기를 탄다는 사실이 기호에게도 약간의 흥분으로 작용했나 보다. 7시 40분, 식사를 하고 문단속을 한 후 집을 나섰다. 공항 버스를 타러 길동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공항으로 오시겠다는 엄마의 전화를 받았다. 길동에서 1시간 40분이나 버스를 타고서야 드디어 전에..
쉔브룬 가는 길 다시 차에 올랐다. 약간 흐려가던 날이 반짝이려고 한다. 또 비엔나 시내 지도를 펼쳐야 한다. 물론 직접 운전을 하는 건 아니지만, 공간지각력과 운동 신경이 둔한 내게 지도 보기는 참 재미없는 일이다. 신나게도 오늘은, 한 치의 오류 없이 지도에 그려진 길 그대로 쉔브룬까지 달렸다. 쉔브룬은 프랑스 왕비 마리앙트와네트 어머니인 마리아테레지아의 궁전으로, 합스부르크 왕가의 여름 궁전이다. 1713년에 건축되었고, 현재와 같은 화려한 모습을 지니게 된 것은 18세기 마리아테레지아 시대라고 한다. 1441실 중 45실만 공개되고 있는데, 베르사유보다는 작지만 그 화려함과 아름다움은 베르사유 못지 않다. 정원 끝 언덕 위에는 전승기념비인 글로리에테가 있다. 그런데, 오늘 오후 행선지는 쉔브룬 궁전이 아니다. 지..
비엔나 중심 링에서 한 달만의 비엔나 나들이인가 보다. 일요일, 청명한 날이다. 비엔나 중심가인 링 도로가 오늘의 1차 행선지. 늘 그랬듯 주차는 왕궁 주차장이다. 링 도로는 비엔나 구시가를 둘러싸고 있는 환상형 도로로, 1857년에 시 중심부를 둘러싸고 있던 성벽을 허물고 만든 것이다. 왕궁, 슈테판성당, 오페라극장 등의 명소가 링 안에 자리잡고 있다. 호프부르크(왕궁)는 13세기부터 650년 동안 합스부르크 왕가의 궁전으로 사용되었고, 지금은 대통령 집무실과 국제회의실, 국립박물관 등으로 쓰이고 있다. 슈테판 성당은 12세기 중반에 건축되기 시작하여 14세기에 완성된 오스트리아 최대의 고딕 양식 성당이다. 성당 앞과 내부는 많은 관광객들로 디딜 틈 없이 붐빈다. 지난 달에도 있던, 잘 생기고 멀쩡한 거지가 성당 입구에 ..
운터슈팅켄브룬 스케치 3 지난 겨울, 처음 마을 이름을 들었을 때 뭐...하고 되물었던 기억이 난다. 독일어 알파벳도 읽을 줄 몰랐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운터는 아래, 슈팅켄은 냄새나는, 브룬은 샘. 자세한 설명을 듣고서야 겨우 지명을 머리에 남겼다. 작은 시골, 100년 된 낡은 집도 있고, 지은 지 오래지 않은 산뜻한 집도 많다. 놀랄 만한 것은 마을 인구의 상당 수가 노년층인데도 집 가꾸기에 열성이라는 것이다. 봄이면 페인트 칠을 하고, 정원 잔디도 깎아주며 꽃과 나무, 채소도 심는다. 토양이 좋아서인지 식물과 작물들은 무럭무럭 자란다. 시골 마을이라 울타리는 찾아보기 어렵다. 물론 비엔나 부자 동네에 가봐도 높은 담장은 구경하기 힘들다. 집 빛깔들이 참 어여쁘다. 우리 아들의 제일 친한 친구인 벤하트의 집이다. 시골이라..
운터슈팅켄브룬 스케치 2 요즘 이곳 날씨는 꼭 늦가을 같다. 햇살 좋은 날이 별로 없고 바람 불고 흐리고, 거기다 춥기까지 하다. 아침엔 5도까지 내려앉고 낮기온은 15도안팎. 오늘도 서늘한 날이다. 어제 소풍을 다녀온 기호가 오늘은 학교엘 안 간단다. 소풍 다음날이라서 쉬나, 아이들 천국이다. 휴교일이 넘치게 많다. 기호와 함께 마을을 한 바퀴 돌았다. 지나던 차에 탄 사람이 손을 흔든다. 아직 낯설다. 모르는 사람의 손짓도, 동양인이라서 받는 시선도. 마을 한가운데 있는 작은 분수대이다. 찬 날씨인데도 분수는 제 역할에 열심이다. 분수대 뒤편으론 공중전화 부스와 벤치, 그리고 누군가의 묘비가 있다. 우리 집 뒤쪽에 있는 유치원. 정오가 되면 엄마들이 차를 세우고 아이를 데려간다. 간혹 걸어다니는 사람도 있지만 이 나라 사람들..
어떤 흐린 날 지난 주말부터 궂은 날씨의 연속이다. 날씨에 민감한 편은 아니지만, 1주일이나 계속된 이국의 나쁜 일기가 아무렇지 않을 만큼 둥근 심성은 아닌가 보다. 이런저런 이유로 내 정신의 일기도 좋은 편이 아니다. 아침에 남편과 별것 아닌 신경전도 있었고, 요사이엔 뜸하던 개미와의 타이틀전-한 200마리 쯤-도 모질게 치렀다. 그것도 기호 등교 전에. 그러고 나니 공연히 우울한 마음이 들었다. 오늘따라 집에서 잘 쉬어주고 있는 승용차를 몰아 Laa로 갔다. 정말 뛰어봤자 벼룩이다. 이 나라 지리를 모르니 갈 데가 거기밖에 없다. 먼저 책과 음반, 문구를 파는 상점에 가서 본드와 그간 찍은 사진을 정리해 넣을 봉투를 샀다. 기호가 좋아하는 DVD를 하나 사려니 마땅한 게 눈에 띄지 않는다. 계산하면서 점원이 묻는다..
여름 단장 모처럼 집을 지키는 토요일 저녁이다. 남편은 한국에서 온 손님들을 대접하느라 앞집 아저씨와 함께 가출한 지 오래. 오늘은 아침부터 작심하고 안방 침대 위의 이불을 걷어냈다. 어제 Laa에서 새로 산 이불 커버로 바꾸기 위해서다. 이 나라에서 판매되는 이불 커버나 이불 속통(이불 솜)은 거의가 1인용이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더블사이즈의 커버와 솜은 흔하지 않다. 새로 산 커버도 1인용 커버 두 개. 짙은 남색 커버와 오리털 속통을 들어내고 가벼운 커버와 속통을 덮어놓으니 꽤 여름 느낌이 난다. 오후부터 내리던 비가 아직도 떨어진다. 낮엔 1-2시간이면 제 역할을 다하던 비가 오늘은 지치도록 계속된다. 잠시 잊었던 우리나라 정서를 돋워내기 위한 것인지. 지금 쏟는 비는 꼭 우리나라 여름 장마 같..
창가의 꽃 5월 마지막 날. 지난 주 폭염이 미안했던지 오늘 오스트리아 날씨는 완전 정상이다. 지금은 다 회사와 학교에서 각자 임무에 충실한 평일 오전, 나 혼자 평화로운 때다. 방금 찍은 마당 사진엔 바람이 잔뜩 묻어있다. 하늘엔 구름이 가득한 채, 정원 나무 사이로 보이는 좁은 도로가 희미하다. 어제 일이다. 저녁 식사 후 두 남자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 시각에 어디 갈 데도 없는데. 한참 뒤 돌아온 남자들 손엔 마을 거리에 핀 꽃이 들려 있었다. "엄마를 위해 준비했어요"라는 기호. 유리컵에 꽂아 부엌 창가에 놓으니 쓸만한 분위기이다. 그런 뒤, 남편은 클림트 그림을 넣어둔 액자를, 오늘은 결단코 걸어야겠다고 생각했는지 기호에게 망치를 구해오라는 특명을 준다. 재주 좋게 망치를 챙겨온 기호. 그림이 드디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