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체 글

(725)
2004. 7. 23. 금 (핀카펠트에서) 어제의 긴 항공기 탑승이 무척이나 피곤했나 보다. 아침식사는 신선하고 맛있는 빵으로 들고, 점심엔 비빔국수를 먹었다. 그리곤 낮잠에 바로 빠져버렸으니. 내리 3시간이나 침대 위에 누워있었단다. 시차 적응이 안 되는 것이다. 아침식사 후, 남편이 담배를 사러 간다기에 시내 중심가 쪽으로 따라 나섰다. 시내 중심이라 해도 작은 도시라서 몇 개의 사거리를 낀 2차선 도로와 주변 건물들이 전부다. 도로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려고 멈춰서서 기다리고 있으니 달려오던 차가 횡단보도 앞에 정차한다. 이곳 도로는 무조건 사람이 먼저란다. 참 낯설다. 담배도 우리나라처럼 편의점이나 마트 등에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고, Tabak과 주유소샵 등에서만 판매한다. 정신을 챙겨서 거리 풍경들은 접하고 나니 비로소 유럽에 온 실감이..
2004. 7. 22. 목 (오스트리아 가는 날) 오늘이다, 오스트리아 가는 날. 기대에 싸여 밤새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나 보다. 휴대폰에 맞춰놓은 알람소리가 들리기도 전에 눈이 떠졌으니. 5시 반, 밖은 이미 훤하다. 새벽인데도 이미 핸드폰에 들어와있는 문자가 있다. 고선생님의, 공항버스 타는 곳까지 바래다준다는 문자. 정중히 거절 문자를 보내고 어젯밤에 챙겨둔 짐을 살폈다. 여러 가지 준비물들을 확인한 다음, 자고 있는 기호를 깨우니 금세 일어난다. 며칠동안 떨어져있던 아빠를 만나러, 비행기를 탄다는 사실이 기호에게도 약간의 흥분으로 작용했나 보다. 7시 40분, 식사를 하고 문단속을 한 후 집을 나섰다. 공항 버스를 타러 길동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공항으로 오시겠다는 엄마의 전화를 받았다. 길동에서 1시간 40분이나 버스를 타고서야 드디어 전에..
쉔브룬 가는 길 다시 차에 올랐다. 약간 흐려가던 날이 반짝이려고 한다. 또 비엔나 시내 지도를 펼쳐야 한다. 물론 직접 운전을 하는 건 아니지만, 공간지각력과 운동 신경이 둔한 내게 지도 보기는 참 재미없는 일이다. 신나게도 오늘은, 한 치의 오류 없이 지도에 그려진 길 그대로 쉔브룬까지 달렸다. 쉔브룬은 프랑스 왕비 마리앙트와네트 어머니인 마리아테레지아의 궁전으로, 합스부르크 왕가의 여름 궁전이다. 1713년에 건축되었고, 현재와 같은 화려한 모습을 지니게 된 것은 18세기 마리아테레지아 시대라고 한다. 1441실 중 45실만 공개되고 있는데, 베르사유보다는 작지만 그 화려함과 아름다움은 베르사유 못지 않다. 정원 끝 언덕 위에는 전승기념비인 글로리에테가 있다. 그런데, 오늘 오후 행선지는 쉔브룬 궁전이 아니다. 지..
비엔나 중심 링에서 한 달만의 비엔나 나들이인가 보다. 일요일, 청명한 날이다. 비엔나 중심가인 링 도로가 오늘의 1차 행선지. 늘 그랬듯 주차는 왕궁 주차장이다. 링 도로는 비엔나 구시가를 둘러싸고 있는 환상형 도로로, 1857년에 시 중심부를 둘러싸고 있던 성벽을 허물고 만든 것이다. 왕궁, 슈테판성당, 오페라극장 등의 명소가 링 안에 자리잡고 있다. 호프부르크(왕궁)는 13세기부터 650년 동안 합스부르크 왕가의 궁전으로 사용되었고, 지금은 대통령 집무실과 국제회의실, 국립박물관 등으로 쓰이고 있다. 슈테판 성당은 12세기 중반에 건축되기 시작하여 14세기에 완성된 오스트리아 최대의 고딕 양식 성당이다. 성당 앞과 내부는 많은 관광객들로 디딜 틈 없이 붐빈다. 지난 달에도 있던, 잘 생기고 멀쩡한 거지가 성당 입구에 ..
운터슈팅켄브룬 스케치 3 지난 겨울, 처음 마을 이름을 들었을 때 뭐...하고 되물었던 기억이 난다. 독일어 알파벳도 읽을 줄 몰랐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운터는 아래, 슈팅켄은 냄새나는, 브룬은 샘. 자세한 설명을 듣고서야 겨우 지명을 머리에 남겼다. 작은 시골, 100년 된 낡은 집도 있고, 지은 지 오래지 않은 산뜻한 집도 많다. 놀랄 만한 것은 마을 인구의 상당 수가 노년층인데도 집 가꾸기에 열성이라는 것이다. 봄이면 페인트 칠을 하고, 정원 잔디도 깎아주며 꽃과 나무, 채소도 심는다. 토양이 좋아서인지 식물과 작물들은 무럭무럭 자란다. 시골 마을이라 울타리는 찾아보기 어렵다. 물론 비엔나 부자 동네에 가봐도 높은 담장은 구경하기 힘들다. 집 빛깔들이 참 어여쁘다. 우리 아들의 제일 친한 친구인 벤하트의 집이다. 시골이라..
운터슈팅켄브룬 스케치 2 요즘 이곳 날씨는 꼭 늦가을 같다. 햇살 좋은 날이 별로 없고 바람 불고 흐리고, 거기다 춥기까지 하다. 아침엔 5도까지 내려앉고 낮기온은 15도안팎. 오늘도 서늘한 날이다. 어제 소풍을 다녀온 기호가 오늘은 학교엘 안 간단다. 소풍 다음날이라서 쉬나, 아이들 천국이다. 휴교일이 넘치게 많다. 기호와 함께 마을을 한 바퀴 돌았다. 지나던 차에 탄 사람이 손을 흔든다. 아직 낯설다. 모르는 사람의 손짓도, 동양인이라서 받는 시선도. 마을 한가운데 있는 작은 분수대이다. 찬 날씨인데도 분수는 제 역할에 열심이다. 분수대 뒤편으론 공중전화 부스와 벤치, 그리고 누군가의 묘비가 있다. 우리 집 뒤쪽에 있는 유치원. 정오가 되면 엄마들이 차를 세우고 아이를 데려간다. 간혹 걸어다니는 사람도 있지만 이 나라 사람들..
어떤 흐린 날 지난 주말부터 궂은 날씨의 연속이다. 날씨에 민감한 편은 아니지만, 1주일이나 계속된 이국의 나쁜 일기가 아무렇지 않을 만큼 둥근 심성은 아닌가 보다. 이런저런 이유로 내 정신의 일기도 좋은 편이 아니다. 아침에 남편과 별것 아닌 신경전도 있었고, 요사이엔 뜸하던 개미와의 타이틀전-한 200마리 쯤-도 모질게 치렀다. 그것도 기호 등교 전에. 그러고 나니 공연히 우울한 마음이 들었다. 오늘따라 집에서 잘 쉬어주고 있는 승용차를 몰아 Laa로 갔다. 정말 뛰어봤자 벼룩이다. 이 나라 지리를 모르니 갈 데가 거기밖에 없다. 먼저 책과 음반, 문구를 파는 상점에 가서 본드와 그간 찍은 사진을 정리해 넣을 봉투를 샀다. 기호가 좋아하는 DVD를 하나 사려니 마땅한 게 눈에 띄지 않는다. 계산하면서 점원이 묻는다..
여름 단장 모처럼 집을 지키는 토요일 저녁이다. 남편은 한국에서 온 손님들을 대접하느라 앞집 아저씨와 함께 가출한 지 오래. 오늘은 아침부터 작심하고 안방 침대 위의 이불을 걷어냈다. 어제 Laa에서 새로 산 이불 커버로 바꾸기 위해서다. 이 나라에서 판매되는 이불 커버나 이불 속통(이불 솜)은 거의가 1인용이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더블사이즈의 커버와 솜은 흔하지 않다. 새로 산 커버도 1인용 커버 두 개. 짙은 남색 커버와 오리털 속통을 들어내고 가벼운 커버와 속통을 덮어놓으니 꽤 여름 느낌이 난다. 오후부터 내리던 비가 아직도 떨어진다. 낮엔 1-2시간이면 제 역할을 다하던 비가 오늘은 지치도록 계속된다. 잠시 잊었던 우리나라 정서를 돋워내기 위한 것인지. 지금 쏟는 비는 꼭 우리나라 여름 장마 같..
창가의 꽃 5월 마지막 날. 지난 주 폭염이 미안했던지 오늘 오스트리아 날씨는 완전 정상이다. 지금은 다 회사와 학교에서 각자 임무에 충실한 평일 오전, 나 혼자 평화로운 때다. 방금 찍은 마당 사진엔 바람이 잔뜩 묻어있다. 하늘엔 구름이 가득한 채, 정원 나무 사이로 보이는 좁은 도로가 희미하다. 어제 일이다. 저녁 식사 후 두 남자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 시각에 어디 갈 데도 없는데. 한참 뒤 돌아온 남자들 손엔 마을 거리에 핀 꽃이 들려 있었다. "엄마를 위해 준비했어요"라는 기호. 유리컵에 꽂아 부엌 창가에 놓으니 쓸만한 분위기이다. 그런 뒤, 남편은 클림트 그림을 넣어둔 액자를, 오늘은 결단코 걸어야겠다고 생각했는지 기호에게 망치를 구해오라는 특명을 준다. 재주 좋게 망치를 챙겨온 기호. 그림이 드디어 ..
잘츠의 짧은 여정 5월 마지막 주는 잘츠로 간다. 토요일 아침 9시반, 점심 도시락과 아이스커피 그리고 몇 가지 물건만 챙겨 차에 올랐다. 2-3일 전부터 갑작스레 더워진 날씨에 아침 기온이 심상치 않다. 잘츠부르크와 잘츠카머구트는 비엔나에서 승용차로 3시간 거리. 작년 여름, 잘츠카머구트를 보며 설레고 놀랐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끝이 보이지 않던 아터제, 동화 같던 몬트제, 아름다운 볼프강제, 눈부신 고사우제, 그리고 가슴 뛰는 할슈타트. 고속도로를 나와 이정표를 보니, 볼프강제가 가장 가깝다. 우선 마을에 숙소를 잡았다. 별 4개짜리 호텔에 들어갔다가 Zimmer로 발길을 돌렸다. Zimmer가 깔끔하고 더구나 주인 아저씨가 영어를 할 줄 아니 금상첨화~ 상트볼프강 마을의 아주 오래된 성당을 둘러보았다. 부조된 ..
벨베데레 정원에서 벨베데레 궁전으로 발걸음을 놓은 것은 5월 초의 휴일이었다. 늘 그랬듯이 독일어로 쓰인 비엔나 시내 지도를 눈 아프게 훑으면서. 비엔나 남역에 주차를 하고, 5분 거리에 자리한 벨베데레 궁전으로 갔다. 바로크 양식의 벨베데레 궁전은 18세기 초에 지어졌는데, 벨베데레라는 말은 '아름다운 전망'을 뜻하며 지금은 오스트리아 갤러리로 사용되고 있다. 궁전 입구에 들어서니 예쁜 정원이 눈에 띤다. 정원을 사이에 두고 상궁은 19-20세기 회화관, 하궁은 바로크 미술관이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 5월 중순의 행사 관계로 그즈음 며칠간 휴관이었던 것. 기념품점과 그 옆의 고딕 미술관만이 오픈되어 있었다. 관람은 다음으로 미루고, 구스타프 클림트(1862-1918)의 그림세트만을 지니고 돌아오는 수밖에. 정원을..
크렘스에서 멜크까지 일요일. 5월 하늘이 우리나라 가을처럼 시리게 맑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들판마다 끝없는 포도밭이고, 아이스커피를 마시며 바라보는 자연은 풍경화가가 그린 평화로운 그림이다. 예상보다 빨리 도착한, 중세 분위기의 크렘스 거리를 지나고 나니, 곧 도나우강이고, 강을 끼고는 긴긴 도로가 펼쳐지는데, 강변 경관으로 유명한 바카우다. 계속되는 강변 드라이브~ 출렁이는 도나우강엔 사람 가득 실은 유람선이 흐르고, 강변에는 레스토랑들이 줄지어있다. 석회 때문에 물빛이 뿌옇다. 바카우는 돌아가는 길에 다시 보기로 하고 멜크로 차를 달렸다. 금세 도착한 멜크 수도원의 주차장엔 버스와 승용차가 가득하다. 멜크는 비엔나에서 약 80km 떨어져 있고, 바벤베르크 왕조(1076-1106)의 수도였던 곳이다. 이곳에 있는 멜크수..
운터슈팅켄브룬 스케치 오스트리아 빈의 북쪽에 위치한 운터슈팅켄브룬에서 생활한지 2개월이 넘었다. 3월 날씨는 겨울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어 메마른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정말 봄이다. 하늘도, 들판도 온통 푸르름이다. 우리 마을 인구는 700여명. 전형적인 농촌이다. 게마인데(지방자치사무소) 직원도 시장 포함하여 달랑 셋. 아이들은 게마인데 앞 정류장에서 통학버스를 타고 옆마을 학교로 등교하는데, 게마인데에서 사탕 받는 재미가 괜찮은가 보다. 기호도 기를 쓰고 아침 일찍 정류장으로 간다. 그리고 게마인데 옆엔 멋진 중년신사 혼자 지키는 은행이 있다. 우리 집 바로 옆은 성당이다. 오스트리아 사람들의 85%이상이 카톨릭 신자이고 카톨릭 관련 행사일은 다 공휴일이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울려대는 종소리가 처음엔 귀에 거슬렸지만 이젠..
영원 영원 한때는 매일 뜨는 해가 있었고 푸른 한 나무가 있었다 어느땐가는 봄마다 피는 그 꽃도 보았다 하루하루의 해가 해마다의 푸른 한 나무 잎과 그 봄꽃이 모두 같은 해이고 같은 잎이고 같은 꽃이라 알았다 그러나 오늘 오르는 해는 어제와 다르고 지금 돋는 그 나무의 잎은 지난해의 잎이 아니다 사랑은 있지만 난 온전히 그에게 가지 못한다 사랑은 있지만 그의 사랑이 흐르는 곳은 더이상 내가 아니다 사랑은 있다 어느 사랑도 끝은 있다 그렇게 영원은 없다
이별할 때 버려야 할 10가지 사랑했던 기억 다시 올 거라는 기대 내가 아니면 안될 거라는 자만 친구로라도 함께 하고픈 욕심 날 오래 기억해주길 바라는 이기심 다른 사람 만나지 않길 바라는 희망 함께하며 해주지 못한 것들에 대한 후회 우연을 바라는 집착 널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 인연 그리고, 내 마음
독풀 독풀 머리가, 마음이 꺼진다 그가 내 속에 들어온 때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지만 누구도 그를 알아내지 못한다 색에 취하고 향기에 빠져 나는 자꾸만 혼미해지고 그러다 그를 깨달은 순간 나에게 감도는 그의 비소 무지한 나를, 오만한 나를
먼 바람 먼 바람 먼 길 내 시선 나무와 흙을 흔드는 내 세월보다 더 오랜 차 먼 바람 처음을 모르는 끝도 흩어진 내 마음보다 더 깊은 기억
할슈타트의 추억 작년 여름.1 0년 만의 무더위로 온 나라가 폭염에 싸여 있을 때, 운좋게도 우리 가족은 이곳에 있었다. 남편은 일 때문에 7월 초순부터, 기호와 난 7월말부터 8월 중순까지 오스트리아에 머물렀다. 그때는 지금 살고 있는 운터슈팅켄브룬이 아닌, 비엔나 남쪽에 위치한 작고 예쁜 도시에서 지냈다. 3주일을 오스트리아에 머물며 5일간은 잘츠부르크와 잘츠카머구트를, 또다른 5일간은 잘츠와 루체른, 베니스를 여행했다. 스위스 루체른도, 이탈리아 베니스도 빼놓을 수 없는 기억이지만, 잘츠카머구트의 정경은 정말 대단했다. 잘츠카머구트는 2000m의 높은 산들 사이로 수십 개의 호수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자연을 보여주는데, 몬트제와 볼프강제를 비롯해서 특히 고사우제는 표현할 수 없는 비경에 눈이 시렸다. 그리고 잊을 수..
시간에 묻히다 잘한 일 꿈 지니기 사랑하기 마음 다독이기 어린 시절 남기기 좋은 사람과 어울리기 아이 키우기 직업 가지고 일하기 모르는 건 약 잘못한 일 사랑하기 결혼하기 가슴 아파하기 마음에 독 품기 종교 없이 살기 아는 건 병 알 수 없는 일 모반 신뢰 시간에 묻혀 잊으려 애쓰기
빈 자연사 박물관에 가다 4월 마지막 날이다. 토요일, 날씨까지 기막히게 맑다. 오늘 일정의 후보지는 자연사 박물관과 미술사 박물관, 벨베데레 미술관. 그 중, 동물을 좋아하는 기호 의견에 따라 오늘 행선지는 자연사 박물관이다. 자연사 박물관은 많은 볼거리들이 모여있는 비엔나 중심가인 링도로 안에 위치해 있다. 먼저 왕궁 옆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마리아 테레지아 광장으로 걸어갔다. 광장 중심엔 마리아테레지아 동상이 있고, 자연사박물관과 미술사박물관은 마주보며 자리하고 있다. 안내 표지를 확인한 뒤 자연사 박물관으로 들어갔다. 입구에 티켓 구매 창구가 있는데, 유리 안쪽에 붙어있는 브로슈어에 한글로 '자연사박물관'이라 쓰여있다. 2층엔 공룡 및 맘모스, 시조새 등의 중생대 화석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공룡 화석의 거대함은 엄청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