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치아 여행 내내 날이 참 좋고, 오늘은 자몽과 오렌지가 있어 상큼하기까지 한 아침이다.
그제 오픈시각을 비껴 다다르는 바람에 내부를 외면했던 산타마리아델라살루테 성당이 첫 행선지다.
1번 바포레토 타고 살루테 선착장 도착.
'아카데미아 다리 위에서 보는 살루테 성당'은 베네치아를 소개하는 사진이나 영상에 단골로 등장하는 광경인데,
그 정경은 그제 보았으니 오늘은 페스트를 구원한 살루테만 보는 걸로.
은은하고 푸른 팔각형 돔 아래 숨겨진 살루테 성당은 늘 장엄하면서도 온화하다.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새기며 예수의 제자상을 마주했고 티치아노와 틴토레토의 제단화를 만났다.
선택의 기로였던, 1번 바포레토의 종착지인 리도섬엘 다함께 가기로 했다.
베니스 영화제가 개최되는 곳이고 또 베네치아 섬들 중 유일하게 자동차가 다니는 곳.
리도 선착장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우린 한참동안 담소를 내놓았다.
구글맵은 섬세하지 못해서 Beach를 헷갈려 했다.
그리하여 Beach를 가기 위해 우린 지나는 리도 주민에게 두세 번 길을 물어야 했다.
리도에 왔으니 모래사장 정도는 걸어줘야 하지 않겠어.
오래지 않아 길고긴 모래 언덕이 등장하고 언덕 너머엔 흔한 리도 바다가 기다리고 있다.
구름이 하늘에 흰 붓질을 해대니 우리도 바닷가를 뛰어볼까나 날아볼까나.
리도의 많은 가게들은 장기휴가 중이다. 문 닫은 샵이 더 많을 정도.
조용한 리도 대신 다시 산마르코로 와서 점심 식사할 식당을 물색해야 했다.
대운하에서 보이는, 정박된 곤돌라와 예쁜 조화를 만드는 산마르코 초입의 정취가 참 멋스럽다.
눈에 띄는 식당의 구글 평점을 검색-늘 함. 꼭 필요함-하고는 바로 내부에 앉아 파스타를 주문했다.
그런데, 음식이 나오자 자신이 주문한 파스타는 절대로 그게 아니라고 세차게 반기를 드는 그 누구.
착각할 수도 있고 오류도 흔한 게 사람이거늘, 말한 사람은 절대 없고 들은 사람은 다수인 상황.
그게 뭐 대수라고 인간이 뭐 그리 완전하다고, 자찬하면서 정 떨어지게 스스로 절대 완벽을 강조하는지.
강함은 강인함의 유의가 아니고 유연의 반의다. 그러니 자연 부러지거나 튀길 수밖에.
오후 몇 시간은 개인의 시간이다. 6명이 함께 다니던 패턴에서 벗어나 혼자 또는 2~3명이 움직이기로 했다.
난 수선배, 영후배와 같이 '아쿠아 알타' 서점으로 향했다.
'아쿠아'는 물, '아쿠아 알타'는 홍수라는 뜻이다.
지구 온난화와 조수간만의 차 등의 원인으로 베네치아는 자주 물에 잠긴다.
특히 지대 낮은 산마르코 광장과 그 주변은 더 많이 물에 잠기는데, '아쿠아 알타' 서점은 홍수로 물에 잠긴 책들을 모아 단을 쌓아서
관광 상품으로 만들었다. 세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곳.
산마르코 광장 주변 골목을 쏘다니다가 리알토 다리에 올라 겨울 일몰을 바라본다.
대운하의 일몰은 처음. 베네치아에서 마지막 하루를 보내며 무언가 경건해져야 할 것만 같다.
동네 마트 Coop에서 만나기로 한 약속 시간을 우린 모두 잘 지켜냈다.
숙소를 제집 삼아 쇠고기로 스테이크를 만들고 맥주로 추억을 만들었다. 내일은 피렌체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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