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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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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4 : 로마의 초상 아침부터 비가 부슬거린다. 오늘따라 식당 모닝커피는 왜 이리 맛이 없는지. 짐 정리를 대략 마치고 8시 10분, 마지막 로마 순례를 나선다. 테르미니 역 근처의 산타마리아 델라안젤라 성당은 미사 중이다. 신자는 몇 없어도, 미사는 오래 계속되고 있다. 잠시 그 자리에 앉아 미사에 참석하는 밥돌들. 2년 반 전 여름, 로마에 처음 왔을 때 처음으로 들어간 성당이 이곳이었는데, 이번엔 로마를 떠나며 마지막으로 둘러본 성당이 되었다. 산타마리아 델라안젤라 성당 앞, 비 내리는 공화국 광장엔 분수도 함께 내리고 있다. 성당 옆 로마 박물관에도 빗방울이 쏟아지고 있다. 크리스마스가 지난 테르미니 역엔 대형트리가 아직도 자리하고 있었다. 나무엔 새해 소망들이 가득 걸려있는데,..
이탈리아 3 :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 간밤에 3차례나 잠에서 깼었나 보다. 숙면을 취하지 못해선지 몸이 썩 가볍진 않다. 오늘은 작은밥돌의 생일. 생일이 늘 크리스마스 연휴 즈음이다 보니 오스트리아에 살면서부터는 여행지에서 생일을 맞는 경우가 많다. 생일 축하해, 아들~ 객실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이 맑고 푸르다. 8시 50분, 어제 캄피돌리오 광장 앞에서 숙소로 돌아올 때 탔던 그 64번 버스에 오른다. 오늘의 행선지는 64번 버스의 종점인 바티칸이다. 12월 25일과 26일 이틀동안 휴관이었던 바티칸 박물관은 사실 이번 로마 여행의 가장 큰 목적이기도 했다. 재작년 여름 로마 여행시에 이탈리아 국경일도 아니면서 로마만의 휴일에 딱 걸려 관람하지 못한 바티칸 박물관이 내내 아쉬웠었다. 바티칸 앞인 듯한..
이탈리아 2 : 신화가 숨쉬는 거리 어제 로마행 비행기에서도 정신없이 꿈속을 헤맸는데, 오늘 새벽에도 꿈은 나를 놓아주지 않는다. 눈 뜨자마자 창문을 열어보니 비가 내리고 있다. 7시반, 호텔 규모에 비해 작은 식당엔 이른 시각인데도 사람들이 바글거린다. 그다지 손 가는 메뉴가 없는 평범한 아침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향한다. 먼저, 잊고 온 이탈리아용 플러그 구입을 위해 테르미니 역 상가의 슈퍼마켓에 들었다. 이탈리아 플러그는 핀이 3구이고 굵기가 우리나라 것보다 가늘기 때문에 우리나라 전자제품은 이탈리아의 콘센트에 바로 연결할 수 없다. 물론 오스트리아 전자 제품의 플러그는 핀이 2구이긴 하지만 이탈리아 것과 같은 굵기이기 때문에 사용 가능하다. 어쨌든 우리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디카가 우리나라 출신..
이탈리아 1 : 로마의 겨울 흐리고 쌀쌀한 아침, 비엔나의 전형적인 겨울 날씨다. 아침 거리엔 차량이 드물었지만 공항은 크리스마스 연휴를 맞아 길 떠나는 유랑객이 꽤 많다. 메인 터미널의 맞은편에 위치한 별도 터미널은 온통 에어베를린 데스크 뿐이다. 금세 체크인을 하고 슈트뢱-오스트리아 체인점 빵집-에서 산 빵을 셋이 사이좋게 뜯어먹으며 게이트 앞을 지킨다. 에어베를린과 공동운항하는 오스트리아 저가항공사인 니키 항공이 오늘 우리를 로마까지 실어나를 예정이다. 로마. 재작년 여름, 미칠 듯한 더위와 대안 없는 무질서를 보여주었던 곳. 그때와는 정반대 계절에 그곳을 다시 찾는다. 무질서의 극치였던 그곳을, 유럽을 떠나기 전 마지막 여행지로 한 치 망설임 없이 낙점 짓게 만든 로마의 힘은 무엇일까...
서울을 향하여 오스트리아에 머물렀던 3년 10개월, 짧지만은 않은 시간이 훌쩍 지났습니다. 적응하기 힘들었던 첫 해, 어디에도 마음 붙이기 힘겨웠고 특히 4시면 찾아오는 겨울 어둠엔 속수무책이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세상의 즐거움을 깨닫기까진 그다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진 않았습니다. 오스트리아를 쏘다니고 옆 나라들을 뛰어다니며 새로운 세상을 맞잡기 시작했습니다. 가끔은 이 나라 사람들의 텃새를 겪기도 했고 또 이곳 한국인들의 이중성과 오만함에 답답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유럽이라는 세상과 오스트리아라는 나라가 준 크나큰 선물은 이 모두를 덮을 수 있었습니다. 여름날의 푸르른 하늘, 쉔브룬 글로리에테에서 마신 아인슈페너, 필름페스티벌에서 지은 친구와의 추억, 볼프강 호수를 바라보던 눈부신 표정들. 수많은 기억들과 추..
프랑스 4 : 언제나 그 자리에 니스를 떠나는 오늘, 아침 바다를 맞으러 짧은 길을 나선다. '정원'이라 이름 붙여진 예쁜 레스토랑을 지나면 바다보다 바람을 먼저 만난다. 니스에 머무는 동안 마주할 때마다 한결같이 에머랄드빛을 선사하는 니스 바다. 니스의 파도와 모래와 자갈,그리고 아침 추억 한 줌을 깊은 숨 들이쉬며 마음에 밀어넣는다. 해변의 '영국인의 산책로'를 뛰는 사람들이 유난히 많은 아침, 그들의 환한 눈빛이 흐린 하늘을 밝혀준다. 조금씩 제 빛을 찾아가는 하늘, 그 니스 하늘 아래사랑과 행복이 여물어간다. 예쁜 카페에선 향긋한 모닝커피 내음을 뿌리고 제과점의 아리따운 케이크는 대기를 달콤하게 채운다. 캐리어를 끌고 도로 양편을 오락가락하다 다다른 니스 공항, 여기도 바다 내음이 가득하다. 이륙한 비행기의 날개 아래엔 아쉬움의..
프랑스 3 : 모나코, 너의 하늘과 바다 니스 여행 기간 중 처음 만나는 맑고 푸른 아침이 상쾌하다.니스 버스터미널에서 그저 물끄러미 바라만보다, 모나코행 버스를 눈 앞에서 놓쳐버리고, 9시반에야 모나코 가는 버스에 올랐다. 모나코 가는 길이 해안도로라 기대를 했지만, 생각보다 승객이 많아 바다가 잘 보이는 오른편 자리는 우리 차지가 되지 않았다. 10시 조금 넘어서 멈춘 길가 정류장이 모나코인가보다. 내려야 할 곳을 정확히 몰라 주위를 살피고 있는데, 모나코로 가는듯한 중국 여자들이 우르르 하차한다. 얼른 주변 사람에게 물어 모나코임을 확인한 후, 우리도 따라내렸다. 바닷가 근처, 공중전화 위의 건장한 두 남자가 무표정한 얼굴로 우리를 맞이한다. 프랑스의 휴양도시 같은 작은 나라 모나코는 병역과 세금이 없으며 프랑스어를 사용한다고 한다. 작은..
프랑스 2 : 비와 그라스 새벽부터 휘몰아치는 비바람이 심상치 않다. 하늘을 보며 하루 날씨를 점쳐보았지만, 도대체 답이 없는 날씨다. 오늘 일정의 중심인 그라스(Grasse)에 가기 위해선 우선 버스터미널까지 버스로 움직여야 한다. 터미널의 인포에서 그라스 행 버스 시각표를 받아든 후, 살펴본 터미널은 왠지 어수선한 분위기다. 9시 50분에 출발한 버스는 온갖 정류장에 다 멈추다보니 니스에서 40km밖에 안 되는 그라스까지 가는데 1시간반이나 걸렸다. 그렇게 도착한 그라스 거리는 이미 폭 젖어있었지만, 다행히 비는 거의 내리지 않고 있었다. 향수의 원조가 된 그라스는 예부터 마을 주위 산기슭에서 야생화를 경작하고 채취하여 향수를 추출하였고, 중세부터 자연 향수를 제조하였다고 한다. 그라스는 원래 질 좋은 가죽 가공지로, 조향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