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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04~08)/서유럽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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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4 : 언제나 그 자리에 니스를 떠나는 오늘, 아침 바다를 맞으러 짧은 길을 나선다. '정원'이라 이름 붙여진 예쁜 레스토랑을 지나면 바다보다 바람을 먼저 만난다. 니스에 머무는 동안 마주할 때마다 한결같이 에머랄드빛을 선사하는 니스 바다. 니스의 파도와 모래와 자갈,그리고 아침 추억 한 줌을 깊은 숨 들이쉬며 마음에 밀어넣는다. 해변의 '영국인의 산책로'를 뛰는 사람들이 유난히 많은 아침, 그들의 환한 눈빛이 흐린 하늘을 밝혀준다. 조금씩 제 빛을 찾아가는 하늘, 그 니스 하늘 아래사랑과 행복이 여물어간다. 예쁜 카페에선 향긋한 모닝커피 내음을 뿌리고 제과점의 아리따운 케이크는 대기를 달콤하게 채운다. 캐리어를 끌고 도로 양편을 오락가락하다 다다른 니스 공항, 여기도 바다 내음이 가득하다. 이륙한 비행기의 날개 아래엔 아쉬움의..
프랑스 3 : 모나코, 너의 하늘과 바다 니스 여행 기간 중 처음 만나는 맑고 푸른 아침이 상쾌하다.니스 버스터미널에서 그저 물끄러미 바라만보다, 모나코행 버스를 눈 앞에서 놓쳐버리고, 9시반에야 모나코 가는 버스에 올랐다. 모나코 가는 길이 해안도로라 기대를 했지만, 생각보다 승객이 많아 바다가 잘 보이는 오른편 자리는 우리 차지가 되지 않았다. 10시 조금 넘어서 멈춘 길가 정류장이 모나코인가보다. 내려야 할 곳을 정확히 몰라 주위를 살피고 있는데, 모나코로 가는듯한 중국 여자들이 우르르 하차한다. 얼른 주변 사람에게 물어 모나코임을 확인한 후, 우리도 따라내렸다. 바닷가 근처, 공중전화 위의 건장한 두 남자가 무표정한 얼굴로 우리를 맞이한다. 프랑스의 휴양도시 같은 작은 나라 모나코는 병역과 세금이 없으며 프랑스어를 사용한다고 한다. 작은..
프랑스 2 : 비와 그라스 새벽부터 휘몰아치는 비바람이 심상치 않다. 하늘을 보며 하루 날씨를 점쳐보았지만, 도대체 답이 없는 날씨다. 오늘 일정의 중심인 그라스(Grasse)에 가기 위해선 우선 버스터미널까지 버스로 움직여야 한다. 터미널의 인포에서 그라스 행 버스 시각표를 받아든 후, 살펴본 터미널은 왠지 어수선한 분위기다. 9시 50분에 출발한 버스는 온갖 정류장에 다 멈추다보니 니스에서 40km밖에 안 되는 그라스까지 가는데 1시간반이나 걸렸다. 그렇게 도착한 그라스 거리는 이미 폭 젖어있었지만, 다행히 비는 거의 내리지 않고 있었다. 향수의 원조가 된 그라스는 예부터 마을 주위 산기슭에서 야생화를 경작하고 채취하여 향수를 추출하였고, 중세부터 자연 향수를 제조하였다고 한다. 그라스는 원래 질 좋은 가죽 가공지로, 조향 기..
프랑스 1 : 흐린 가을의 니스 일기예보와는 달리 맑은 니스의 아침이다. 어젯밤 늦게 시작된 여행, 빈 공항에서 기계로 체크인을 하고 기내용 캐리어를 둘 공간이 없는 항공기-오스트리아 국적기임에도-를 타고 니스에 도착했다. 어제는 아침부터 비자 연장 신청과 병원 진료로 완전 정신없는 하루였기에, 기내에선 앞 좌석 아기의 계속되는 울음소리에도 아랑곳없이 단잠에 빠져버렸다. 공항에서 10분도 채 안 걸리는 거리인 숙소까지의 택시요금은 무려 35유로. 니스공항 홈피에 안내된 요금과는 달리 미터기를 작동시키지 않은 채 기사 마음대로 책정한 요금이다. 여기도 이탈리아처럼 바가지 천국인가. 역시나 부엌 공간이 있는 호텔이라 아침 일찍 식사를 챙겼다. 여행할 땐 늘 그렇듯 텔레비전 만화 영화에 눈길을 주고 있는 작은밥돌. 내가 "말(프랑스어)이 참..
독일 4 : 올훼스의 창 로텐부르크를 떠나는 아침. 가려니, 햇살은 더 투명하고 거리 풍경은 더 선명하다. 아침 식사를 마친 후, 마르크트 광장에게 이별을 이른다. 시청사를 눈에 담고, 시의원 연회관의 시계는 마음에 싣고 600년 넘은 약국은 가슴에 재었다. 로텐부르크에서 빈으로 돌아가는 1/3 지점에,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인 레겐스부르크가 있다. 거대한 고딕양식의 성당 옆에 주차를하고 인포 센터를 찾고보니, 이 도시에 대한 한글안내서가 비치되어 있다. 레겐스부르크는 2차 세계대전 중 항공기 제작 장소였던 이유로 여러 차례 공습을 받았으나 다행히 중세 건물 대부분 손상을 입지 않았으며, 13세기부터 300여년에 걸쳐 건립된 고딕 양식의 성 페터 성당은 소년 합창단이 아주 유명하다. 아직 움을 튀우지 않은 나뭇가지에..
독일 3 : 오래된 로만틱 점심을 먹고 나온 하이델베르크 거리에 로텐부르크에 본점을 둔, 그러나 어제 로텐부르크에선 미처 들어가보지 못한 크리스마스 상점 캐테 볼파트(Kaete Wohlfahrt)가 있다. 1년 내내 크리스마스 상품을 판매하는 이곳의 내부는 바깥에서 만난 진열장보다 훨씬 더 화려했다. 처음 보는, 크고 작은 갖가지 크리스마스 장식품이 어찌나 많은지 하나하나 예쁘지 않은 것이 없었다. 보기만 해도 기분 좋고 들뜨면서 신나기만 했다. 거실 장식장 한 켠을 장식할 공예품을 사든 채 아직 건너지 못한 네카 강으로 향한다. 하이델베르크 성에서 내려다보였던 폭 좁은 석회빛 강. 네카 강으로 가는 길에 띈 예쁜 간판, 그 상점에선 초콜렛을 판매하고 있었다. 키스처럼 달콤쌈싸름한 초콜렛이라, 아주 적확하고 환상적인 비유다. 네카..
독일 2 : 아, 하이델베르크 5시반, 별안간 눈이 떠졌다. 바깥의 밝은 기운에 이끌려 커튼을 열어보니 지붕이 반투명하게 하얗다. 승용차를 움직일 걱정에 살펴본 도로는 약간 질퍽거릴 뿐 다행히 빙판은 아니다. 밥돌들은 아직 한밤중이고, 어제 꽤나 혹사한 다리는 여전히 뻐근하다. 정말 한해 한해가 다르다는 생각. 잠시 다시 눈을 붙인 뒤 내려간 식당엔 정갈한 아침 식사가 차려져 있다. 커피, 핫초코, 요거트와 과일까지, 덤으로 부활절 달걀까지 깔끔하고 맛있다. 옆 테이블엔 두 가족이 함께 여행 온 듯 8-9명이 식탁에 둘러앉아 있다. 하지만 절대 떠들지 않는 그들.어느 나라 사람일까, 우리의 호기심이 발동한다. 독일어권도 동유럽쪽도 아니고, 생경한 언어와 흰 피부, 큰 키를 힌트 삼아 북유럽인이라 마음대로 결론을 내린다. 거리엔 맛소금..
독일 1 : 성벽 속 중세 마을 미리부터 날씨 걱정을 싸안고 있는 건 역시 쓸데없는 소모전이다. 일기예보 사이트에선 3월말 날씨의 혹독과 변덕을 알리고 있었기에, 비나 눈이 쏟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상황. 생각보다 괜찮은 날씨다. 흐린 아침 7시반, 독일로 향하는 마음은 마냥 하늘을 날 듯하다. 승용차엔 이미 네비게이션이 장착되어 있었고 예약한 로텐부르크 숙소의 주소까지 완벽히 입력되어 있다. 9시 50분, 독일로 들어섰고 고지대인 파사우엔 가느다란 눈발이 날린다. 고속도로 저쪽 너머에 많은 눈이 쌓여있는 걸 보니 며칠 사이 꽤 많은 눈이 내렸나 보다. 대부분의 구간에서 속도 제한이 없는 독일 고속도로는 통행권이 필요 없다고 한다. 한마디로 무료. 뉘른베르크를 지나 길가 휴게소에 차를 세웠다. 파사우에 이어 두번째 휴식인데, ..